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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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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 김현락 프리랜서
  • 승인 2014.11.10 10:46
  • 호수 10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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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마음과 황금빛 얼굴로 슬픔을 승화하는 ‘단풍’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도종환

푸르렀던 초록이 거대하게 물결치던 나무바다 속에서 한 점 두 점 붉고 노랗게 시작된 가을빛이 온 산에 가득 찼다. 거리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산은 불타는 단풍으로, 코끝을 스치며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차고 맑은 기운의 바람은 여름색을 완연하게 벗어버린 가을풍경을 몰고 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당단풍나무와 화살나무는 선명한 붉은빛으로,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는 알록달록한 갈색무늬로, 생강나무와 은행나무는 샛노랗게, 이들 이파리들이 모여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산을 만들었다.        
 
단풍은 기후의 변화로 식물의 녹색 잎이 빨강‧노랑‧갈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으로, 나무들의 잎에 단풍이 든다는 것은 앞으로 살기 어려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미리 준비하라는 신호이다. 광합성을 하며 양분을 만드는 엽록소의 색깔이 초록색이었던 것이, 가을이 되면 낮은 온도에 약한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봄과 여름 내내 짙은 엽록소 그늘에 묻혀 있던 카로틴 같은 노란색소가 발현되면 노란 단풍으로, 붉은 색소인 화청소가 생겨나면 붉은 단풍으로 변하는 것이다. 같은 나무라도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공기 중의 습도나 나무의 건강상태에 따라 단풍색의 선명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도 나무는 이제부터 생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잎을 날려 보내기 전의 마지막 향연을 펼치는 듯, 체념과 슬픔을 불타는 잎과 황금빛 잎으로 승화시켜 세상에 선물하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나무는 제 몸의 전부를, 제 삶의 이유였던 이파리를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도달한다. 내년 봄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잎을 빨리 떨어뜨려야 한다는 걸, 추위가 스며들 약한 곳을 차단하기 위해 낙엽이 쌓여야 한다는 것을 아는 떨어진 잎은 나무 밑동이나 뿌리를 감싸며 얾을 막아주고 썩어 문드러져 선뜻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이파리들에 대하여 뿌리로 돌아가는 애잔함과 마지막 가는 길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감탄스러워지고 또 문득 서늘해진다. 마음이 흔들려 멈춰 서니 본연의 색으로 돌아가 빈 마음으로 팔랑개비처럼 날며 내려오는 단풍잎들이 몸을 스쳐 발등에 앉는다.   
  
거리에 가득히 낙엽이 쌓이며 영글어 가는 가을.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이 짙어지는 산과 거리는 더없이 찬란한데, 밝음 뒤에 숨겨진 어둠처럼 기쁨인지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쓸쓸함인지 알 수 없는 울렁임이 가슴 가득 고인다.
선연한 빛깔로 소리 없이 지치지도 않고 날려 내려오는 단풍잎 하나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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