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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서 ‘마을 만들기’의 전형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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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서 ‘마을 만들기’의 전형을 보다
  • <박태신/프리랜서>
  • 승인 2014.09.01 15:04
  • 호수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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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사랑

얼마 전 진안에 다녀왔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있어 ‘과정’과 ‘결과’ 모두 본받아야 할 전형으로 정평이 나있는 지역이다. 특히 마을 만들기 사업의 ‘연결망’(네트워크)이 가장 잘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진안에서 ‘마을 단위 사업’은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진안에서 마을 만들기를 하려는 마을은 우선, 군 자체사업인 ‘그린 빌리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년 40여개 마을을 선정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군비 250만 원을 준다. 다음 단계는 ‘참 살기 좋은 마을’인데, 이 역시 진안군의 자체사업이며 매년 10개 마을에 1000만원의 군비를 제공한다. 마을이 알아서 소득사업 등에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사업 평가가 기다린다. 평가를 바탕으로 매년 5개 마을을 선정해 ‘으뜸마을 가꾸기’사업이 시작된다.

마을은 수시로 주민리더 교육에 참여해야 하며, 연 1회 ‘마을 만들기 대학’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으뜸마을 사업’ 또한 2001년부터 시작한 진안군 독자 사업으로 마을당 5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진안에서는 으뜸마을을 졸업해야 중앙정부의 ‘농촌체험마을’ ‘건강장수마을’ ‘정보화마을’, 전북도의 ‘향토산업마을만들기’ 등의 소규모 국비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러한 4단계 과정을 거친 마을만이 마지막으로 ‘권역사업(마을종합개발사업)’ ‘산촌생태마을’ 등 큰 규모의 국비사업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한 마을에 여러 사업이 무분별하게 집중되는 일은 없다.

진안군에는 ‘마을만들기 행정협조 회의체’가 구성되어 있는데, 전략산업과의 마을만들기 담당이 사무국을 맡고, 친환경담당과 인재양성담당 등 7개 부서와 함께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민간영역에서는 마을간사협의회 등 8개 협의체가 ‘마을 만들기 지구협의회’와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행정의 태스크포스팀과 민간의 네트워크 역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부흥에 몰두했다. 그들은 농촌경관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이후 지속된 개발정책이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을 망가뜨린 사례와 유사하다.
1960년대 이후 전후 복구에 성공한 독일인들은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간의 과정을 비판했다. 자연환경을 복원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들은 ‘이전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마을에서 주민회의가 열렸다. 마을안길에서 시멘트를 걷어냈다. 원예를 잘 아는 이들이 골목마다 나무와 꽃을 심었다. 생물다양성 복원의 일환이기도 했다. 목수는 주택이나 공용시설을 수리해 마을경관과 어울리게 했고, 미술에 취미가 있는 이는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렸다. 집집마다 테라스에 화분을 내걸었고, 담장 밑에는 화초를 가꾸었다. 모두가 자발적이었고, 토론과 협력을 통해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독일의 마을 만들기에는 예산지원이 없다.

그동안 군내에서 마을단위 사업은 무분별하게 진행된 점이 없지 않다. 마을 내부에서 소통을 통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마을리더가 고립되기 일쑤고, ‘나랏돈은 쌈짓돈’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었다. ‘보조사업 사냥꾼 마을’이라는 비판처럼, 마을의 내적동력을 형성시키지 못한 채 예산지원에만 의존하기도 한다. 행정도 마을단위 사업 선정에 있어, 철학적 기초가 빈약하다보니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있었다.

이제 청양군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그간의 선정과정, 운영체계, 방향성까지 혁신하려는 모양이다. 혁신은 뼈를 깎는 반성을 전제할 때만이 가능하다. 청양군의 새로운 마을 만들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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