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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만 기억하며 부지런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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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만 기억하며 부지런히 살아야죠”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2.05.28 11:28
  • 호수 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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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청양군농업기술센터 한상평 서부지소장

오늘은 농업인과 함께 33년을 동분서주했던 주역 중 한 명을 소개한다. 청양군농업기술센터 서부지소 한상평(59) 지소장이다. 그는 오는 12월 31일 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서부지소에서 상담 및 현장 지도 업무를 하고 있다.

‘대학포기하고 농사꾼으로’
운곡면 효제리에서 4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1980년 농촌지도직 시험에 합격한 후 그해 7월 1일부터 일반농사지도를 시작으로 33년 째 농촌지도를 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33년간 그를 주변에서 지켜본 많은 지인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확고한 신념으로 청양군 농업발전과 더불어 농업인의 소득향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1만여 제곱미터 땅에 농사를 지으셨어요. 농사짓는 가정에서 자라다보니 학교 다니며 가마니도 짜고 쟁기질도 직접 하곤 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 농사지으며 살아도 좋겠구나, 또 제가 축산에 관심이 많아서 소 키우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둘째 형이 결혼을 했고, 집안 형편상 저는 대학을 포기해야했죠. 이후 자연스럽게 농사꾼이 됐고요. 당시 대학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제 운명이라 생각하고, 또 지난날들에 대해 후회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까요.”

이렇게 1971년 청양농공업고(현 청양고) 졸업 후 대학진학을 포기한 한 지소장은 본격적으로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또 1977년 군 제대 후 어릴 적부터 꿈꿨던, 송아지를 구입해 키워볼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1978년 흉작과 1979년 우박피해까지 이어졌고, 농사만을 고집하며 가정을 꾸려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생활을 위해 농사 외에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2년 연속 피해를 입으니 농사짓고 소 키우면서 살지 하는 계획만을 고집할 수 없었어요. 살 길이 걱정이었죠. 결국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농업지도 33년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공무원이 된 후 그는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등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더욱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얻은 정보들은 다른 농업인들을 지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1990년대 초반 오리·우렁이 등 친환경 농법을 이용해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도에 앞장섰으며, 이는 군내 곳곳에서 친환경 농법을 시작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1978년부터 해 왔던 양봉에 대한 그의 열정도 컸으며, 이는 1996년 양봉연구회 조직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농업 지도를 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농민들에게 가르쳐 드려야하니 제가 먼저 공부하게 되고, 또 농민들과 함께 교육 받고 선진지 견학을 다니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죠. 특히 친환경농법과 양봉에 관심이 많아서 더 열심이었고,  농민들께서 이를 통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보를 드렸습니다.”

그는 또 그동안 부가가치가 높은 작목들을 농민들에게 공급하려고 부단히 애를 써 왔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고도 전한다.
“2003년도 당시 오미자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농민들께서 선뜻 나서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다 3년 정도 후부터 오미자농사 붐이 일었는데 그 때 이미 다른 곳에는 오미자가 많이 나올 때였어요. 몇몇 작물들에 대해서도 왕왕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물론 농민들께서  판단하시는 거니까 강요는 못해요. 다만, 충분히 검토한 후 농가에 도움이 되겠구나하고 권해드리는데도 망설이실 때 좀 안타까웠죠.”

한 지소장은 더불어 앞으로 청양군에 약초, 산채 단지가 조성돼야 한다고 전했다. 부가가치 창출로 인해 잘사는 농촌만들기, 또 이를 통한 귀농귀촌인 유치로 인구증가를 위해서다. 이 같은 내용을 주변에, 또는 다수의 기고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청양군 인구 늘리기 첫 번째 방법은 귀농귀촌인 유치라고 생각해요. 맑은 물, 청정한 공기 등 청양에는 자연이 내려 준 선물이 있습니다. 그 자원을 이용해 소득을 올리고, 이를 보면서 ‘누구나 찾고 싶고, 살고 싶은 청양’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특히 청양하면 고추, 구기자, 맥문동 등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 약초·산채 단지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전문 농사꾼이다
농업지도 33년, 그는 이제 농작물 관리·지도부터 농기계 수리까지 농사와 관련해 모르는 것이 없다.
“농업인들께서 전화를 하시면 현장에 나가서 상담 및 지도를 해 드리는 것이 요즘 제 업무입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이 일은 할 수 없을 거예요. 기술센터에 들어와서 이 모든 것을 배웠고, 이제 저는 전문 농사꾼으로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즐겁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주말, 또 틈틈이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었어요. 밭작물과 나무도 좀 심었고요. 1978년 벌통 2개로 양봉을 시작해 지금은 약 40통 정도로 늘어나 있습니다. 퇴임 후부터는 산채와 일부 약초 등도 심어보려 하고요.”

그는 일부 정년퇴임을 앞둔 사람들이 갖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하는 고민이 없단다. 바쁘게 살았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것 후회하지 않고 미래의 것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제철에 나는 음식 먹고 과식하지 않는 것, 가능하면 약 먹지 않고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제 건강비결이에요. 앞으로도 농사지으며 그렇게 생활하고 싶네요.”

한상평 지소장은 화성이 고향인 엄인옥(57) 씨와 1981년 결혼했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또 청양을 양봉산업의 최적지이면서 실버산업으로 키운다는 신념으로 이 분야를 연구 발전시키고 더불어 청양군양봉연구회가 2003년 제9회 세계 농업기술상 협동영농부분 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공로로 농림부장관상(2004)을, 토종다래묘목 공급 등을 도와 칠갑산토종다래연구회로부터 감사패(2011)를 받기도 했다.
지난 33년 동안 청양군 농업인들과 함께 해 온 한상평 지소장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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