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천 마리 말의 넋을 보듬고 있는 ‘천마봉’
상태바
천 마리 말의 넋을 보듬고 있는 ‘천마봉’
  • 프리랜서 김현락
  • 승인 2012.04.02 14:28
  • 호수 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 따라 찾아가는 ‘산’

-이태수 ‘나무는 나무로’ 부분
있는 그대로를 껴안기로 했다. 뒤집고
뒤집다가 보면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비껴서 있을 뿐.
나무는 나무로, 돌멩이는 돌멩이로,
하늘의 구름은 하늘의
구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가 저만큼 떠나고 있는, 아니면
내가 이만큼서 서성이고 있는,
그 사이의 바람 소리를, 미세하지만 완강한
이 신음 소리를 껴안기로 했다.
...
담담하고 당당하게
풀잎은 풀잎으로, 아픔과 슬픔은
아픔과 슬픔으로,
지워질 듯 되살아나는 희망은 차츰씩
보듬어 안아올리기로 했다.
- 이태수 ‘나무는 나무로’ 부분

-이태수 ‘나무는 나무로’ 부분

바람의 냄새와 감촉이 달라졌다. 청양읍 군량리에 있는 천마봉을 오르기 위해 송방리 청송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묵동길로 들어선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항상 그 자리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쓸쓸해서 더 아름다운 느티나무를 통과의례처럼 바라본다. 고군량골과 구시티를 지나 식물원 길에서 차를 세웠다.
잔가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오래된, 바오밥나무를 닮은 근사한 나무가 이정표인양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길가에서 내려 본다.(사진1)  나무 우듬지에 하얀 구름이 가볍게 걸쳐 있다.

▲ 사진2


대나무 소리에 발자국 소리도 숨는 오솔길 속으로, 한때는 은빛 몸으로 온 산을 두근두근 울렁이게 했을 억새 계곡을 걷는다.(사진2) 상수리나무 잎과 단풍나무 잎이 길과 산을 덮고 묘 마당까지 덮었다. 늘씬늘씬하게 쭉쭉 자란 나무들이, 무질서 속에서도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서서 반짝이는 햇살을 받고 있는 숲은 바라만보아도 ‘화’하니 박하 같다. 따끔거리는 찔레나무의 무늬만 식물성인 빨간 순이 눈을 탁탁 가로막고, 뾰족하게 끝으로만 몰려가며 뻗은 줄기가 발길을 막는다.

▲ 사진3


자연 그대로의 돌 의자에 앉아 바람소리를 맞고 있자니, 조그만 연못 속으로, 흐르는 구름과 나무가 엉켜있다. (사진3) 나무 잎사귀 한 잎이 바람에 떨어지자 또르르 파문이 인다. 잠시, 잠자고 있던 물결을 흔들어 놓은  나뭇잎이, 사라지는 파문위에서 머뭇거리며 고요해진다.

▲ 사진4

솔가루와 솔방울, 오그라든 단풍잎이 양탄자처럼 깔려 폭신한 길을, 뿌리 채 뽑힌 큰 소나무를, 넘어지고 꺾어져 서로를 안고 기대고 있는 풍성한 산 속 자욱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다니다 나무에 매어진 등산동아리 리본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사진4) 리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금북정맥 천마봉 422.1미터’라는 안내 표지판과, 오색리본이 철탑 울타리에서 다닥다닥 바람에 날리고 있다.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파란 호수가 나무사이를 통해 어른거린다. 화성 매곡저수지였다. 숲을 울리며 물기 어린 바람이 불어온다. 친절하게 리본이정표가 꼬리를 물고 있는 서쪽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심한 경사가 진 비탈길이다. 오르는 길을 찾느라 불안했던 마음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 길을 택하게 하였다. 혹여 누군가에게라도 쫒기 듯, 마치 꽃발이라도 하는 토끼처럼 허둥지둥 내려오다 보니 아뿔싸, 장승리 여주재고개다.           
타박타박 여드재 길을 걸으며 혼자 떨어져 말라가고 있는 큰 사과 한 알을 보다가, 넘어온 산을 뒤돌아본다. 혹자는 구봉산이라고도 하는, 청양읍의 산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는, 갑오년 동학란 때 싸우다 죽은 천 마리의 말이 죽어 묻혔다는 천마봉. 그 말들의 넋을 위로하듯, 하염없는 구름이 구봉산발을, 천마봉 산등성이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