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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연들을 달빛으로 전하는‘월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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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연들을 달빛으로 전하는‘월봉산’
  • 프리랜서 김현락
  • 승인 2012.03.19 14:35
  • 호수 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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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 ‘소나무숲에는’ 부분

소나무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숲에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 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이상국 시 ‘소나무숲에는’ 부분

등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청양읍 백세공원의 지천을 걷는다. 평촌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물보라가 반짝이며 무지갯빛을 만든다. 어귀말이라고도 부르는 평촌을 지나 월촌 입구에서 마른논의 검불을 태우는 어르신께 월촌 뒷산에 대해 듣는다. 산 모양이 반달처럼 생겨서, 항상 달이 뜨는 것이 보인다 하여 월봉산이라 한다며,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등산로가 얌전(?)하고 편하다고 한다.
월촌에서 대청로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이방인을 향해 사납게 짖는 삽살개의 따가운 눈총이 멀어질 즈음, 툭 하니 말라 단단해진 탱자 한 알(사진1)이 떨어진다. 날카로운 가시 속에는 보드랍고 향기롭게 매달렸던 열매 몇 알이 남아 있다. 샛노랗던 색이 짙어지면서 가는 이와 오는 이와의 자연스런 만남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 사진2

대청로에서 산에 오르는 몇 개의 길이 있으나, 어느 길로든 오르다 보면 포장된 길과 만나게 된다. 포장된 오름길 끝으로 공사 중인 암자와, 큰 나무에 기댄 듯 서 있는 석탑(사진2)을 본다. 꽃이 한창인 시절이 되면, 산 중턱 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곳이 월봉암이라는 것을 읍내에서까지 훤하게 짐작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곳이 이곳이었구나. 
고요하다. 발걸음 한 번에 작은 한 번의 속삭임만 있을 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바람과 햇살과 구름으로, 역시 고요 속에 푹 잠겨있다. 부드럽게 넘어진 소나무는 그대로 잎이 무성하고, 마른 고사리밥으로 숲을 이룬 산 정상에 오르니 길이 세 갈래로 나 있다. 북쪽은 대치면 탄정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서쪽은 교월리 평촌길이다. 나무 사이로 청양읍내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는 능선을 타고 걸으니 정말 낮에 나온 반달 같다.

▲ 사진3

왼쪽의 온통 어린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자락이 보이는 남쪽 길로 내려오다 보면, 큰 집게발의 가재가

살고 있을 듯한 맑고 얕은 계곡물(사진3)과 동행하게 된다. 한 동안 명랑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성시천’이란 명찰이 조그맣게 붙어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쑥과 노랑꽃, 냉이가 눈에 띌 듯 말 듯 논둑에 나와 있다. 가늘고 긴 은천동길을 빠져나오며, 벽천교 위에서 봄기운이 가득한 월봉산을 돌아본다.
매끈하게 정리된 무덤 뒤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먼 조상들과 새로 오는 이들을 만나게 한다. 날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모든 것을 다 품고자 하는 몸짓의 소나무숲(사진4)은 잊지 않으려 하는 간절한 기대, 마음과 마음이 주고받고 위로하는 끈끈하고 소박한 정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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