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꽃이 가지고 온 새 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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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가지고 온 새 봄을 만나다
  • 프리랜서 김현락
  • 승인 2012.03.05 15:31
  • 호수 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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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했던 꽃망울이 천 리 밖에서 내가 들은 격렬한 슬픔의 노랫소리를 함께 들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꺼번에 꽃을 피워 올리겠는가 내 목메임이 멀리 네게로 전해졌구나…
다음날 다른 줄기에서 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삼월의 눈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분홍 꽃 이어 흰 꽃을 밀어 올리는 뜨거움을 종일 가지런한 피아노곡을 얹어두면 누를 수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면 향기로 숨이 가빠온다…
흰 꽃과 분홍을 마주 피워 올리며 나의 봄을 엿보려는 저 천리향의 미열은 봄눈에 좀 가라앉으려는지
                                                                                                         -조용미 ‘천리향을 엿보다’ 부분

단단했던 꽃망울이 천 리 밖에서 내가 들은 격렬한 슬픔의 노랫소리를 함께 들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꺼번에 꽃을 피워 올리겠는가 내 목메임이 멀리 네게로 전해졌구나…
다음날 다른 줄기에서 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삼월의 눈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분홍 꽃 이어 흰 꽃을 밀어 올리는 뜨거움을 종일 가지런한 피아노곡을 얹어두면 누를 수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면 향기로 숨이 가빠온다…
흰 꽃과 분홍을 마주 피워 올리며 나의 봄을 엿보려는 저 천리향의 미열은 봄눈에 좀 가라앉으려는지
                                                                                                         -조용미 ‘천리향을 엿보다’ 부분

빈 나무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질 때,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일 때나 꽃잎이 비비적거리며 벙글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힌다. 이렇게 자연을 깨우는 봄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스럽다.
쫄쫄 물소리가 귀를 두드린다. 아직은 물이 오르지 않은 굳고 찬 나무들 사이로, 녹다만 얼음이 덮인 옹당이에서 희미하게 물이 넘친다. 대치면 느를마을 칠갑산 자락, 골짝 깊숙이 숨어 있는 환희를 만났다. 큰 나무의 밑동을 빌려 나뭇잎 속에서 긴긴 겨울날을 침묵으로 보내고, 날을 세며 피워올린 꽃대. 스스로 빛이 되는 꽃을 피우기 위해 깊은 고독과 두려움의 한가운데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길을 걸어 나온 모습이 눈과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가느다란 몸에 볼그레한 솜털(사진1)이 떨리고 있다. 한 개의 꽃대 끝에 달랑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노루귀(사진2). 꽃 지고 난 후, 잎 나오는 모습이 마치 어린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노루귀의 보송보송한 솜털은, 이 골짜기에 존재하는 마른 잎들을, 잠자던 나무들을 쫑긋쫑긋 간질인다.

나뭇잎을 헤집고, 마른 이끼 속으로 칠갑산 바람이 내려온다. 행여 어린 노루귀가 밟힐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깍깍 까마귀 몇 마리가 발자국소리를 대신 내주는 골짜기 안쪽, 드문드문 쌓인 눈 속에 노란 물이 들었다.   

차고 딱딱한 얼음을 깨고, 안간힘을 다해 두꺼운 나뭇잎 옷을 들추고 노랑 잎이 세상에 나왔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믿지 못했던 노랑의 파장이 주위를 놀랍게 한다. 아니, 오히려 그 주변을 더 숨  죽이게 한다. 엷은 소소리바람이 노랑꽃잎에 머물지만, 차마 잎 속으로 파고들 수가 없다. 마냥 그저 바라보고 함께 할 뿐이다.

▲ 사진4

눈과 얼음사이에 피어난다 하여 눈색이꽃, 얼음새꽃, 땅꽃이라고도 하는, 눈 속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다하여 설련화라고도 하는, 안개성에 살던 여신의 아름다움을 받아 피는 가녀린 꽃, 행복과 장수를 부른다는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지닌 복수초(사진3). 바짝 엎드려서 꽃잎을, 노란 속살(사진4)을 한없이 들여다본다. 몇 개의 꽃술에 가느다란 눈가루가 앉았다. 꽃 속에서 금방이라도 여신이 튀어나올 듯하다.

콧바람에도 바르르 떨리는, 눈석임물로 태어난 이 꽃잎들을 보니 두근두근 형용하기 힘든 벅참이 올라온다. 대견하고 참 사랑스럽다.
달이 없는 지구를 상상하기 힘들 듯이, 꽃 없이 오는 봄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고요가 멈추자 노랑과 솜털에 전이된 바람이 봄을 일렁인다. 바르르 솜털이 떨리고, 노랑이 칠갑산기슭 느를 고랑에 살포시 퍼진다. 
어느 시인의 봄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오듯이 봄은 이렇게 우리들 곁으로 다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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