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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39년 한결같았던 안준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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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39년 한결같았던 안준상 교사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2.02.27 10:07
  • 호수 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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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 너무 행복했다”

오늘은 40년 가까이 참교육을 실천 해 온 한 스승을 소개한다. 오는 29일로 정년퇴임하는 운곡초등학교 안준상(63) 교사다. 그는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며 말을 시작했다. 또 “많이 그립겠지만 잊어야죠”라며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전했다.

교사가 된 건 어머니 덕분
안 교사를 찾은 건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 본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방문에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달려 온 것 뿐인데요”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청양읍 군량리가 고향으로 3남 2녀 중 장남이다. 청송초·청양중·청양농공업고등학교(현 청양고) 축산과를 졸업했으며, (재)체성회(현 한국우편사업지원단)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었어요. 그래서 체성회에 들어간 것이고요. 그런데 체성회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어떻게 하면 고향으로 갈까 고심했습니다. 명절 때 집에 오면 직장으로 돌아가기 싫어 버텼고, 무슨 일이든 할테니 집에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모님을 졸랐죠. 하지만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시골에서 뭐하겠냐고 완강히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체성회 근무 1년 2개월여가 지난 어는 날, 그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사가 되는 시험이 있으니 내려와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바로 내려왔다.
“교사가 되는 시험이 바로 공주교대부설교원양성소를 거치는 것이었어요. 뭐든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죠. 교사가 된 것은 어머니 덕분입니다.”

그는 공주교대부설교원양성소 제7기생이었으며, 1970년 10월 천장초 발령을 시작으로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군복무를 거쳐 1974년 3월부터 대치초(3년), 청송초(5년), 청양초(15년)에서 근무했고 현재 운곡초에서 15년 째 근무 중이다. 특히 그는 청송초 근무 당시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2년 과정 졸업 후 다시 5년제에 편입해 공부를 마쳤다.
“당시 교대가 2년 제였고 양성소는 4개월 단기였어요. 때문에 호봉차이가 났죠. 그래서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 했고 5년제로는 1기 졸업생이에요. 또 당시 2년제를 졸업한 교사들도 5년제 또는 일반대학에 편입하기도 했어요.”

어느 덧 39년 ‘너무 아쉬워’
그는 “교사 시험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이라니  아쉽다”고 말한다. 또 “앞으로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웃고 떠들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전한다. 
“천장초에서 근무할 때는 경험이 없어 하루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모릅니다. 군 제대 후 대치초에 복직해서부터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눈에 보이더군요. 너무 예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교사가 됐지만 천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떠들면서 지내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아이들 눈이 예쁘다고 느껴질 때가 진짜 교사가 될 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아이들 눈이 그렇게 초롱초롱 예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올해로 39년 째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였다.
“그동안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지만 교육공무원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다른 일로 아이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다른 일로 분주하다 보면 자칫 아이들에게 소홀해 지고, 그런 날 퇴근길에는 어김없이 ‘오늘 헛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죠.”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는 39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교사는 아이들의 친구가 돼 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더욱 더 채찍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비뚤어지려는 아이들 많이 혼냈어요. 기합도 주고 필요하면 엉덩이도 때렸습니다. 그런 후에 가슴으로 안아줬고, 그 때부터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가 되고나면 그 때부터는 편하게 장난도 치고 심지어는 똥 침을 놓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다행인 것은 학부모님들께서 그런 저를 믿어주셨어요. 아이들을 혼낼 수밖에 없는 제 마음을 알아주셨죠.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그는 혼내더라도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9년 동안 이렇게 친구처럼 제자들을 인재로 키워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왔다.
“정년을 앞두니 아쉬움만 남아요. 후배 교사들에게 먼 훗날 퇴임을 앞두고 이러한 아쉬운 마음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네요.”

즐겁게 마음껏 뛰어 놀아라
그는 지난해 발간 된 교지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무럭무럭 크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제자들과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해 왔던 말이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운동장 밟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등교 후 늦게까지 방과후학교 등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죠. 체육시간이 있지만 30~40분 운동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바람이에요.”

그는 2월 29일자로 퇴임한다. 그리고 퇴임 후 학창시절 부모 밑에서 배웠던 농사에 도전해 볼 작정이다. 엄했던 부모 밑에서 혼나며 밭 매고 보리 베던 추억을 생각하면서다.
“부모님께서 엄하셨지만 사랑이 많으셨어요. 또 ‘사람 사는 집 대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의 말씀 되새기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그는 대치초에서 평생을 함께 할 배필을 만나 1976년 결혼했다. 현재 청양초에 근무 중인 이순임(61)교사다. 그리고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제 자식 못 가르친다는 말이 있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 지도는 항상 아내 몫이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순박한 어린아이와 같은 웃음을 가진 안준상 교사. 39년 한결같았던 안 교사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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