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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길 끝에서 만나는 인연 ‘원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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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길 끝에서 만나는 인연 ‘원각사’
  • 프리랜서 김현락
  • 승인 2011.12.26 10:34
  • 호수 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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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따라 느릿느릿 찾아가는 절집
사진 1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색감으로 물들였던 마른 잎 위로 지난번 내렸던 첫눈이 기억의 조각처럼 아리게 남아있다. 화성면 구재리 산 5번지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운치 있게 잘 자란 단풍나무터널로 이끌리게 된다. 언제든지 걸음을 멈추고 휘둘러보아도 좋을 멋진 길이다. 어느 가을 금빛으로 눈부셨던 은행나무와 비스듬히 기울어진 언덕이 일주문이 되어, ‘원각사’로 들어가는 발길과 마음을 한층 고고하게 한다.
 
채워진 시간들이 인연이 되듯 하나 둘 올려진 돌들이 근사하고 우람한 돌탑(사진1)이 되어 여기저기 나무사이로, 정원 속으로, 길옆으로 서서 오고 가는 이들을 맞이한다. 길지만 조그만 연못(사진2)에는 눈이 가득 덮여있다. 그 위로 가벼운 아치형의, 용의 모습으로 장식한 다리가 놓여 있다. 용에 올라탄 기분으로 다리를 건너본다. 금방이라도 뛰어 나올 듯한 사슴이 조각된 석등과 돌탑 사이, 빨갛게 꽃 핀 채로 얼어있는 장미 한 송이가 보인다.
대웅전 주련 앞에 서서, 봄과 여름과 가을이 깃들어 겨울이 된, 절 마당 가장자리를 언제나 지키고 있는 큰 단풍나무를 본다. 잎사귀 한 잎 남아있지 않은 큰 나무를 보니 통증이 온다. 누구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아팠던 것처럼, 바람이 불면 회오리치고, 햇살에 자지러졌을 잎사귀들은 초록을 품었을 때, 주황이나 빨강을 내 보일 때, 그리고 한 잎 두 잎 떠나보냈을 때, 물들은 아픔도 같이 보냈을 것이다.
풍경소리만큼이나 맑고 높은 노래 소리가 부르는 법당 안으로 들어서 귀를 모아본다. ‘옴아비타블옴아비타블~’ 부드러운 소리가 향에 섞여 법당바닥과 천장에 퍼진다. 파란용의 불화로 덧씌운 대들보와, 붉은 화관을 머리에 쓴 학이 날고 있는 사각반자의 아름다움에 고개가 아픈 줄도 잊은 채 올려다본다. 금빛으로 테두리를 친 붉은 닫집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다. 그 밑에 계신 세분의 부처님은 언제나,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릴까.

사진 3

 
삼신각으로 향하는 단정한 계단 옆, 돌탑 앞에는 조그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릎 위로 마른이끼가 이불이 되어 덮여있고, 턱을 괴고 있는, 졸고 있는, 목탁으로 장난을 하는 어린 개구쟁이 동자승들이 즐비하다. 탑 위에 앉고 서있는 어린 동자승의 맑은 눈빛은(사진3), 분노와 욕심을 놓지 못하는 부끄러운 자존심에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모든 원인을 내안에서 찾으려 하면서도, 어느 사이 타인에게 돌아가 버리는 씁쓸한 마음이, 때 아닌 때에 삐죽 삐쳐 나온 철없는 어린잎처럼 솟아난다. 오르는 것만으로도 뾰족한 모난 마음이 조금은 둥글어 지려나 한 층 한 층 발을 떼어 놓는다.
 돌이 박힌 시멘트 석축으로도 겨울바람을 막지 못하였는지 우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 옆으로 마치 동자승이 벗어놓은 고무신 모양의 숫돌 두 개가 깔끔하게 놓여있고, 따다만 국화송이가 남아있는 몇 개의 화분이 꽃향을 간직하느라 애쓰고 있다.
 
‘차나 머금세’라는 시화(사진4) 탓인가, 스님의 방은 차가 없어도 훈훈한 향기로 꽉 차있다. 고구마를 삶아 놓겠으니 다음에 올 때는 꼭 전화를 하고 오라 당부하시는 스님과 상좌의 목소리가 스님 찻상 옆 석창포 줄기 줄기에 매달린다.
 저녁 어스름, 드문드문 남아있는 잔설이 꽃처럼 박힌 마당과 울타리, 여름의 풍성함을 감추고 있는 겨울의 엄숙함을 지닌 앞산의 헐벗은 나무들이, 조각난 겨울햇빛을 심호흡하며 깊숙이 들이 마시고 있다.  

프리랜서 김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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