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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가 있어야 농악이 완성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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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가 있어야 농악이 완성되죠”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12.26 10:01
  • 호수 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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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태평소에 마음 빼앗긴 유영철씨

오늘은 태평소(쇄납, 날라리)에 마음을 빼앗긴 한 사람을 소개한다. 청양에서는 유일하게 태평소를 연주하는 유영철(64·정산면 광생리 옥현마을) 씨다. 정산풍물단원인 그는 태평소를 독학으로 배울 만큼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다. 태평소가 없어도 농악놀이는 가능하지만, 농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태평소가 빠진 농악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맛이 안 난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유영철 씨를 만났다.

농악소리에 뛰쳐나가던 소년 
옥현마을이 고향이라는 유씨는 “태어나서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며 말을 시작한다.
“아버지께서 6.25 전쟁에 참전하셨다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 저 여덟 살 때 재가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큰댁에서 살았고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네요.”

유씨는 큰 집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세 명의 사촌들과 어울려 어린시절을 보냈다. 또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는 농토가 많았던 큰집 농사일을 도우며 생활했다. 특히 그가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뛰어놀기에도 바빴던 어린시절부터였단다.

“아홉 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밥 먹다 또 잠을 자다가도 농악소리만 나면 뛰쳐나가 쫓아다녔어요. 농악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또 어렸을 때 악기가 그렇게 만져보고 싶더군요. 하지만 어른들께서는 만지지 못하게 하셨고 졸졸 쫓아다니니까 들어가라고 혼내시곤 하셨죠. 큰아버지와 어머니께도 꾸중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농악이 좋아서 끝나야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유씨는 그렇게 어른들이 신명나게 연주하는 농악소리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긴 채 짝사랑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시나브로 장구·북·꽹과리·징 등 우리 고유의 민속 악기 소리를 귀에 익히며 청년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농사짓는 농부로서도 열심히 생활했다.

노랫가락 따라 연습 또 연습
어렸을 때부터 농악소리에 푹 빠져 생활한 유씨는 결국 이십 대 중반이었던 1973년부터 정산농악회원으로 가입했다.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고픈 마음이었다.
“자치센터에 들어가 얼마 안돼서 면체육대회가 열렸는데 농악대 깃발을 들라고 하더군요. 전 사물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 때만해도 제 실력이 안됐으니까요. 안되겠다 싶었고 고민하다 태평소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농악대원이기는 했지만 기수 역할이 성에 차지 않았던 유씨는 태평소부터 구입, 정산이 고향이면서 선배인 농악 대원 이일락(69·현 대전 거주) 씨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1974년부터 2년 동안 배웠어요. 이후 대전으로 떠나셨고 저 혼자 연습했죠. 악보는 있지만 당시 저는 악보를 볼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노랫가락 따라, 농악을 치는 흐름에 따라 불었어요. 감으로 불었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런데도 잘 불었나 봐요. 제가 부는 태평소 소리를 사람들이 좋아해 줬어요.”
그는 연습벌레였고 배운지 1년뒤인 1975년부터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연주를 타인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특히 악보가 없어도 타고난 신명으로 연주하는 그의 태평소 소리는 일품이었다.

농악대 이끄는 꽃 ‘태평소’
“40년 가까이 농악을 접하다보니 장구나 꽹과리 등 다른 사물도 어지간히 칠 수 있게 됐어요. 상모까지도 돌려봤고요. 모두 매력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평소가 농악대의 꽃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일 앞장 서 농악대를 이끌어 나가고 또 태평소가 있어야 농악의 맛이 나는 이유에서죠.”

목소리를 이용해 또는 어떤 악기를 이용하든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태평소도 마찬가지다.
“시간만 나면 태평소를 불었어요. 대회라도 있으면 더 열심히 했고요. 특히 장소가 마땅치 않아 옮겨 다니며 연습해야 했답니다. 농악이 빨라질 때 그것에 맞춰 불려면 숨도 차고 힘들어요. 길게 불 때는 1시간 동안 불어야 하고, 그러다보면 볼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더 힘들어 지는 것 같고요.

하지만 전 제가 불 수 있을 때까지 할 거예요. 다른 악기보다 태평소가 어려워서 젊은 사람들이 안 배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도전했다가 포기하는 분도 있고요. 한 명이라도 뒤 이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악에 관심 좀 가져줘요”
태평소만 불면 즐겁고 흥이 난다는 유씨. 그는 “아내가 가끔 핀잔을 줘요. ‘돈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만해야지 생각하죠. 하지만 잠시 시간이 나면 어느새 태평소를 들고 나갑니다. 아내가 없을 때는 집에서, 아내가 있으면 가지고 나가서 연습해요. 지금은 가락을 한 번 들으면 연습 없이도 따라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연습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으니까요.”

유씨는 한국국악협회청양군지부 회원이면서 정산풍물단 단원이다. 특히 태평소 연주자로서 청양에서 유일하다보니 크고 작은 대회 참가시나 관내·외 행사에서 국악공연 계획이 잡히면 어김없이 태평소를 불어야 한단다. 물론 태평소 없이도 공연은 가능하지만 설명했듯 ‘농악의 맛이 안 난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농악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야 대를 이을 수 있죠. 요즘 같으면 머지않아 농악이 사라질 것 같은 걱정도 생기더라고요. 젊은이가 시골에 없는 것이 우선 문제지만 있어도 농악에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특히 단 한 명이라도 태평소를 배우려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하는 소망이 큽니다.”

지난 10월 열린 제10회 충남도지사기 남녀풍물대회에서 태평소 부문 개인상을 수상한 그는 앞으로 힘닿을 때까지 태평소를 불 것이라고 말한다.
청양유일의 태평소 연주자인 유영철씨는 대치면이 고향인 최재민(63) 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현재 태어나 단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고향 광생리에서 농사철이면 농군으로 또 농한기에는  다른 일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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