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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 시·서·화 화폭에 담는 이종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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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 시·서·화 화폭에 담는 이종철 작가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11.28 10:28
  • 호수 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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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예술 문인화와 사랑에 빠지다’

오늘은 문인화 작가 월송 이종철(55·비봉면 중묵리) 씨를 소개한다.
선의 예술, 비움의 미술이라 표현되는 문인화에서는 소박하면서 절제된 듯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시·서·화를 화폭에 담는 문인화 작가 이종철 씨다.

무작정 상경, 작가가 되다
이 작가는 비봉면 중묵리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군복무를 마쳤으며, 결혼해 금쪽같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던 중 그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27년 전이다.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는데 당시 저희가 살던 집이 도로포장으로 헐리게 됐고 갑자기 살 곳이 없어졌죠. 아직 젊었던 저는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도시로 떠났습니다.”
고향을 떠난 이 작가는 용산에 자리를 잡고 화랑을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운영했다. 

“형이 붓글씨를 잘 썼고 읍내에서 문화당을 운영하고 계세요. 동생은 인천에서 서예학원을 하면서 강의도 함께 하고 있고요. 형제들이 서예나 문인화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작가도 화랑을 운영하다보니 서예나 문인화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그는 석정 임종각씨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문인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청양 출신 서예가 송민 이주형씨의 서예 채본을 구해 한글과 한문도 꾸준히 습작하는 등 게으름 피우지 않았으며, 결국 서예학원도 열게 된다.

“공모전을 통해 학원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그래서 10년 만에 화랑을 접고 서예학원을 열었습니다. 학원을 10년여 운영하면서 문인화에 더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이후 다시 화랑을 열어 2년여 운영하다 2007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에요.”

귀촌 3년차 고향에 화실 꾸며
오랫동안 도시에서 생활하던 그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직장인인 부인과 대학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인 아들을 뒤로 하고 우선 그는 혼자 내려왔다.
“부모님께 치매가 왔어요. 그동안 형님께서 모시고 계셨는데 너무 힘드신 것 같아서 내려오게 됐습니다. 그냥 옆에 있어드리는 거예요. 가족 모두 오가면서 보살펴 드리고 있고요. 제가 올 당시는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심하셨는데, 다행이 조금 좋아지셨어요.”

그는 그림을 그리고 표구를 하는 것 등은 시골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그래서 서울생활의 흔적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고향으로 왔다. 그리고 곧 한시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부모를 돌보며 일할 수 있도록 집 바로 옆에 화실을 꾸미고 자신의 호를 따‘월송화실’이라 이름 붙였다. 또 화랑을 하던 경험을 살려 작은 표구점도 열었다.

청양 문화예술 발전 위해 최선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개인화실과 표구점을 운영하면서 한국미술협회 청양지부회원들과 함께 청양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회원전, 향토작가전 등에 참여하면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또 그는 청양도서관에서 주민대상 문인화 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청양은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아직 오지인것 같아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지도해 드리고 있고, 앞으로도 문인화를 배우시는 지역민들이 큰 무대에서 다른 유능한 분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도록 도와 드리고 싶어요. 문인화는 선의 예술입니다. 하나의 화폭에 시·서·화를 모두 담죠. 잔잔한 멋이 있어요. 그래서 문인화를 배우려는 분들도 늘어나는 것 같고, 저도 그렇게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요즘 매주 금요일 청양도서관은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 작가로부터 문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이 작가는 특히 지역 행사에서 현장 퍼포먼스를 선보여 주는 작가 중 한명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일주일에 한 번이어서 꼼꼼히 가르쳐 드리고 있어요. 배우시는 분들의 열정도 정말 대단하시고, 그래서 제가 더 신나하면서 가르쳐드려요. 현장퍼포먼스에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한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어 매화를 자주 그립니다. 자주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문인화도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작가
그는 하루도 붓을 잡지 않는 날이 없다. 자신을 위해서 또 문하생들을 위해서다.
“하루라도 붓을 놓으면 다음 날 그림이 안 그려져요. 민감하기 때문이죠. 특히 문하생들에게 채본 시범을 보여야 하는데 쉬면 시작이 오래 걸리죠.”
그는 문인화를 그리는 일에 몰두 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큰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습작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면 지금의 생활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이 작가의 형제자매들은 효심이 남다르다. 주중은 물론 주말이면 부모가 있는 집으로 와 불편함은 없는지 살핀다. 대신 주말이면 이 작가는 가족들을 만나러 인천으로 간다.
“귀촌 3년째인데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고 날마다 행복하다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부모님 건강이 가장 큰 걱정인데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셔서 다행이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면서  가르쳐 드릴 수도 있고요. 또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서 외롭지도 않습니다.”

27년 전 상경 후 화랑과 서예학원을 운영했고, 또 문인화와 서예 등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 덕분에 대한민국미술대전·문인화대전 등에서 여러 차례 특·입선을 했고, 인천광역시미술대전·대한민국제물포서예문인화서각대전 등을 통해 초대작가가 됐다.

특히 이 작가는 공모전 출신으로 추천작가를 거쳐 초대작가가 됐다. 그리고 한국미술협회 회원이 되기 위해 10년 여 고생 했다.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쌓아왔다는 이야기다.
문인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종철 작가의 꾸밈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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