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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수필집 출간 “읽고 쓰는 습관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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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수필집 출간 “읽고 쓰는 습관 덕분”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5.23 11:24
  • 호수 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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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청남면 천내리 전동진씨
오늘은 효를 다해 95세의 부친을 봉양하며, 6남매 또한 정성으로 잘 키운 아버지를 소개한다. 특히 오늘 소개할 아버지는 농부이면서 잠자고 농사짓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 책을 읽고, 또 일상은 물론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필요한 것들은 꼭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최근에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전동진(69·청남면 천내리)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21살 때 결혼해 48년 동안 옆에서 말없이 내조를 다 한 부인 이남순(69)씨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오늘은 효를 다해 95세의 부친을 봉양하며, 6남매 또한 정성으로 잘 키운 아버지를 소개한다. 특히 오늘 소개할 아버지는 농부이면서 잠자고 농사짓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 책을 읽고, 또 일상은 물론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필요한 것들은 꼭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최근에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전동진(69·청남면 천내리)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21살 때 결혼해 48년 동안 옆에서 말없이 내조를 다 한 부인 이남순(69)씨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공부가 좋았던 어린 소년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고추 묘를 심는 날로 가족들 모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남동생들도 와 일손을 돕고 있어 시끌벅적 한 모습이기도 했다.
“바쁠 때는 동생들이 와서 도와줘요. 고맙죠. 오셨으니 고추 묘 한 번 심어 보실래요?” 동생들과 함께 일하던 전씨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리고 그는 “손님이 오셨으니 덕분에 쉬어야겠다”며 봄바람이 시원한 마당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내리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곳에서 아버님까지 15대째 살고 계시고, 이어 제가 논농사와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죠. 세월이 빠른 것 같아요. 중학교 졸업 후 농사를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칠순이 코앞이니까요.”전씨의 말이다.
전씨는 곧 칠순을 바라보지만 그 나이가 무색할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4남매 중 장남으로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이었고, 남의 집으로 식량을 꾸러 다니지 않을 만큼의 농사를 짓는 소농의 아들이었으며 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청남초와 공주탄천중학교를 다녔는데 20리 길을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나요. 멀었지만 어렵지 않았죠. 공부가 좋아서요. 그러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할 때는 정말 안타까웠죠.”
그는 집안형편으로 공부를 포기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까지는 포기할 수 없었고, 때문에 농사를 도우며 서당·이웃마을 공부방을 다니며 한문·소학·대학·맹자 등을 공부했단다.

“4년 정도 서당, 마을공부방을 다니며 공부했어요. 그러다보니 아버지께서 어느 새 환갑을 넘기셨고 제가 농사를 맡아 해야 했죠. 그래서 이후부터는 농사에 전념했습니다.”
공부를 좋아했던 소년은 어느새 전업농이 됐고 스물 한살 되던 해에 부여가 고향인 동갑내기 이남순 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딸 출생 후 군에 입대하게 된다.

농사 관련 정보 군대에서 얻어
“군대에서도 저는 운 좋게 의무중대에서 복무했고 짬짬이 책을 볼 수 있었어요. 당시 영농기술지라는 책이 있었고 가축을 기르는 법부터 채소 재배까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
특히 그는 제대 3년 후부터 복숭아 농사를 시작했다. 물론 군 복무 중 얻은 정보가 도움이 됐고, 이후 40여 년 동안 꾸준히 벼농사를 지으며 복숭아 농장을 운영해 가고 있다. 

“복숭아 농사 시작 후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거의 5년 정도는 수확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부터는 점차 수확량도 늘어나고 아이들 뒷바라지와 생활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씨 가족들은 현재 약 2만7000여 제곱미터에 벼농사를 짓고 있고 또 7000여 제곱미터 규모의 복숭아 농장을 운영해 가고 있다.

“지금은 아이들 모두 출가했지만 옛날에는 식구가 많았어요. 6남매를 뒀고 또 어른들도 계셨고요.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며, 또 외지에서 살던 동생들도 바쁠 때면 말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일을 도왔죠. 부자는 아니었지만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생활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지금 모두 잘 지내고 있고요.”

메모 습관 덕분에 작가됐다
농부인 전씨를 부르는 또 하나의 호칭이 있다. 2010년 문학사랑 축제에서 ‘복숭아와 함께 살아온 날들’, ‘송아지 낳던 날’ 등 두 작품 당선으로 등단해 작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필집 ‘와마루 향촌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수필집에는 전씨의 고향생활, 마을주민과 함께한 국내외 여행, 명산 산행, 지역행사 참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엇이든 메모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오래전부터 농사일지·가계부를 썼고, 또 10년 전부터는 일기도 썼고요. 그러다 등단을 했죠. 또 그동안 기록했던 자료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저에게 풍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수필집 출간을 권유하셔서 하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메모 덕분인 것 같아요.”

천내리에서 그의 집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늦은 시각까지 책을 읽고 또 잠을 자다 깨는 순간 책을 집어 드는 전씨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마다 책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메모지와 볼펜이다.
“제 책상에는 책, 메모지, 다 쓴 볼펜 등이 수북해요. 그래서 지저분하다고 아내에게 자주 혼나죠. 책을 읽고 무엇이든 메모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제 삶에 도움도 되고요. 다른 분들도 책을 좀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작가이며 농부인 전씨는 앞으로도 글을 쓰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했다.
“아버지께서 앞으로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아내에게 고맙고 오래오래 해로하자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슬하에 6남매를 뒀는데 아이들 모두 농사를 짓는 저희 부부를 대신해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머님과 어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그 덕분에 모두 제 위치에서 역할을 다 하고 있죠. 그 은혜를 생각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생활해 주길 바랍니다.” 

읍내에서 천내리 전씨의 집을 찾아 가는 길은 멀었다. 하지만 울긋불긋 봄꽃들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 질 것 같은 푸르고 울창한 나무들을 벗해 가노라니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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