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우리의 이웃 - 3대가 오순도순 신현설씨 가족
상태바
우리의 이웃 - 3대가 오순도순 신현설씨 가족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5.09 10:04
  • 호수 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웃들이 자식 부자라고 부러워해요”

오늘은 3대 8명이 오순도순 생활하고 있는 대가족을 소개한다. 신현설(82·화성면 화강리) 씨 가족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가족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그 모습이 모두 닮아 보였다. 신씨 가족들과의 정겨운 만남이다.

가장 귀한 보물…‘가족’
봄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로웠던 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신씨의 집에 도착했다. 덕분에 신씨와 부인 조재순(80) 씨, 아들 부부인 남철(47)·안혜란(41 )씨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고 이들은 한 목소리로 “농촌은 요즘 무척 바빠요. 농사준비로요. 그렇다보니 점심시간에나 잠깐 쉬네요. 잘 맞춰 오셨습니다” 라며 기자를 반겼다. 그리고 아버지 신씨는 “9남매를 뒀어요. 덕분에 옛날부터 이웃들은 항상 북적이던 저희 집을 ‘자식 부잣집’이라며 부러워했죠. 옛날에는 면관계자에게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는다고 쓴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저도 아내도 자식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땅을 사게 되고 살림이 늘어나더군요. 아마도 모두 복덩이였지 싶어요. 물론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잘 견뎌낸 것 같고, 덕분에 지금 모두 잘 살고 있으니 행복합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씨 부부는 넷째 아들 부부와 손자·손녀 4명과 살고 있다. 아니, 공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손녀를 빼면 주중에는 7명이 함께 살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도 이웃들은 우리를 부러워해요. 아이들이 많다보니 항상 북적대고 사람 사는 것 같다고요. 돈이 많은 것도 좋겠지만 가족들이 많은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든든하기도 하고요. 가장 귀한 보물은 가족인 것 같습니다.”신씨의 말이다.

농사짓고 술통 만들어 가족 건사
아버지 신씨는 고향인 화강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11살 때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이후부터 줄곧 농사를 지었으니 그 세월이 70년 가까이 될 것 같단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형님을 도와 일을 했죠. 그러다 21살 때 결혼했고 2년 만에 분가 했는데, 당시 형님이 논 2마지기를 주시더군요. 이후 그것을 밑천으로, 또 남의 농사도 지어주면서 돈을 모았고 서른 살 되던 해에 땅을 조금 살 수 있었어요.” 

그는 밤낮없이 일해 번 돈으로 처음으로 산 땅을 바라보던 그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땅을 다시 파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단다. 특히 그는 이 다짐을 지켜나가기 위해 이 때 쯤 농사 외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바로 술통이나 거름을 퍼다 나르는 오줌통, 물을 퍼 올리는 타래박 등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 마을은 통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의 통골입니다. 그렇다보니 통 만드는 분도 몇 분 계셨죠. 그래서 어깨너머로 배워 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신씨는 손끝이 야무졌다. 때문에 만든 통 마다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단다.
“농사지으며 밤이면 통을 만들어 새벽 2시면 메고 나갔어요. 하루 나가서 팔고 오면 다른 농가의 2, 3일 일한 품값이 나왔고 몸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죠. 그렇게 20년 동안 했고 덕분에 땅도 샀고 자식들 모두 잘 키웠네요. 농사만 지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플라스틱이 나오면서 판로가 없어져 그만뒀어요. ”

신씨는 농사와 통 만드는 일까지 어떤 일에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논·밭·산 등 땅을 불려나갈 수 있었으며 ‘자식 부잣집’에 더해 ‘땅 부잣집’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제일 고생했어요. 고맙고 앞으로 건강하게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죠
현재 신씨 부부를 봉양하며 생활하고 있는 아들은 9남매 중 넷째 아들인 남철씨 부부다. 남철씨는 부친의 대를 잇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지금은 연로한 부친을 대신 해 거의 모든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전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졸업까지 참다 농사를 시작했죠. 또 제가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늦은 것도 아닌데 그 때는 노총각이라 장가를 갈 수 있을까 주변에서 걱정하셨죠. 하지만 간호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선뜻 시골로 와 줬고 함께 농사지으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고생 많이 했어요. 주변에 친구도 없었고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죠. 하지만 잘 견뎌줬습니다.” 남철씨의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일을 하고 싶었다는 남철씨, 그 때문일까 그는 아버지에 뒤질세라 어떤 일에든 적극적이며 열심이란다. 물론 가족들을 위하고 돌보는 일은 최우선이다.
부지런한 것으로도 뒤지지 않는 신씨 가족. 그 결과는 결혼 후 2마지기가 전부였던 땅을 지금까지 산·논·밭을 합해 모두 7만 여 제곱미터 규모로 늘릴 수 있게 했다.

“우리 소유의 땅 외에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어요. 모두 합하면 11만5000여 제곱미터 정도 될 것 같네요. 그렇다보니 정말 바쁘게 삽니다. 아버지께서 지난해에 심장 수술을 해 심장 박동기를 넣고 생활하고 계세요. 또 어머니께서도 허리와 다리 등이 불편하시고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가족들도요.” 남철씨의 말이다.

처음 땅을 샀을 때 ‘한 번 산 땅은 절대 팔지 않겠다’는 이들의 다짐은 지켜졌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왔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현설·조재순씨 부부는 현재 화성면농업경영인회장을 맡고 있는 아들 남철씨와 화성중학교 자모회장인 며느리 안혜란씨의 봉양을 받으며, 송이(공주여고 2)·동화(화성중 3)·동주(화성중 1)·혜인(합천초4) 학생 등 손자·녀와 함께 다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