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백월산에 반해 청양에 자리 잡았어요”
상태바
“백월산에 반해 청양에 자리 잡았어요”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4.18 14:07
  • 호수 89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양에 둥지를 튼 사람들: 서울 탈출 꿈꿨던 남우성 씨
오늘은 지난 2008년 청양군민이 된 남우성(46·남양면 백금 1리) 씨를 소개한다.
남씨는 현역 배우이며 극단 양지무리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 연극·뮤지컬·무용·문화 창작·기획 관련 업무를 맡아하고 있는 양지창작문화연구원 대표도 맡고 있다. 활동영역 대부분이 도시지만 그는 청양에 자리를 잡고 서울을 오가고 있다. 그리고 시나브로 농민이 되기 위한 준비도 해 가고 있다.

오늘은 지난 2008년 청양군민이 된 남우성(46·남양면 백금 1리) 씨를 소개한다.
남씨는 현역 배우이며 극단 양지무리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 연극·뮤지컬·무용·문화 창작·기획 관련 업무를 맡아하고 있는 양지창작문화연구원 대표도 맡고 있다. 활동영역 대부분이 도시지만 그는 청양에 자리를 잡고 서울을 오가고 있다. 그리고 시나브로 농민이 되기 위한 준비도 해 가고 있다.

연기자를 꿈꿨던 시골소년
서산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가 줄곧 생활했다.
“8남매 중 장남이에요. 그러다보니 부모님께서 제게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기억나는 건 항상 육군사관학교를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죠. 아들이니까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고, 결국 저는 고집대로 연기자가 됐어요. 우연한 기회에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서요.”

그는 에스비에스 개국 프로그램인 ‘분 얘기’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또 연극은 ‘돈 황제’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20여 년 전이다.
“데뷔 후 저는 주로 연극을 했어요. 최근까지 50여 편 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임권택 감독님의 ‘하류인생’ 등 몇 편, 드라마는 총 10여 편 정도고요. 특히 제가 불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봉축공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개관 기념공연 등 다수 출연을 했습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연기 외에도 명동성당 합창단, 기독교 맹인중창단, 불교 합창단 등이 함께 참여하는 화합한마당 행사 기획 등 관련 일도 해 왔다.
“배우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것이에요. 연기자들 중 일부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무명생활을 거치고, 때문에 연기 외에 다른 일들도 함께 하죠. 저도 성우로 한국맹인복지협회 회원들을 위해 점자책을 읽어 녹음 하는 일 등 많은 일을 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경제적 고민은 연기 전공자나 비전공자나 겪는 것일 거예요.”

이런 이유일까,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던 그는 꿈을 이뤘지만 한참동안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그럴 즈음 불교를 접했고, 한 때 출가를 고민할 정도로 심취하기도 했단다.
“공연만 끝나면 절로 사라지는 사람으로 불릴 정도였어요. 그러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국 2008년도에 불자 연극인들이 한 뜻으로 모여 양지창작문화연구원과 극단 양지무리를 창립,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다양한 기획업무도 시작했죠.”
 
“청양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학창시절부터 시작해 배우로 성우로 또 극단 대표로 활동해 오던 그는 2008년 9월 갑자기 남양면 백금1리로 이삿짐을 옮겼으며, 그해 11월부터 생활을 시작했다.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았지만 항상 시골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수덕사에 계신 한 스님을 뵙고 ‘시골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니까 ‘시골에 집구하기 쉽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이어 제가 청양이 생각나서 ‘청양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내 고향이 청양이다’하시면서 바로 가보자고 하시더군요.”

말이 나오자마자 그는 스님과 함께, 이후에는 혼자 지도를 보고 살 곳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화성을 넘어 보령으로 가는 데 멀리 뾰족한 산이 보였어요. 저를 막 끌어 당기는 것 같더라고요. 물어물어 찾아 가보니 백월산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소개받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 주인도 불자이셔서 선뜻 사랑채를 내 주셨습니다. 그것이 2008년 9월이었고 그해 11월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백금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렇게 그는 백금 1리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 서울을 오가면서 연구원과 극단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배우도 겸하고 있다. 또 백금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에 더해 도움 될 일이 없을까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폐교 된 백금초등학교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이 오갈 때여서 그 일을 도와 드릴 수 있었죠. 또 지난해에는 청소년문화예술체험교실 오룡골 축제 기획과 진행을 맡아줬고요. 이런 일들을 함께 하면서 지역민들의 얼굴을 익혔고 또 많이 친해졌습니다.”

주민들은 그를 ‘문화 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앞으로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영화 학교를 개설해 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폐교를 임대해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양지창작문화연구원은 통기타 가수들과 연계가 돼 있어요. 가수들은 재능기부, 저희는 기획기부 등을 해서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도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내려온 해인 2008년도에 폐교에서 주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려고 포스터까지 제작했는데 잘 안됐어요. 주민들도 또 저도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는 또 조금씩 농사도 지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인근에 7600여 제곱미터 규모의 땅을 확보해 놨다. 이곳에 우선 콩을 심고 수확해 된장 등 가공품도 만들어 보고 싶단다. 이것으로 아는 지인들에게 청양을 홍보하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일을 끝내고 버스를 타면 ‘서울 탈출이구나’하는 생각에 행복해 진다는 그. 그는 자신이 시골에 적응을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랑한다. 때문에 앞으로 서울 일을 조금씩 줄여가려고 계획 중이기도 하다.

“저희 집에 도시 분들이 많이 놀러오세요. 그리고 정말 부러워하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곳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귀농 3년차 배우 남우성 씨. 그는 모노드라마 ‘입에 꽃이 핀 남자 ’로 연기상을 수상했고, 불교 텔레비전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 출연해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여성 5인조그룹 카라가 출연한 일본드라마 ‘우라카라’에서 방송국 본부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