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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인 최은숙(청양중)의 ‘성깔 있는 나무들’을 읽고
교사는, 화 대신 슬픔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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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인 최은숙(청양중)의 ‘성깔 있는 나무들’을 읽고
교사는, 화 대신 슬픔을 아는 사람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1.03.21 14:47
  • 호수 8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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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의 좋은 책 읽기: 청양정산고 교사 류지남

이른바 진보교육감으로 불려지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에 이어 학교 내의 모든 체벌에 대해 금지 방침을 밝힌 이후, 체벌 문제가 사회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조중동 등의 보수 언론은 일부 학교와 교사들의 말을 인용해가며 마치 체벌 금지 때문에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학교가 곧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체벌 금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수없이 내려 보냈던 교과부는 직접 체벌은 안 되고 대신 운동장 돌기나 팔굽혀펴기 등의 간접체벌은 허용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단다. 일부에선 수업 시간에 잠만 자거나 수업을 못하도록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과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 때문에라도 최소한의 체벌은 필요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벌이 아니라 상담과 치료다. 단언컨대 학교 내 체벌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어야 할 국가적 수치다. 유럽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 대만도 체벌을 금지한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부분 선생님들은 체벌하지 않으며, 체벌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현장 교사 입장에서 볼 때 체벌은 교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여기, 감히 우리나라의 모든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한 번씩 꼭 읽어주기를 바라는 교육일기를 소개한다. 나무를 기르고 농사를 짓듯이 혼신의 힘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길러가는 한 교사의 참 슬프고 아름다운 삶을 읽어가는 동안, 백 번 천 번 나는 참 많이 부끄러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어떤 일정한 틀에 끼워 넣어야 하는 합판이 아니라, 산마루에서 혹은 골짜기에서 자라나는 동안 형성된 성깔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여야 마땅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교육의 원리를 우리는 너무 깊은 땅속에 묻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름지기 학교란 작고 아름답고 여유로워야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사이의 진정한 만남과 배움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래서 청양중학교에서의 5년 간의 삶이 더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는 최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 더불어 즐겁고 행복했다.

말썽쟁이들 데리고 봄꽃 꺾다가 똥구덩이에 빠져가며 아이들과 비밀과 사랑을 공유하고, 조부모와 사는 아이의 집에 가서는 주저 없이 딸이 되고 고모가 됨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 멋진 나무로, 시인으로, 봉사 일꾼으로 자라도록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미래가 되는 선생님. 시험성적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같이 칠판 귀퉁이에 영단어와 한자를 쓰고 쪽지 시험도 보지만, 공부 안하고 말썽만 피우는 녀석들이 젤루 그리워하는 선생님. 살아 있으니 떠들고, 유리창 깨고, 침도 뱉고, 휴지도 버리고, 쌈질도 하는 것이라며, 교사는 형사가 아닌 농부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라는 선생님. 온통 병든 세상에서 어찌 아이들만 깨끗하게 자랄 수 있냐며, 문제에 부딪혀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슬픔과 연민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좀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문제 해결력을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한다고 믿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과 더불어 산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최 선생님도 늘 천사표만은 아니어서, 어느 땐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아이와 드잡이까지 한 적도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물론 과밀학급과 많은 잡무로 시달리는 교육 현실을 감안할 때, 회초리마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여건 문제는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풀어가야 할 일이지, 체벌을 통한 교육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체벌을 하면 당장 눈앞에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폭력의 용인이나 내재화 등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만들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서당식 회초리는 21세기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체벌과 폭력의 언어가 아니라, 대화와 평화의 광장을 학교 안에 건설해 나가는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조금, 아니 많이 늦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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