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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가르쳐 드리는 대신 삶의 지혜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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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가르쳐 드리는 대신 삶의 지혜 배워요”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3.21 13:12
  • 호수 8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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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청양군 문해교사회 표선명 총무

오늘은 할머니들에게 인기 최고인 한 사람을 소개한다. 표선명(53·청양군 문해교사회 총무) 씨다. 표씨는 한 평생을 까막눈으로 생활했던 할머니들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한글 교육을 통해서다. 그렇다보니 할머니들에게 표씨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됐다. “칭찬 좀 해 줘요”라며 할머니들이 추천한 표씨를 한글교육장에서 만났다.

교사가 더 기다리는 수업시간
표 총무를 만나러 간 날은 본의1리 마을회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73세의 양문선·이정자 할머니, 박순복(78)·이준용(79)·한연화(80) 할머니 등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사진 오른쪽) 학생 여섯 명 중 김분영(78) 할머니는 이날 결석 했단다.

할머니들은 글씨쓰기와 퍼즐 맞추기 등 숙제 검사를 받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니 당당히 숙제를 내놓는 할머니와 망설이듯 빈 노트만 살포시 내놓으며 미안해하는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표 총무는 “고생하셨다”는 칭찬과 “이번만 봐 드릴께”라며 대신 “어디 편찮으셨어요?”라고 안부를 묻는다. 계속해 수업을 준비하면서 “엄마들을 취재해 주세요.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데요”라며 말을 시작했다. ‘엄마’라는 말이 참 친근하게 느껴졌다.

“현재 본의1리만 해도 노인회관 이용자가 30여분 정도 되고, 이 중 한글을 모르는 분들이 수업하시는 여섯 분외에도 조금 더 계세요. 하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으시죠.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리시고 간혹 농사를 짓는 분도 계셔서 공부하기 힘들죠. 이런 분들을 책상 앞에 앉히기까지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지금 공부하시는 분들은 농한기나 농번기에도 정말 열심히 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제가 신나고 수업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어른들 기쁜 얼굴이 저의 행복
표 총무는 한글교사 활동을 시작한 첫 해인 2009년 본의1리와 인양리에서, 또 지난해에는 대평리와 해남리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이어 올해는 다시 본의1리와 대평리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교사 양성과정 교육을 받고 현장에 나가기 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그러다보니 부담감으로 첫 수업을 시작했었죠. 그런데 어른들과 계속 만나다 보니 우려가 없어졌습니다.”

특히 그는 수업이 계속될수록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눈이오나 비가 오나 결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어른들, 또 ‘어디 가서 못하는 얘기 선생님만 만나면 술술 나온다’며 가슴 속이야기를 털어 놓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을회관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 전했다.

“제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어요. 다른 곳에서 일 할 기회가 있었죠. 하지만 한글교사가 더욱 더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은 사라지고 정말 잘 했구나 생각됐어요. 수업을 위해 회관에 도착하면 어른들께서 책상에 노트며 책을 가지런히 펴 놓고 기다려요. 또 ‘보고 싶었다’며 반겨주십니다. 그럴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실거예요. 3년 동안 그렇게 지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아요.”

지속적인 한글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본의 1리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른들은 2009년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어른들에게도 혜택을 줘야 해서 지난 1년을 쉬었다 올해 다시 시작했다. 군내 몇몇 군데의 상황도 이와 같다.
“어른들은 어제 배운 것도 오늘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실 정도로 기억력이 가물가물 하세요. 그런데 1년을 쉬니 거의 잊어버리셨더군요. 이런 점으로 볼 때 어른 대상 한글교실은 3년 정도는 지속돼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생활에 필요한 한글은 깨우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의1리 어른들은 표 총무에게 “잘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데 날마다 잊어버려 미안하다”고 가끔 말한단다. 그럴 때 마다 표 총무는 “곧 잘 하실 거예요”라며 반복 수업을 계속해 주고 있다.
“집 주소도 쓰지 못했고 읽지도 못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통지표를 받아와도 당연히 못 봤고요. 그런데 이제 한글을 배웠고 아직 잘 쓰지 못해도 읽을 수 있게 되니 좋죠. 지난 번 투표 하러 가서 내 이름을 직접 찾으니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특히 우리 선생님은 얼굴 찡그리는 법이 없어요. 항상 웃으며 자상하게 가르쳐줘요. 욕심이겠지만 3년이 아니라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본의1리 할머니들의 말이다.

고마운 마음으로 한글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해 표 총무는 더욱 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 청양군내 성인문해교실(한글교실) 학습장은 47곳, 교사는 모두 30명이다. 30명이 한 곳 씩 맡아 한글을 가르치고 나머지 학습장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표 총무도 그 중 한 명이다.

서로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는 사이라는 표 총무와 할머니들. 그 모습이 참 정겨웠다.
표 총무는 목면치안센터 권혁찬(52) 센터장과의 사이에 형제를 두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특히 남편 권 센터장 또한 아내의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어 든든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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