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하늘 아래 첫동네 이장은 ‘생활사진 마술사’
상태바
하늘 아래 첫동네 이장은 ‘생활사진 마술사’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2.21 13:14
  • 호수 89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이웃:대치면 개곡리장 강인승 씨

고향이 항상 그리웠다
장곡리와 개곡리를 잇는 개곡교를 건너 계속되는 산길을 오르고 또 아슬아슬한 고개도 서너 번 돌아가니 아름다운 마을 개곡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던 강 이장은 “오는 길은 좀 힘들지만 우리 마을 참 아름답지 않느냐”면서 마을 홍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든지 저는 우리 마을 이야기를 해요. 꼭 한 번 와보면 반할 거라고요. 도시에서 35년 동안 살다 10년 전 내려왔는데, 도시에 살 때도 지금도 누구를 만나든 그랬습니다. 특히 서울에 있을 때 언제 고향으로 내려가지 할 정도로 항상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강 이장은 고향에서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 열일곱 살 때인 1966년 상경해 종로 5가 서적도매상에서 일을 했으며, 이후 1984년도 구이동에 ‘문성서점’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6년여 직접 운영 했다. 1990년도부터는 부인 김서영(55) 씨의 고향인 통영으로 자리를 옮겨 수입전문점을 운영했으며, 1993년 다시 상경해 가락동에서 ‘문성서점’을 계속 운영했다.

“상경해 처음 배운 것이 서점 일이었고 그렇다보니 그 일을 오랫동안 했죠. 서점에 있으면서 미처 못 했던 공부도 틈틈이 했고요. 통영으로 내려갈 때에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지역텃새에 밀려 다시 서울로 가 서점을 하던 중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카페로 전향해 운영하기도 했죠. 그러다 시골로 왔습니다.”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고향으로 가는 날만 기다렸다는 강 이장, 그러던 차에 고향에 살던 동생에게 병이 생겼고, 이에 강 이장은 간호를 위해 시골 행을 결정했다. 2001년, 부인 김씨와 자녀들은 교육 때문에 서울에 남았고 혼자 내려왔다.
“동생은 3년여 치료 후 완쾌 돼 나갔어요. 하지만 저는 시골에 눌러 앉았죠. 그렇게 시골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벌써 10년째고, 4년 전에 이장으로 선출돼 그 일도 하고 있습니다.”

“심심할 시간 없어요”
오매불망하던 시골생활이었기 때문인지 그는 매일 즐거웠단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지만 불편하지 않다. 개곡리 마을 주민이 모두 가족이기 때문이다. 
“농사철은 농사짓느라, 또 농한기라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쁩니다. 특히 군복무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배웠는데, 지금은 가장 즐기는 취미가 됐어요. 컴퓨터도 배워 유용하게 사용하다 보니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그의 기술(?) 이야기다. 그는 군복무 때 사진 찍는 기술을 배웠으며, 군 제대 후 까지 한참동안 다른 사람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곤 했단다.
“시골에 내려와서 카메라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 열심히 찍었죠. 옛날에는 필름 카메라여서 돈이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찍고 지우고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금전적인 부담이 덜 되죠. 생활사진을 찍습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5년 전 카메라를 구입했고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마을 풍경이나 주민들을 찍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범위를 넓혀 마을 행사 등 다양한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또 이렇게 찍은 사진은 컴퓨터를 활용해 더 아름답게 연출,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컴퓨터교육을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2003년부터요. 파워 포인트, 액셀, 포토샵 등을 활용할 줄 알죠. 그래서 사진에 응용해 봤어요.”

그는 컴퓨터를 활용해 사진에 이야기를 더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우선 개곡리 마을 자체 홈페이지인 ‘하늘아래첫동네 칠갑산개실마을’을 만들었으며, 사진과 이야기들을 올리고 있다. 또 인터넷상에서 개인 카페도 운영하는가 하면 다음 등 포털의 카페에 회원으로 등록해 마을 사진과 소식을 올려 주기도 한다.

“인터넷 카페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니 전국에 친구가 있고 서로 마을을 방문하기도 해요. 마을에 와서 농산물도 많이 사가고 홍보도 많이 해줍니다. 농번기에는 농사도 짓고 밤에는 행사 사진도 찍어야 하고 심심할 시간 없답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분신처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도 찍고 홍보 하는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그를 ‘강 기자’로 부른다. 그리고 그가 보이지 않으면 “강 기자 어디 갔지?”할 정도가 됐다.
“시골에서 생활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죠. 요즘 저는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은 군내 풍경, 농사짓는 모습 등 마을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찍어 정리 한 번 해보려고 해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죠.”

그는 차가 없다. 시골로 와 이것저것 준비하고, 또 얼마 전 집수리까지 하느라 구입이 늦어졌다. 차를 구입하면 보다 다양한 사진촬영이 가능해 질 거라고 말한다.
그는 사진은 찍지만 모두 뽑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워낙 많은 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이웃들이 컴퓨터를 배우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웃들이 ‘사진 찍고 왜 안 줘?’ 하세요. 하지만 사진 빼드리고 돈 받기도 그렇고, 계속 그냥 빼 드리면 제가 부담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는 도시에서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요즘 느낀단다. 그래서 항상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20여 가구 50명도 채 안되는 주민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벗해 살고 있는 개곡리는 산속, 또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할 정도로 고 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곳에 환갑이 넘었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패기로 적극적인 강 이장이 살고 있다.
강인승 이장은 대치면 새마을 지도자, 칠갑산친환경밤재배자연합회 대치면 총무를 4년째 맡고 있으며 올부터는 군 총무도 맡고 있다.
‘강 기자’ 강인승 이장과의 즐거운 만남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강인승 2011-02-24 02:38:03
이순금 기자님!감사합니다~
기자님 덕분에 많은 축하인사에
무한 즐겁고 조금은 쑥스럽기두 합니다~ㅎㅎ
앞으로 내고장 이모 저모 성의껏 담아서
함께 공유하며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건강하시고 청양 발전을 위해
많은 수고 부탁드립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