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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一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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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一回)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1.02.14 14:35
  • 호수 8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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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남양면 대봉리 봉은사 주지 석담 법운

단풍이 채 물들기도 전에 서리를 맞고 오그라지는 나무 이파리를 보면서 ‘이제 가을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당을 쓸다가 날아든 은행잎이 노란색으로 하도 선명하게 물들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주워 들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었다.

나무는 만고풍상과 폭풍한설에 시달리면서도 세월을 더하면 더할수록 꿋꿋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산다.
그런데 사람은 왜 그렇지 못할까? 아이로 태어나서 홀로 서고 걷고 뛰어다닐 때까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했던가? 그리고 잦은 병마와 불의의 사고를 겪어 내면서도 살아나지 않았던가? 질기고 질긴 것이 목숨이라면 몸 덩어리를 이끌고 사는 마음은 더 끈질기고 건강하게 지탱하고 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지혜가 밝아 더욱 더 그러하다. 잘난 사람이거나 못난 사람이거나 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시고 입고 잠자며 일하고 쉬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남을 배려하여 봉사하고 기부하며 나누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의 한부부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노력하며 기대하는 대로 다 이루어져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공부를 한도 끝도 없이 열심히 했어도 시험을 보고 나면 합격보다 불합격하기가 쉽다. 고관대작은 아니라도 정상을 향하여 뒤돌아다 볼 사이도 없이 뛰고 또 뛰다 보면 마음 털어 놓고 지내던 친구마저 멀어져서 외로워지기 쉽고,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면 허탈감에 빠지기가 쉽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 보겠다고 등뼈가 휘어지도록 일하여 재산을 모아보려고 하지만 표도 없이 쓰다보면 부자가 되기는커녕 쪼들리기가 쉽다. 굳은 결심으로 열심히 살았다 해도 애초에 설계한 꿈과 같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무정한 세월만 흘려보낸 것이다. 세상살이가 예측할 수 없이 혼미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실로 드러나는 생활상이 보편적으로 평범하다면 그럭저럭 자위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만 기대를 초월하여 빈약하다면 실망감으로 끝내는 좌절과 공황의 늪에 빠지기가 쉽다.

이러한 시기엔 결과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일생을 통하여 세 번의 기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충고의 말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속에 숨어 있는 참뜻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맺어진 결과가 현재의 생활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지금 살고 있는 대로 맺어지는 결과가 미래의 생활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임으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각오로 현재를 잘 살라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자신이라고 일컫는 ‘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냉철하게 살펴보고 확철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실수와 실패는 죄가 아니다. 잘못된 관습을 진솔하게 참회하고 자기 자신에게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단절하면 된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헛된 망상도 꾸지 말아야 한다. 모든 실패의 근원지는 지나친 욕심과 헛된 망상을 꾸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다. 그래서 부모형제와 일가친척과 스스로 친구와 선, 후배들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놀리고 욕하며 핍박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를 굳게 믿어라. ‘나’는 무불 상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서 뛴 것도 ‘나’요 병마를 극복한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넓고 넓은 세상의 여기에서 ‘나’와 ‘너’가 같은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인연이며 행복한 삶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용기는 싸움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역경에 처해 있을 지라도 성정이 흔들리지 않고 슬기롭게 사는 것이다. 하늘이 있으니 땅이 있고, 땅이 있으니 바다가 있다. 하늘이 있으니 새가 날고, 땅이 있으니 길이 나며, 바다가 있으니 물고기가 노닌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은 ‘나’가 사는 여기에! 항상 ‘나’의 마음으로 결정하는 지금! ‘나’가 가꾸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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