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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불교 전하는 노승 “청양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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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불교 전하는 노승 “청양이 좋아요”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1.01.17 09:59
  • 호수 8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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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둥지를 튼 사람들: 청양 풍경에 반한 청관지원 스님
오늘은 청양의 수려한 산세와 청정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이사 온 한 사람을 소개한다. 인천이 고향인 청관지원스님(정산면 마치리 칠갑사)이다.
그는 달마도를 보급 불사해 와 오래전부터 달마사로, 특히 그림으로 불교를 전하는 스님으로도 통한다. 그가 머무는 곳에 찾아가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에는 무서운 얼굴 화가 난 듯한 눈초리로 세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다양한 모양의 달마도가 손님을 반겼다. 청양에 새 둥지를 튼 청관지원스님(63·속명 정지원)을 소개한다.

오늘은 청양의 수려한 산세와 청정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이사 온 한 사람을 소개한다. 인천이 고향인 청관지원스님(정산면 마치리 칠갑사)이다.
그는 달마도를 보급 불사해 와 오래전부터 달마사로, 특히 그림으로 불교를 전하는 스님으로도 통한다. 그가 머무는 곳에 찾아가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에는 무서운 얼굴 화가 난 듯한 눈초리로 세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다양한 모양의 달마도가 손님을 반겼다. 청양에 새 둥지를 튼 청관지원스님(63·속명 정지원)을 소개한다.

청양이 눈에 밟혔다
지원스님이 청양 사람이 된 것은 2010년 4월로 아직 1년이 채 안됐다. 
“지난해 4월에 이사 와서 7월에 칠갑사라는 이름으로 점안식을 했습니다. 두어 달 동안 집을 고쳤죠. 청양은 예전부터 오가면서 지나치던 곳이었어요. 칠갑산 산세가 너무 좋아 청양에서 꼭 살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자꾸 눈에 밟혔던 곳이었는데 이제야 자리를 잡게 됐네요. 30여년 가까이 알고 지내고 있는 이제찬 목면 본의1리장도 많은 도움을 줬고요.”

포교활동을 위해 전국 곳곳을 옮겨 다녔던 지원스님은 청양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곳이더라는 설명을 전한다. 때문에 청양이 회향 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고도 말한다.
“주로 서울·경기, 대전·공주 쪽에서 포교활동을 했었어요. 그러다 청양으로 왔죠. 큰 길 가까이 자리를 잡은 것은 오가는 분들의 눈에 잘 띄어 포교활동을 좀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저와 참선 중인 스님 한분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청양으로 참 잘 왔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수행은 물론 화가로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도 있어 좋습니다.”

“그냥 그리고 싶었다”
지금부터는 달마도 보급을 통한 지원스님의 포교 이야기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매번 칭찬을 들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아버지께서 아마추어 화가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죠. 그러다 1967년 프로로 전향해 서양화, 동양화․만화 등을 함께 그렸죠.”

프로 전향 후 그는 옛날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상영됐던 ‘대한뉴스’ 자막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넣는 일, 대한극장 등에서 상영됐던 만화영화 ‘황금철인’제작,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 홍보 애니메이션 제작 등 수많은 작품의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불교신문, 지방지 등에 삽화도 그렸다. 그리고 달마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35년 전부터다. ‘중생이 곧 부처요, 진리며 자비이다’라는 달마 대사의 수행방법과 사상에 큰 감명을 받으면서다.

“예수의 모습도 그렸어요. 출가 후에도 계속 그렸죠. 예술의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가 불교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배제하지는 않아요.”
달마를 그리는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그가 다른 화가들과 다른 점은 달마도를 포함한 그림으로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더해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을 정도다.

“달마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명은 현재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는 진보스님이에요. 양산에 있을 때인데, 부모님께서 직접 데리고 와서 지도를 부탁해 중 1때부터 3년 동안 가르쳤죠. 진보스님은 현재 불국사에서 수행 중입니다.”
그는 사람에 맞게 달마를 그려준다. 그래서 수없이 많이 달마를 그렸지만 모습이 모두 다르다.
“달마를 왜 그리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도요. 때마다 ‘그냥 그리고 싶어서’라고 하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청양과의 인연 소중하다
지원스님은 고교 졸업 후 화가로 활동하다 출가해 불교대학을 졸업했고, 또 출가 후 조계종 선승을 만나 조그만 암자에서 6년여 생활하며 생활 속 이치를 배웠다. 이후 선승들의 발자취를 쫓아 14년 동안 전국을 돌아 다녔다. 특히 그는 머무는 곳마다 ‘자연환경과 불교미술’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가는 곳마다 초·중생들을 대상으로 미술대회를 매달 열었어요. 환경․불교미술과 관련한 내용을 주제로 했죠. 아직 신도회 구성과 공간 마련 등 준비가 덜 됐어요. 준비가 되면 청양에서도 곧 시작할 예정이에요. 그림 무료 지도와 함께요. 청양과 소중한 인연을 맺고 싶어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회향할 수 있는 인연요.”

지원스님은 1999년도 충주에 머무르면서는 소외된 노인·장애인 등 7명과 함께 생활하는 ‘자비의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4년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돌봐왔다. 또 인사동의 ‘포교원’을 운영하기도 했고, 이런 인연으로 청주방송 ‘행복한 아침’에 소개되기도 했다. 
화가이며 선승인 지원스님은 일본․미국 순회전을 열어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한국불교미술을 알렸고, 불교 포교를 펼쳐와 화단과 종교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온 인물이기도 하다.

“예술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접하다 보면 일반대중들도 쉽게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청양에서 그림을 통한 포교활동과 복지도량을 펼쳐가고자 한다는 지원스님은 2002년 한국 불교 승단 협의회 포교 대상과 올해를 빛낸 인물 ‘불교대상’, 서울시 언론 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또 2004년 울타리 없는 모임 자유의지전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 한일월드컵 공동 유치기념 문화교류전, 88올림픽 기념 초대전, 선천성 심장질환 어린이 돕기 자선전(대전) 참여, 400여 편의 아동만화 제작·출간 등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울타리 없는 시민연대 공동대표, 종교복지법인 자비의 집 대불 선원대표, 와이비엔 뉴스, 연합불교 신문 부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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