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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생활해야 하루하루가 즐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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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생활해야 하루하루가 즐겁죠”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0.12.27 14:02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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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열정으로 생활하는 전순덕씨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전순덕(76·송방리) 씨다.
손자와 손녀를 여러 명 둔 할머니이지만, 할머니라는 호칭이 무색할 만큼 그는 하루하루 꽉 찬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43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운곡초 교장으로 퇴임했고, 지금은 청양읍 주민자치센터 청화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전순덕(76·송방리) 씨다.
손자와 손녀를 여러 명 둔 할머니이지만, 할머니라는 호칭이 무색할 만큼 그는 하루하루 꽉 찬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43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운곡초 교장으로 퇴임했고, 지금은 청양읍 주민자치센터 청화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학생 남편과 새내기 교사
공주가 고향인 전씨가 청양군민이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본다.
전 회장은 청양읍 교월리가 고향인 최동진(79)씨와 1957년 결혼 후 청양 군민이 됐다. 당시 그는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새내기교사였고, 최씨는 공주사범대학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저는 결혼하자마자 청양으로 와야 했어요. 당시 여교사는 약혼만 해도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당연했던 때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사표를 내지 않았고, 대신 당시 시댁 근처 화성초로 발령 받았습니다. 4년 후 남편이 청양 발령을 받기까지 떨어져 지냈고, 화성으로 전근 와서도 힘들었어요. 저뿐 아니라 당시 결혼한 여교사들 모두 그랬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 결혼한 여교사들의 학교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단다. ‘집에서 쉬지’하는 무언의 압력과 일마다 참견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남편과 떨어져 시가에서 생활을 시작한 전 회장은 사표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외동이고 시누이가 4명이었어요. 시댁에 와 보니 막내 시누이가 한 살짜리 젖먹이더군요. 무엇보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전 회장이 어려움 속에서도 4년 여 화성에서 근무하며 시부모, 시누이들과 함께 생활할 즈음 남편이 청양으로 왔고,  전 회장도 청양으로 발령 받아 나왔다.

“결국 주임으로 승진하자 남자교사들이 ‘남자 세 몫 한다’고 인정하더군요. 제가 교감발령을 받았을 때 쯤 결혼한 여교사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 것 같아요.”
전 회장은 ‘바쁘면 바쁠수록 일을 더 열심히 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잘 견뎌 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모든 일에 열성적인 사람으로, 전근 가는 학교마다 연구학교 지정을 위해 항상 열심히 뛰었다.

“청송초에 있을 때 군 지정 연구학교 운영을 많이 했었던 것 같고, 운곡초 교장으로 부임해서는 도 지정 영어연구학교를 운영했는데 당시 다른 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때여서, 학부모님들이 좋아했어요. 모두의 노력으로 좋은 성과들이 나왔었죠.”

평생을 교육분야에 투신
열정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전 회장.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재직 시 대전․충남 여교사 중 처음으로 모범공무원증을 받는가 하면, 다수의 표창, 1999년 8월 31일 퇴임 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특히 운곡초 교장으로 퇴임하게 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 열정 어떻게 하실거죠?”라며 떠나는 그를 아쉬워했단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전 회장은 이렇게 퇴임했다. 그리고 이후 가족들과 자신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더한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읍사무소 주민자치센터 위원, 교육청 교육자문위원, 금빛봉사대 부회장 등으로 활동을 해 온 것이다. 또 2003년도부터 2006년까지 노인대학에 등록해 노인들을 위한 건강교육 및 고전무용을 지도해 각종 경연대회에서 실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했다.

교직에 있을 때나 퇴임 후에도 항상 동분서주 하고 있는 전 회장. 그는 퇴임 후 가장 잘 한 일중 하나가 ‘그림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읍주민자치센터 위원장을 맡았던 2003년도부터 시작했고 올까지 회원전을 여섯 번 했어요. 그림을 만난것 너무 행복합니다.”

김희숙 작가의 지도를 받고 있는 전 회장은 한국화를 시작하고 3년 후인 2006년도부터 한국백제서화협회에 작품을 출품, 특선을 비롯해 2007년도 우수상 1·입선 2, 2008·2009년 삼체상 등 실력을 보여줬다. 결국 올해에는 백제서화협회 초대 작가가 됐다.

일일일선 실천하는 자세로
결혼 54주년을 맞은 그는 효부라는 칭찬도 듣고 있다. 99세의 시어머니를 살갑게 봉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께서 저를 예뻐해 주셨어요. 돌아가신지 33년 됐는데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죠. 어머님과는 54년 동안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내년이면 백수세요.”
그는 결혼 후 시부모와 줄 곧 함께했으며, 현재는 남편 최씨와 함께 시어머니 김금예(99) 씨를 봉양하며 살고 있다.

전 회장은 식사 때가 되면 외출했다가도 귀가해 어머니와 남편의 식사를 챙겨왔다. 물론 전 회장이 멀리 외출을 할 경우가 생기면 남편 최씨가 어머니를 챙긴다. 소문난 효자효부다.(사진)
“남편도 성격이 조용해요. 청양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후 신문과 책을 읽거나, 화초 가꾸는 것을 취미로 생활하죠. 그래서 독서왕으로 별명을 지어줬어요. 제 일도 많이 도와줍니다.”

전 회장은 76세의 나이지만 지금도 ‘애마’인 자동차를 직접 운전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 한 일이 운전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운전을 못했다면 이렇게 움직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차를 다섯 번째 아들이라고 하죠.”

2녀 4남에 어린 시누이들도 있었던 옛날 전 회장은 하루에 도시락을 10개 넘게 싸야했었단다. 하지만 힘들어도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일일인선과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살자’를 표방․표어로 삼고 생활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활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내년이면 시어머니께서 백수, 남편은 팔순, 저는 77세가 돼요.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기념하며 전시회를 개최하려 합니다. 준비 중이에요.”
바빠야 일에 더 힘이 붙는다는 전순덕 회장, 뒤에서 활동적인 아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남편 최동진 씨는 오늘도 어머니를 봉양하면 다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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