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농민일기 -2
상태바
농민일기 -2
  • 청양신문
  • 승인 2000.03.06 00:00
  • 호수 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명희(운곡면 모곡리. 군의원)
나는 1973년부터 농사를 지으며 정부시책대로 통일벼 재배, 소주밀식, 건답직파 등 그저 하라는데로 소농인이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지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낭만이 있고 풍요로운 농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런데 왜 지금껏 농사를 짓느냐구요?

그것은 조상의 뼈가 묻힌 뒷동산의 요란한 솔바람과 가을밤이면 하얗게 어울려 피는 70년대 초가지붕의 하얀 박꽃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휘황찬란한 네온싸인과 그림같은 도시의 빌딩속 보다는 풀 이슬이 발등 적시고 수고한 댓가로 황금물결 출렁이는 말앳들 들판의 풍요로움에 농민이 되고 말았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엔 애국자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자는 얼마나 될까요.
모피코트를 안입고 가솔린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나바다’ 운동을 한다, 어쩐다 떠들어대지만 우리 사회엔 실업당한 노숙자가 사치 안하기론 최고의 애국자요, 아나바다 운동으론 농민이 애국자며, 가솔린 절약은 앉은뱅이와 맹인들이라 하겠네요.

우국애족의 푸념은 서울 지하철 역의 노숙자 무리가 어느 누구보다도 풍성한 것을 우리 농민은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20여년간 농사일을 한 농사꾼이랍니다.
민족의 정의를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선 훌륭한 애국인은 농민일 것입니다.

정부의 높으신 양반들, 국회의원님들, 약삭빠른 농안법 그게 농민 위한 법이랍니까?
우리네 농민의 삶은 어차피 고단하답니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거창한 미래는 꿈꿀 수 없고 도시사람마냥 즐겁고 여유있게 살 수가 없네요.
이것 보십시오.

지난해 11월17일 정기국회에선 2백99명의 의원님들이 구조조정은 고사하고 연봉 6천8백92만원이던 월급을 너무 적다고 7천8백79만원으로 무려 14.3%나 소근소근 올려놓고 의원 보좌관도 1명씩 더 늘리고 허울좋은 특위간판 툭하면 달아놓고 특위비나 듬뿍듬뿍 타먹는 ○들, 오죽하면 이 나라의 고질적인 파렴치범은 ○○○○들이라나요?
이런 파렴치에 비하면 자화자찬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농민이 애국자가 아닐까요?

농사꾼은 가난뱅이가 된지 오래랍니다.
정부가 먼저 해결하겠다던 농가부채 특별법은 어떻게 됐나요.
새해예산에 상정된 쌀 직불제 예산 2천5백억원은 책상 제일 밑 서랍에 잘 보관했다나요.
농민이 농사꾼 한을 정치에 비유하면 높으신 분들 꾸중받을 줄압니다만 천한 농민일지라도 할말을 해야겠네요.
부정한 정치는 부정한 선거를 감행한 따위의 정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도 벨 것을 벨라치면 반항이 온다고 베지 못하고 흐지부지 해버리는 시원찮은 정치도 결국은 부정한 정치로 볼 수밖에 없답니다.
법을 온통 외워대던 장관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감방에 가 앉아있질 않나, 우리네 농민 요즘 하늘보고 웃네요.
법조인들, 의원님들, 법에 의한 정치는 아니하고 우리더러 법을따라 살라는 엄포나 놓네요.
부지런히 농사지으면 농산물값 비싸지도, 싸지도 않게 농안법 잘 만들어 마음놓고 농사짓게 해주고 등 따뜻하게 잠잘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정치인인 것 같네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삶의 진실이 있어야 하고 성실함이 있어야 한답니다.
돈 많고 풍족한 갑부들 속의 불안보다는 가난 속의 포근함이 가진자들의 불안보다 휠신 낫지 않을까요?
우리 농민의 숫자가 지난해 말 전국민의 10%도 안되는 4백50만밖에 안된답니다.
정치하는 분들 몹시도 야속하군요.
앞으로 지키지도 못할 공약 애시당초 하지 말라구요.
이제 더는 안속는 답니다.
우리네 농민들은 비록 빚이 늘고 가난하여 삶이 고되더라도 농사일을 버릴 수가 없답니다.
흙은 뿌린만큼 거둘 수 있게 해주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4천7백만 이 나라 국민의 식생활을 위해 이바지 한다는 자부심과 흙의 고마움을 져버리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농민 빈약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 없을지라도 봄이오면 또 씨나 뿌려야 겠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