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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과 농촌여행을 ‘이음동의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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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과 농촌여행을 ‘이음동의어’로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0.06.28 13:57
  • 호수 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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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지명유래 등 마을 전승의 이용방안 2
▲ 대치면 광금리 산꽃마을에서는 ‘고산굴’에 얽힌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마을 축제로 승화한 ‘신토불이 화이트데이’ 축제를 2년간 개최했으며, 현재는 ‘칠갑산산꽃마을축제’로 발전시켰다.

사람은 늘 무엇인가를 그리워한다. 그 대상이 사람일 때도 있고 어떤 감정일 때도 있다. 자연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돌아가고 싶어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혹자는 ‘사람이 근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신의 노여움을 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사람에게는 무언지 모를 상실감에 빠져 허둥거릴 때가 있으며, 누군가가 조용하게 다가와서 풀어주길 기다리기도 한다.

충남 청양에는 가요 ‘칠갑산’으로 널리 알려진 도립공원 칠갑산이 있다. 칠갑산(七甲山)은 사비백제시대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했던 곳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만물생성의 7대 근원이 모두 이 산에 스며 있다는 뜻의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를 따서 생명의 근원으로서 ‘칠갑’이라고 높이 불러 왔다. 충남의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칠갑산은 동쪽에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계된 백제의 얼이자 천년사적지이다.

칠갑산은 청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근원이다. 특히 고향을 떠나 객지에 나가 사는 출향인들에게는 부모 다음으로 자주 생각나는 곳이다. 청양 사람들은 그리움이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종종 칠갑산을 찾는다.
칠갑산을 찾는 이들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칠갑산은 바위가 드물고 산이 높지 않아 노약자나 가족단위로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최근에는 천장호 출렁다리와 칠갑산 천문대, 목재문화체험관 등이 들어서 자녀교육을 위한 방문지로도 인기가 높다.

그들 중에는 말 그대로 칠갑산 마니아도 있다. 칠갑산의 매력에 깊이 빠져 일주일이 멀다 하고 칠갑산과 주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와서 등산로만 다니면 깊은 사색에 잠길 겨를이 없겠지만, 칠갑산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어느 곳이 호젓한지 어느 곳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알맞은지 잘 안다.
특히 요즘은 농촌관광, 혹은 농촌으로의 여행이 테마여행의 한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이런 경로를 따라 청양과 칠갑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여행은 행정기관이 초청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위적 조성 가능한 제2의 고향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광객이 동시에 청양을 찾는 때는 고추구기자축제 같은 지역축제 때이다. 고추가 생산되는 시기인 9월 초순에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 고추구기자축제 때는 줄잡아 3만명 정도의 방문객들이 다녀가곤 한다.

하지만 청양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지역축제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매번 축제가 끝날 때마다 개선해야 할 점이 지적되고, 지금의 모습으로는 방문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각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설화나 지명에 얽힌 이야기, 또는 장승제나 동화제 같은 전통 제례의식을 활용한 그린투어 프로그램이나 색다른 지역축제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요즘은 도로가 나고 자동차의 왕래가 많아 칠갑산의 험준함이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고대로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골짜기의 깊음과 야생동물의 출몰 때문에 주민과 과객들의 근심이 컸다. 그래서 칠갑산에 둥지를 튼 마을이나 주변 마을에는 주민들의 무사 안녕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전통 제례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고,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양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면서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군내 마을과 1사1촌 자매결연을 한 회사의 직원들이다. 대표적으로 대치면 상갑리를 찾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사람들, 대치면 광금리를 찾는 천안로타리클럽 회원들, 정산면 마치리를 찾는 대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가족들, 목면 화양2리를 찾는 대전충남 지방병무청 직원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각 결연지를 찾아 부족한 일손을 돕기도 하고, 주민들이 정성 들여 생산한 농산물을 사가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자매처럼 지내면서 서로를 위하고 고락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는 것으로 이보다 나은 형태는 아직 찾기 어렵다.

다만 이 형태는 농촌 주민들이 도시민의 도움을 받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린다. 향후 이 관계가 더 깊고 오래 지속되려면 농촌에서도 농산물 외의 다른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옛적부터 대대로 내려온 마을 전승과 그것을 주제로 한 지역축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젊은이보다 많은 노인층이 오늘날 농촌의 큰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전승에 의한 축제 창출은 노인이 많을수록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진다. 노인들이야말로 전승의 명맥을 잇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산면 송학리 동화제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송학리 동화제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이며, 임진왜란당시 왜적에 대항하기 위한 화전의 일종으로 4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행사에는 전국의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모여들곤 한다. 물론 언론의 조명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다. 노인들이 없었다면 이 동화제는 이미 명맥이 끊겼을 것이다.
청양지역 내 다른 마을에도 이에 버금가는 전승이 얼마든지 있다. 남는 숙제는 ‘제2의 고향’을 조성하기 위한 열정이다. 열정과 계획이 있으면 도시민들에게 두 번째 고향을 선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신토불이 화이트데이와 전통성인식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금리에서는 ‘고산굴’에 얽힌 남녀간의 사랑을 테마로 ‘신토불이 화이트데이’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 행사는 현재 ‘칠갑산산꽃마을축제’ 형태로 변모되어 열리고 있다.
신토불이 화이트데이는 두 가지의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우리 선조들의 깊은 사랑을 생각하면서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애정관을 돌이켜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콜릿’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장삿속에서 벗어나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되찾자는 것이다.

광금리가 선보인 화이트데이는 다양한 농촌문화를 체험하면서 연인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꾸며졌고, 여기에는 초중고 학생과 대학생, 칠갑산과 장곡사를 찾았던 관광객 들이 다녀갔다.
이 행사는 타이틀 자체가 그런 만큼 꽃사탕 만들기, 긴 줄넘기, 짚을 이용한 달걀 꾸러미 만들기, 고산굴 사랑의 리본달기, 물탕골 소원빌기 등의 체험행사와 인근에 있는 칠갑산, 장곡사, 장승공원 일원에 대한 답사 등으로 꾸며졌다.

또 점심시간에는 주민들이 직접 키웠거나 칠갑산에서 자란 산나물로 꽃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등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을 위해 세심한 곳까지 신경 썼다. 6대의 경운기를 동원해 마을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고산굴과 물탕골 행사장까지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는 광경은 이곳 아니면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다.
청양군 대치면 상갑리에서는 예로부터 ‘관계례’라고 해온 전통 성인식을 연 바 있다. 전통테마마을인 상갑리 가파마을이 마련했던 이 행사 역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요사이 성인의 날 행사에 대한 비판과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이 행사에 참여한 만 20세의 청소년들은 우리의 전통 복장을 입고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며 성인이 갖추어야 할 예절과 덕목이 따로 있음을 배웠다. 또 승경도, 쌍육 등의 전통놀이와 다식 만들기 등의 음식문화를 체험하면서 누리는 것을 내 것으로 하려면 먼저 그에 따른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세상 이치를 생각했다.

지역축제가 고려해야 할 것들
앞서 언급한 타 지역의 사례와 청양지역의 사례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전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후자는 이어지지 않거나 다른 형태로 변모해 애초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왜 그렇게 됐을까.
첫 번째는 투자문제를 들 수 있다. 타 지역의 축제에는 시군 차원의 예산지원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청양지역의 축제는 거의 대부분의 행사비용을 마을이 부담했다.

두 번째 중요한 문제는 지역축제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다. 축제는 유행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해서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을 따라가는 이벤트성 행사는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성공을 가져오기 어렵다. 더욱이 지역축제로서의 고유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방문객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곳만의 특별함이다. 이 특별함 없이는 발길을 붙잡을 수 없다. 천편일률적인 베끼기 프로그램은 반감과 부작용을 가져올 뿐이다.
특히 지자체장을 부각하는 행사, 먹고 마시는 소모 행사, 전문성이 결여된 행사기획과 진행은 결과가 뻔하다. 돈만 쓰고 실속은 없게 된다.

지역축제는 말 그대로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꾸려져야 한다. 고유의 전승이나 인물, 특산품 등이 충분히 반영된 것이라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그것이 정체성이고 차별성이다.
우리나라에는 성공한 축제가 많다. 성공이라 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에 따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의미이다. 금산 인삼축제, 함평 나비축제, 양양 송이축제, 남원 춘향제, 진도 영등축제 등이 확실한 주제의식 속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청양에도 고추구기자축제가 있다.

축제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한다. 축제에 와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먹을거리도 충분해야 하고 쉴 곳도 있어야 한다. 체험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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