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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퉈 보는 게 소원인 부지런한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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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퉈 보는 게 소원인 부지런한 일꾼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0.04.05 13:56
  • 호수 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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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일하는 사람이 희망이다-장평면 죽림2리 김중환 이장
오늘은 장평면 죽림2리장인 김중환(65) 전국이통장연합회 청양군지회장과 부인 이존예(66)씨의 일하는 현장을 소개한다. 이들은 한우 280여 마리를 키우며, 25정 규모의 산에서 밤농사를 짓고 있다. 이 일만으로도 부부는 새벽 5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에 더해 김 이장은 총 21년째 죽림2리 이장을 맡아 솔선수범 하고 있고, 또 2008년도부터는 군지회장으로서의 책임까지 맡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특히 조카 뒷바라지를 15년 넘게 해 오고 있는 이들의 넉넉한 마음도 만나본다.

오늘은 장평면 죽림2리장인 김중환(65) 전국이통장연합회 청양군지회장과 부인 이존예(66)씨의 일하는 현장을 소개한다. 이들은 한우 280여 마리를 키우며, 25정 규모의 산에서 밤농사를 짓고 있다. 이 일만으로도 부부는 새벽 5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에 더해 김 이장은 총 21년째 죽림2리 이장을 맡아 솔선수범 하고 있고, 또 2008년도부터는 군지회장으로서의 책임까지 맡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특히 조카 뒷바라지를 15년 넘게 해 오고 있는 이들의 넉넉한 마음도 만나본다.

빈손으로 농사 시작
우선 부부를 함께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것을 전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집과 축사에서 일하고 있는 부인에 비해 김 이장은 맡은 직책이 많다보니 밖의 일로 더 바빴기 때문이다.
“한우 280여 마리, 밤 산이 25정 정도 되니까 정말 바빠요. 물론 밤농사는 일년 내내 바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기도 하지만, 소 키우는 일은 매일매일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니까요. 그래도 아내가 제 대신 일을 많이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밖의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이들이 생활하는 죽림2리는 묵은 논이라고도 불리며, 경주 김씨들의 집성촌이다. 13대 째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김 이장도 7남 1녀 중 다섯째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농사를 짓다 군대를 갔는데 제대할 때 쯤 직업 군인을 권유하더군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꼭 저와 살고 싶다고 하셔서 고향으로 와 농사를 시작했어요. 1970년이었고 벌써 40년 전이네요.” 

김 이장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심하게 앓았고 그 탓에 부모의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다. 그 탓일까 고생을 끼친 만큼 부모의 다섯째 사랑은 컸고, 그 아들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그는 전한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고, 제사도 이곳에서 모시고 있어요. 부모님이 농사꾼이셨지만 농사 채는 많지 않았어요. 제가 고향으로 올 당시 형제들에게 논 2, 3마지기씩을 나눠 주신 것이 전부였죠. 저도 논 두 마지기를 받아 농사 밑천으로 삼았는데, 그것도 곧 동생 사업자금으로 들어가 거의 빈손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벌고 쓰면서 살자
김 이장은 이후 품팔이를 비롯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부인도 함께였다. 부부의 손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지독하게 일 했는지 보인다. 특히 김 이장의 손톱은 다 달을 정도다. 
“쉰 살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후부터는 편하게 쓰면서 살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재산이 늘더군요. 지금은 논은 소작을 주고 한우는 저희가, 밤은 사람을 얻어서 해요. 원추리, 취나물 등도 했었는데 일손이 모자라 포기했죠.”

쉰 살까지라고 작정하고 억척스럽게 일했다는 김 이장, 하지만 그 바람은 공염불이 돼 버렸다. 농사 채가 늘어나면서 할 일이 더 많아져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들의 일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유별난 조카사랑 때문이다. 

조카 사랑 유별난 부부 
자녀가 없는 김 이장 부부는 남동생 가족의 생활비와 조카 두 명의 학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15년 전부터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들은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과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남동생이 15년 전 혈압으로 쓰러져 불편해요. 그러니 생활이 힘들죠. 그래서 함께 살지는 않지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 했습니다. 조카들이 잘 커줘 고마워요.”

부부가 조카들 학비와 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은 연 4000여만 원,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조카도 자식이나 마찬가지”라며 도와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아내가 동생 식구들을 더 챙겨요. 얼마 전에는 동생네가 현재 살고 있는 집세를 올려달라는 말을 들었다며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주자고 하더군요. 부모님께서 노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에게도 아내가 참 잘했어요.”

잘사는 마을 죽림2리
김 이장 부부가 생활하는 죽림2리는 28호 12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 학생들과 젊은 층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다. 또 28호 중 20호가 한우를 키우고, 김 이장처럼 축사 규모가 큰 농가가 많다. 더욱이 주민 전체가 밤농사를 짓고, 일부는 원추리 농사까지 마을주민 중 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경로당에 어르신들이 없는 유일한 마을일거예요. 비가 올 때나 추울 때 경로당에 잠깐 머문다고 해도 밤 껍질을 까는 일 등을 하시죠. 80세가 넘은 어른들도 원추리로 생활비를 버실 정도로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또 ‘몸만 성하면 발에 걸리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곳입니다.”
잘사는 마을 죽림2리, 이곳에서 20대 중반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는 항상 열심이었고, 그 탓에 20대 후반부터 이장을 맡아 21년째 하고 있다. 또 2008년도부터 전국 이통장연합회 청양군지회장, 밤 농가들의 모임인 청율회장 등도 맡고 있다. 이러다보니 1년 365일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일복이 많아서 인지 이렇게 직책을 맡기시네요. 집일도 많은데 이렇게 밖의 일을 하다보니 힘들고, 요즘은 어디 가는 것이 겁납니다. 또 다른 일을 시킬까봐서요.”
일복이 많다는 김 이장은 일복만큼 가족들에 대한 베품에 더해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의 마음도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 이장은 부인에게 “신랑 잘 못 만나 고생 많이 했다”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결혼할 때 저에게 ‘자기가 화 난 것 같으면 2분만 참아 달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지금까지 말다툼 한 번 안했어요. 싸울 시간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고요. 요즘 가끔 언제 싸워보지, 비나 와야 싸워 볼텐데 합니다.”아내 이씨의 말이다.
일복도 나눔의 마음도 넉넉한 김중환 이장은 부여가 고향이며 6남매 중 셋째 딸인 이존예씨와 42년 전 결혼했으며, 오늘도 하루를 48시간처럼 바쁘게 활동하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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