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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 더욱 즐겁고 행복한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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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 더욱 즐겁고 행복한 노년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0.03.08 09:55
  • 호수 84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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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함께 사는 세 자매 신희순·순예·만예씨 이야기
분홍색 스웨터 하늘하늘한 스카프 자주색 모자로 멋을 부린 사람, 멋 보다는 따뜻함이 최고라며 누비 점퍼로 든든히 차려 입은 사람, 또 금방이라도 등산을 떠날 것처럼 간편한 옷차림이지만 빨간 조끼와 두툼한 머플러가 돋보였던 사람 등 세 명이 나란히 길을 나선다. 각자 손에는 지팡이가 하나씩 들려있고 마치 소풍을 가듯 짊어진 배낭도 꽤 무거워 보이기도 한다. 대치면 작천리 한 농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세 자매 신희순(77)·순예(74)·만예(71) 씨의 모습이다. (사진 좌로부터)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오순도순 즐겁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 모습은 어느새 주변에 알려져 유명인이 됐다. 그들을 만났다.

분홍색 스웨터 하늘하늘한 스카프 자주색 모자로 멋을 부린 사람, 멋 보다는 따뜻함이 최고라며 누비 점퍼로 든든히 차려 입은 사람, 또 금방이라도 등산을 떠날 것처럼 간편한 옷차림이지만 빨간 조끼와 두툼한 머플러가 돋보였던 사람 등 세 명이 나란히 길을 나선다. 각자 손에는 지팡이가 하나씩 들려있고 마치 소풍을 가듯 짊어진 배낭도 꽤 무거워 보이기도 한다. 대치면 작천리 한 농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세 자매 신희순(77)·순예(74)·만예(71) 씨의 모습이다. (사진 좌로부터)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오순도순 즐겁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들 모습은 어느새 주변에 알려져 유명인이 됐다. 그들을 만났다.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자
한적한 마을 입구에 자리한 할머니들의 집에 도착한 기자에게 이들은 따끈한 커피와 금방만들었다며 송편을 함께 건넨다. 그리고 ‘우선 먹고 하자’며 송편을 입에 넣어준다. 손녀에게 하듯 그렇게 말이다.
“우리 때는 일찍 결혼했고, 결혼해서는 장 구경 한번 못 가고 집에서 일만 했어요. 애들 옷이며 찬거리도 어른들께서 사다 주셔야 먹이고 입혔을 정도로 개인 생활이라는 것이 없었죠. 시간이 흘러 공교롭게도 우리 셋 모두 남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제 아이들도 컸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애들에게 우리끼리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다고 했고, 애들도 집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함께 계시면 안심이 되겠다며 그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함께 살게 된 것이에요. 친정이 부여고 우리가 8남맨데 아들 셋은 먼저 떠나고 딸만 남았어요. 이중 우리 셋만 모였죠.”큰 언니 희순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작천리 집은 세 자매 중 막내인 만예 할머니 집이다. 그리고 두 언니는 읍내리와 부여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뜻을 모아 5년 전 뭉쳤다.

말벗도 되고 든든하고
함께 살면서 말벗이 있으니 심심하지 않고, 집에 있든 외출을 하든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하고 좋다는 이들.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우선 집 주인인 막내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아홉 살 위인 남편을 만나 까치내로 시집을 왔고, 이후 2남 4녀를 두고 생활해 오고 있다.
“남편이 술은 안마셨는데 담배를 많이 태웠고, 13년 전 암으로 먼저 떠났어요. 일하느라, 또 병을 얻어 고생 많이 하다 가셨죠. 다른 걱정은 없는데 6남매 중 셋째가 미혼으로 일만하고 있어 걱정이네요.”

동생과 살기 위해 먼저 짐을 꾸렸던 큰 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다섯 살 위인 남편을 만나 동향인 부여로 시집을 갔고, 2남 6녀 중 막내아들을 제외한 모두를 결혼시켰다.
“남편이 술을 좋아했었고 5년 전 떠났어요. 그리고 나는 부여에서 계속 살았고, 4년 전 의료원 옆에 사는 아들 집으로 이사를 왔죠. 청양으로 오니 모르는 사람들뿐이고 그래서 시간만 나면 동생 집으로 놀러가곤 했어요. 그러다 아예 짐을 쌌죠.”

마지막으로 둘째 할머니는 스무 살에 여섯 살 위인 남편을 만나 부여 규암리로 시집을 갔고, 슬하에 3남 4녀를 두고 생활해 왔다.
“남편이 간경화로 쉰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후 저는 큰 아들네와 살다 이곳으로 왔고요. 우리도 역시 막내아들만 장가를 안 갔고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아내로 며느리로 또 적게는 6명에서 많게는 8명까지의 어머니로 자녀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쳐온 이들. 지금은 자녀들의 봉양은 물론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손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생활했고, 누가 보더라도 ‘행복한 가정’의 어른으로 지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끼리 티격태격 어울려 지내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게 되고 결국 함께 지내고 있다.

유명인 된 ‘세 자매’
함께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이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즐거운 사람들은 세 자매의 자녀들이다. 그동안 집에 한 번 다녀갈라치면 혼자 쓸쓸히 배웅하던 어머니 모습에 눈물 흘렸지만 이제는 든든한 이모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휴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배낭을 메고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탄다.
“아침 9시30분 차 타고 읍내에 가면 병원 들리고 장구경도 해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세 명 모두 수술 한 번씩은 한 경험이 있고,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아프니까요. 읍내 다녀오면 저녁때라 밥 해 먹고 셋이 이야기도 하다보면 잘 시간이지. 쉬는 날은 떡 만들어 동네사람들과 나눠먹기도 하고 윷도 놀고요.”

막내 할머니는 오래전 위암수술과 허리수술을, 둘째는 편도선 수술, 큰 언니도 손이 부러져 수술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젊었을 때 일을 너무 한 탓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다보니 거의 매일 병원 다니며 물리치료도 받고 더불어 세상 구경도 한다.
이렇듯 언제나 함께 외출을 하다 보니 이들은 어느새 유명인이 됐다. 병원에서도 버스를 타도, 시장을 가도 모두의 눈길이 이들을 향한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나이 들면 할머니들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논 대여마지기와 텃밭, 밤나무 조금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텃밭 풀 뽑는 정도만 하고 아이들이 와서 다 해주죠. 그것 나눠 먹으며 또 우리들은 깨물었다 뱉어놓으면 주워 먹을 정도로 우애가 좋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거든. 앞으로 떠나는 날 까지 이렇게 살고 싶어요.”
이들이 외출할 때 매는 배낭 속에는 먹을거리가 꽉 차 있다. 직접 빚은 송편부터 두부까지 다양하다. 세 자매의 점심 대용이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지는 정이다. 

“나가기만 하면 버스 기사들도 뭐든 사주려고 하고 미안해 죽겠어요. 우리 어머니 같아서 사드리려고 한다면서 이것저것 챙겨줘요. 우리도 뭔가 보답을 해야 하는데.”
취재 후 병원을 가야한다며 나서던 세 할머니는 역시나 떡이며 두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의사, 간호사, 버스기사에게도 주고 싶어서란다. 또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장 찍겠다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들은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올까”라며 자리를 잡는다.
함께 있어 더욱 행복하다는 한 지붕 아래 세 자매 할머니들이 앞으로도 쭉 즐거운 노년을 보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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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금기자 2010-10-20 08:59:06
할머님들을 취재하면서 정말 많이 웃고 행복했었는데...이렇게 가족들께서 댓글도 많이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내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ㅎㅎ

신민선 2010-04-02 21:56:26
외할머니댁에 가면 항상 세 할머니들이 즐겁게 반기신다
할머니들이 얘기하시는 것 마다 웃기고 재미있다
외할머니 이모할머니들 항상 웃는모습으로 건강하세요

김용순 2010-04-02 21:52:21
이모들과 함께하는 울엄마 참 좋아요
우리들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집에 자주못가도
이모들이 계셔서 걱정 안해요
앞으로도 더 재미있고 건강하세요

종분 2010-03-31 22:58:53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엄마, 우리이모들,,,
축하드려요. 유명인이 되셨네요.
싸인이라도 해달라 졸라야 되겠어요.
진짜 진짜 사랑해요. "홧팅"
실물로 보시면 더 멋쟁이 할머니들 이래유,,,,

류혁 2010-03-31 22:49:23
사랑합니다.
넓고 넓으신 사랑때문에 우리들이 많은것을 배우고 느낌니다.
우리곁에서 항상 저희와 함께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늘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혁이가,,,,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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