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역사교과서 불채택운동 현해탄을 건넜다
상태바
역사교과서 불채택운동 현해탄을 건넜다
  • 청양신문
  • 승인 2001.07.02 00:00
  • 호수 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방문단, 쿠마모토현 시·정·촌 돌며 직접 막아
“현 지사에게 방문단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전달하겠다"
예상은 했지만 쿠마모토 충남방문단의 첫 방문지인 쿠마모토현청(熊本懸廳,도청)의 반응은 매우 형식적이었다. 쿠마모토현 교육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현(懸) 교육장을 대신해 교육국 차장이 나왔고, 방문단의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에 “한국인에게 많은 피해를 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잘 가르치고 있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교과서 문제를 보는 일본 자치단체 행정관료들의 보수적 시각의 깊이를 확인한 방문단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난 6월7일~9일까지 충남지역 교사, 농민, 목사 등 각계각층 대표들로 구성된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을 위한 쿠마모토충남방문단'(단장 정수용, 52, 전농충남도연맹 의장) 일행 10명은 일본 쿠마모토현청(도청)을 비롯 시. 정(시.군)을 돌며 문제의 왜곡교과서를 채택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한국 내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반대하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지만 일본 내 특정지역을 선정해 공세적인 현지 불채택 운동을 벌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이 쿠마모토현을 선택한 것은 충남도와 18년째, 양 지역 시민단체간(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평화헌법을 살리는 쿠마모토 현민의 회) 5년째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여기에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별 교육위원회에 교과서 채택 권한이 주어지는 요인이 작용했다. 따라서 얼마 전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문제의 ‘새역사 교과서(후소샤)'가 아이들의 책상 위에 펼쳐지느냐의 여부가 사실상 각 자치단체의 선택에 달려있다.
방문단은 2개조로 나눠 쿠마모토현(熊本懸) 북쪽과 남쪽을 각각 순회했다. 이들이 2박3일동안 방문한 지역은 1개 현(도), 1개 광역시, 5개 시·정(시·군)에 이르고 매 지역마다 자치단체, 지방의회, 교육위원회를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방문하는 곳곳 행정기관의 답변은 의례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교과서 문제로 양국 지역간 오랜 우호관계에 영향이 있어서는 안된다"(쿠마모토시의회), “후소샤 교과서가 문제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쿠마모토시 부시장) “교과서를 신중히 선택하겠다"(야스시로시 교육장) “교과서 문제로 근심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키쿠치시 신임시장) 는 등의 준비된 외교적 용어만이 뒤따랐다.
하지만 방문단은 그럴수록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설득작업을 벌였고, 과거 역사의 진정한 반성을 통해서만 양국의 평화 선린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나아가 양 지역 시민단체는 쿠마모토현 내에서 무더기로 왜곡된 역사교과서가 채택될 경우 충남도와 쿠마모토현간 자매결연 협정 파기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요구하기로 결의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일본내 불채택운동 불지펴
하지만 방문단이 무엇보다 값지게 생각하는 성과는 쿠마모토 시민들과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교감이다.
첫 날 저녁 쿠마모토현에서 열린 ‘방문단 환영회'에는 현교조, 부인유권자연맹, 역사교육자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과 현민 50여명이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양 지역 민간단체간 공동선언문이 채택됐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교과서 문제가 일본의 재침략 야욕과 맞닿아 있다고 단정한다"며 “인접국민과 일본민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잘못된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과서 채택을 막는데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날, 아라오시 노동회관 환영모임에는 시민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참석자들은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광산이 무너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실상을 전했다.
때문일까? 이들은 방문단에게 “일본의 교과서에는 이 같은 만행이 쓰여있지 않다"며 오히려 “보다 강하게 일본정부를 꾸짖고 반성을 촉구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또 “후소샤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같은 날 야스시로시에는 30여명이 시민들이 방문단을 맞았다. 이들은 방문단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즉석에서 ‘교과서 네트' 조직을 결성했다. 회장과 임원진을 선출하고 향후 활동계획을 채택했다. 활동기금도 모금했다.
이날 회장으로 선출된 후까다씨(51)는 “충남방문단을 환영하는 의미로 방문 일에 맞춰 조직을 결성하게 됐다"며 “함께 후소샤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싸워 나가자"고 말했다.
따라서 쿠마모토현내 ‘교과서 네트'가 결성된 곳은 야스시로시외에 키쿠치시, 쿠마모토시(熊本), 히토요시(人吉), 아마크사(天草), 미나마타 등으로 늘어났다.
정수용 방문단장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교과서 채택을 앞두고 있는 현내 자치단체와 행정기관에 압박을 가하고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활동에 자극제가 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왜곡교과서 불채택 운동의 새모델"
충남지역 10개 시·군시민단체 연대체인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대표로 방문단에 참여한 권정안씨(45, 공주대 교수)는 “방문단의 활동은 왜곡교과서 불채택운동의 새모델이 될만하다"고 말했다.
권씨는 “일본의 한 시민단체 간부로부터 ‘한국은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있는데 왜 한국 자치단체는 자매결연망을 통한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 왔다"고 소개했다.
실제 지난 98년 행정자치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한국 자치단체와 일본 자치단체간 자매결연을 맺은 곳은 일본 큐슈지역만도 80여 곳에 이른다. 각 지역교육청과 학교별 자매결연의 경우는 숫자 파악이 어려울 만큼 많다.
이번 방문단에 참여한 예산주민연대 성기원(36) 사무국장은 “정부 차원의 재수정 요구와 종합대응방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미 왜곡 교과서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속속 채택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과는 별도로 각 자치단체별 직접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지역신문협회 박현식 기자(천안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