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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겐 빵점 가장, 학교에선 백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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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겐 빵점 가장, 학교에선 백점 교사’
  • 이순금 기자
  • 승인 2009.11.23 10:21
  • 호수 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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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제자 사랑 유별난 이강원씨
오늘 만나볼 이웃은 ‘가족들에게는 빵점, 제자들에게는 백점’ 평가를 받고 있는 이강원(52·청신여중 과학 담당) 교사다. 학기 중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또 방학기간에도 거의 매일 쉬는 날 없이 학교에 출근해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니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그. ‘학생들에게 쏟는 정성 반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쏟아 달라’는 아내의 협박(?)아닌 협박을 받을 정도로 학교·학생들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이강원 교사다.

오늘 만나볼 이웃은 ‘가족들에게는 빵점, 제자들에게는 백점’ 평가를 받고 있는 이강원(52·청신여중 과학 담당) 교사다. 학기 중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또 방학기간에도 거의 매일 쉬는 날 없이 학교에 출근해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니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그. ‘학생들에게 쏟는 정성 반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쏟아 달라’는 아내의 협박(?)아닌 협박을 받을 정도로 학교·학생들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이강원 교사다.

어릴 적 꿈 ‘교사’
이 교사는 목면 본의리가 고향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고인이 된 조부 이봉구씨,현재 경남 창영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친 이영복씨 등이 모두 청양 교육장으로 정년퇴임 한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 교사가 처음 교편을 잡은 것은 1986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한 사립학교의 과학 강사로다.
“강사로 들어갔는데 저도 모르게 교사 발령을 냈고, 그것도 모른 채 전 다른 학교에 원서를 내려고 했었어요. 이런 저런 일로 첫 발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하고 잠시 사업을 했어요. 건축업이었죠.”

교육자였던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그는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겠다’ 는 꿈을 안고 생활했고 그 꿈은 대학 졸업 후 바로 현실화 됐었다. 하지만 시작이 순탄치 않았고, 2년여 교사가 아닌 건축업자로 일을 하게 된다. 이 후 1989년 그는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청신여중에서 교편을 잡게 된 것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교사 자리가 생기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가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집안 어른들도 좋아하셨고요.”

아버지 모습 배워간다
교육자로 21년여, 그는 집보다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은 교사다. 옛날 이 교사의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가족들보다 학교, 학생사랑이 유별 나셨지만 가족들에게는 빵점 가장이셨어요. 그래서 어린시절에는 그 모습에 반감도 많이 가졌었죠. 어른이 된 후 ‘훌륭한 교육자셨다’는 주위 분들의 말을 듣고, 또 제가 교사가 된 후 그 모습을 배워가려 노력하게 됐습니다.”

이 교사는 부친에게 반감을 가졌던 일 중 가슴 아팠던 한 가지를 전했다. 부친이 청양교육장 재직 시 모친이 교통사고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여러 차례 전화로 이를 알렸지만 그 때마다 ‘회의 중이다’로 답 했고, 결국 모친은 부친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럴 정도로 철두철미하셨어요. 교육장, 교장 재직 시 휴가도 안가셨고 방학 때 쉬지도 않으셨죠. 그런데 제가 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 같아요.”

제자 사랑 ‘쭉’ 계속 된다
학생사랑이 남달랐던 부친을 그대로 닮은 이 교사. 그 대표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청신여중 근무를 시작하고 2년여쯤 후 당시 이들은 단칸방에서 생활했는데 한 학생 지도를 위해 대출을 받아 방2칸짜리로 이사 했고, 이후 1년 반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지도해 준 것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늦게라도 찾아와 공부하다가 그냥 저희 집에서 자곤 했죠. 정말 열성적이었고, 지도해 주고 싶었어요. 아내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외에도 열성적인 학생이 많았죠. 반면 옛날에는 가출학생도 많았어요. 회초리를 들어 혼내면서 학교로 돌아오도록 하곤 했었죠. 몇몇 학생들은 결국 설득하지 못해 졸업을 못시켰고, 지금도 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그는 학생에게는 학교가 가장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단다. 그런 이유일까 그는 교사가 된 후 지금까지 자신이 맡은 학년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진행하고, 항상 학생들 옆을 지킨다. 방학 때도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란다.
“결혼 후 대전에서 이사를 왔어요. 그리고 청신여중에 들어갔고요. 신혼 초에 아내가 이사 가자고 많이 했습니다. 제가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내는 항상 혼자였고, 또 고향이 이곳이 아니니까 더 힘들어했죠. 하지만 지금은 적응했고, 청양이 좋다고 해요.”

선배처럼 ‘편한 교사’
그는 가르치는 학생들이 제자보다는 딸, 동생, 후배처럼 느껴진단다. 그리고 학생의 본분인 실력향상에도 매진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인성이 갖춰진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단다.
“제 딸도 청신여중에 다니고 있어요. 다들 딸 친구니까 모두 딸 같죠. 또 고향이 청양이니까 후배, 동생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과목이 어렵다 보니 쉽게 가르쳐 보려고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학생들을 편하게 해주는 교사로 소문이 나 있다. 특히 그가 지도하는 과학은 여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으로, 자칫 잘못하면 수업이 지루해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편하게 수업을 진행하려 애쓴다. “과학은 수학적 뒷받침과 응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지루해 지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죠. 어려운 과목이라 별도시간을 마련해 지도하고, 수업시간을 최대한 재미있게 이끌어가려 하고 있어요.”

혼낼 것은 혼내라 ‘하지만’
그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전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정년퇴임까지 함께합니다. 오랜 기간 함께하기 때문에 간혹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런 일들이 생기면 사립학교 교사들은 정년퇴임까지 고스란히 안고 가야해요. 잘한 일은 묻히고 잘못한 일은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혼낼 일이 있다면 혼내고 잘하면 칭찬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는 교사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집보다도 학교생활에 익숙한 그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결혼과 함께 고향으로 와 인재양성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이 교사는 1989년 이은우(47)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부인 이씨는 낮선 곳 청양에서의 생활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요즘은 힘든 것을 잊고 지낸단다. 외국인 대상 한글 지도와 상담 등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외국인 주부와 아이들을 위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고, 관련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더 고마워요.”
학생들에게 최선인 이강원 교사, 외국인 주부와 자녀들에게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 이은우씨. 이들은 의학전문대학원 준비 중인 아들과 청신여중 1학년인 딸 등 1남 1녀를 두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빵점 가장, 백점 교사 이강원씨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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