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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곰 전설로 가족사랑 일깨우는 ‘안고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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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곰 전설로 가족사랑 일깨우는 ‘안고듬티’
  • 이진수 기자
  • 승인 2009.07.11 10:35
  • 호수 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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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을 가다 - 청남면 내직1리
▲ 큰길에서 얼핏 보면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20가구 34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청남면 내직1리는 청남에서 목면 화양리로 가는 고개를 넘기 전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고개는 고듬티 또는 직티라고 부르며, 고개 너머 오른쪽 마을은 목면 화양리, 왼쪽은 정산면 덕성리다.
내직1리의 자연마을 이름은 고개 이름을 따 안고듬티라고 한다. 그리고 내직2리를 바깥고듬티라 부른다. 고듬티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곧은 고개’라는 뜻의 ‘곧음티’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고듬티가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끼 곰의 울음소리가 늘 산을 울리는 마을이라고 해서 ‘곰티’, ‘고금티’로 불리다가 나중에 고듬티가 됐다는 것이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말해주듯 안고듬티 뒤쪽에는 청남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앵봉산이 있다. 앵봉산에 아름드리 큰 나무가 많아 옛적부터 안고듬티는 늘 숯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고 한다.
새끼 곰의 울음소리는 바로 이 숯 굽는 연기와 연결되고,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 아직도 남아 있는 돌담과 돌담 아래 구기자가 정겹기 그지없다.

고듬티와 새끼 곰의 울음소리
아주 오랜 옛날 고개 근처에 새끼 곰이 어미와 함께 살았다. 어미는 부지런해서 새끼 먹을 것을 늘 풍족하게 구해왔다.
하지만 새끼는 아직 어렸고, 어미가 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엄하게 일러 둔 터라 바깥 구경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는지 바람이 차가워지고, 이윽고 첫눈이 내릴 때였다.

어미는 그날도 먹을 것을 구하러 밖에 나갔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어 어두워졌는데도 어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어미가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새끼는 굴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서 바깥도 굴속처럼 어두웠다. 사방을 둘러보던 새끼는 멀리 이상한 불빛 수십 개가 어른거리는 것을 봤다. 새끼는 생각하기를 ‘저쪽에도 누군가 사나보다’ 했지만, 실은 사냥 나온 백제 군사들이 어미를 잡아가는 불빛이었다.

새끼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어미를 생각하며 바깥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날이 밝자 새끼는 배도 고프고 어미도 찾을 겸 산을 넘어 금강 쪽으로 걸어갔다.
강에는 물고기가 많았다. 새끼는 어미 찾는 것도 잊고 물고기를 잡아 배를 채웠다. 얼마를 지났을까 배가 잔뜩 부른 새끼가 ‘이제 그만 먹어야지’ 하고 있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저 곰 잡아라’ 하는 소리가 벼락 치듯 들려왔다. 그리고 새끼 주위로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험을 느낀 새끼는 잽싸게 산 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새끼는 큰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느꼈다. 가까스로 바위 위에 오른 새끼는 문득 커다란 곰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알아챘다. 새끼는 어미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곰이 어미는 아니었지만 새끼는 기뻤다. 새끼는 그 후 며칠을 거기서 지냈다. 거기 사는 또 다른 새끼와도 친해졌다. 그 새끼 곰은 수컷이었다.
배불리 먹고 친구도 생겼지만 새끼는 본래 살던 굴에 어미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왔다. 어미가 있을 리 없었지만, 새끼는 그 후 거기서 계속 살았다.

몇 년이 더 지났고, 새끼도 어엿한 처녀 곰이 되어갔다. 건너편 산에 사는 친구 곰이 가끔 놀러 오곤 했다. 그 친구도 씩씩한 청년 곰이 됐다. 청년 곰은 놀러올 때마다 같이 살자고 졸랐다. 하지만 새끼는 왠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두 곰은 따로따로 살면서 가끔씩 만나 외로움을 풀 정도의 사이로 지냈다.
그런데 그때쯤 마을에는 숯 굽는 집이 점차 늘어나더니 아예 마을 전체 집들이 모두 숯을 굽게 됐고, 울창하던 숲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 곳이 줄어드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 청년 곰이 처녀 곰을 급히 찾아왔다. 청년 곰이 살던 곳은 사람들의 잦은 출입과 벌목으로 많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청년 곰은 그래도 아직은 숲이 제법 남아 있는 처녀 곰의 굴에 같이 살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녀 곰은 이곳도 금방 사람들로 들끓게 될 것이라며 며칠 있다 청년 곰이 사는 곳으로 갈 테니 차라리 더 깊은 산중으로 가서 살자고 말했다. 청년 곰은 하는 수 없이 돌아가서 처녀 곰을 기다렸다.

하지만 처녀 곰은 웬일인지 오지 않았다. 청년 곰은 다시 처녀 곰을 찾아 고개를 넘으려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숯 굽는 연기가 길을 막아 갈 수 없었다. 만날 수 없게 된 두 곰은 각각 자기 굴에서 울부짖었다. 두 곰은 끝내 같이 살지 못하고 늙어서 죽었다 한다.
그 후 처녀 곰이 살던 곳을 안고듬티라 불렀고, 청년 곰이 살던 곳을 바깥고듬티라 불렀다한다.

안고듬티는 아래뜸, 양지뜸, 음지뜸 등의 작은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리가 가까워 한동네 같다.
안고듬티의 다른 이름은 묘상골인데 지형이 항아리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불렀고, 큰길에서 보면 마을이 있을 거 같지 않다가 들어오면 마을이 있는 묘하게 들어앉아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 고듬티 고개는 지난 1984년 포장됐고, 지난 5월에는 마을을 지나는 공주-서천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공주-서천 고속도로 지나는 마을
안고듬티를 보듬고 있는 앵봉산 자락에는 사암이 많다. 앵소암이 있고 보덕사, 신흥사도 있다. 보덕사는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위로하는 곳이기도 하다.
안고듬티와 화양리를 잇는 고듬티고개는 지난 1984년도에 확장·포장 되었고, 지금은 공주-서천 고속도로가 지난다. 고듬티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청양아이씨를 통해 공주도 가고 대전도 간다.

교통이 좋아지니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로 가져가기도 한결 빠르고 편해졌다. 내직2리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 고추농사를 짓고 박경순 이장이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나 멜론을 재배한다.
마을 일은 박경순 이장을 비롯해 김영길 노인회장, 윤계자 부녀회장, 김현태 새마을지도자가 돌보고 있다. 20가구 34명의 주민들이 서로를 위하며 다정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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