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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후에도 마늘 캐랴 담뱃잎 따랴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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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후에도 마늘 캐랴 담뱃잎 따랴 ‘바쁘다 바뻐’
  • 이진수 기자
  • 승인 2009.06.22 11:25
  • 호수 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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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을 가다 - 정산면 송학리
▲ 차디찬 정월의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으며 주민들의 액운을 태워버리는 송학리 동화제.

“마늘 캐세요?”
“때가 됐으니 거둬야지. 근디 작년보담 알이 좀 잘은 거 같어.”
“그래도 통통하게 잘 여물었는데요.”
“하기사 장에 내다 팔 것도 아니구 먹는 디는 지장없지.”
해마다 정월이 되면 주민들과 지역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승제를 정성껏 모시고 있는 정산면 송학리 윗솔티(상송) 마을에 들어서니 길옆 마늘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윗솔티 주민들은 요즘 모내기를 마치고 마늘 캐랴 담뱃잎 따랴 하루해가 짧다. 김월례(79) 할머니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모자 눌러 쓰고 마늘밭에 나앉았다. 시작한 지 두어 시간 만에 벌써 두 고랑이나 수확했다.
“마늘 농사 말고 또 무슨 농사 하세요?”
“벼농사 말구는 담배 농사를 조금 짓구 있어. 밭농사는 철 따라 집에서 먹을 거 심구. 저쪽 비닐하우스 좀 쳐다봐. 담뱃잎이 참 이쁘게 마르고 있잖여!”

운곡면 효제리에서 윗솔티로 시집온 지 58년 된 김씨 할머니는 줄곧 이렇게 논으로 밭으로 나가 허리를

▲ 김월례 할머니의 가족들이 정성 다해 만든 담뱃잎.
구부리며 7남매를 길렀다. 지금은 남편 표철수 할아버지와 함께 큰아들 표정수씨 내외의 봉양을 받고 있다.
김씨 할머니 부부는 내후년이면 결혼 60주년을 맞게 된다. 자녀들이 회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 할머니는 “지들이 잘살면 그만이지 뭔 잔칫상을 차리려고 하느냐”며 만류하고 있단다.
김씨 할머니의 큰아들 표정수씨는 충남도무형문화재 제9호인 ‘청양정산동화제’의 기능 전수자다.
송학리 동화제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88년), 충남시군농악경연대회(1989년), 백제문화제농악경연대회(1990년)에 출전해 각종 상을 휩쓴 전통문화로 오영범씨(74)가 1993년 기능보유자가 됐고, 표정수씨가 맥을 잇고 있다.

정산 송학리는 전통문화의 보고
윗솔티의 장승제와 아랫솔티(하송)의 동화제로 유명한 송학리(이장 이갑수)는 말 그대로 전통문화의 보고이다.
지내는 장소만 다를 뿐 동화제나 장승제를 치를 때면 모든 주민이 마음을 모은다.

송학리 동화제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행했던 화전(火戰)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역사가 400년을 훌쩍 넘는다. 왜정 때 중단됐다가 1987년 재발굴 된 뒤 해마다 음력 1월 14일에 행사를 치른다. 충남무형문화제 민속놀이부문 제9호로 등록된 것은 1989년의 일이다.
그 전에도 8·15해방 이후부터 주민들은 동화줄을 엮고 동화대를 세우면서 전통을 이어왔다.
물론 요즘은 시대 변화에 따라 행사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동화대 세울 나무를 할 때도 목욕재계 후에야 산에 올랐고, 나무도 액을 막기 위해 가시나무만 썼다. 제사 후에는 쥐불놀이도 하고 보름밥을 훔쳐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특히 각자의 소원을 담은 나무타령이나 지게춤으로 신명을 돋우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동화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1995년부터 충남도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했고, 2년 전부터는 좀더 인상됐지만, 사람이 자꾸 줄고 고령화로 인해 행사 규모가 축소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갑수(48) 이장은 “옛날 송학리에는 80여 가구 500~6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50가구도 채 되지 않고 120, 130명이 주민 전부”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면서도 “아직은 동화제 때 먼 곳에 있는 자녀들이 고향을 찾아오고, 행정기관이나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무사히 제사를 지낼 수 있다”며 위안을 찾는다.
주민들은 송학리 동화제가 무형문화재인 만큼 맥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전수관이 지어지길 바라고 있다. 이 이장은 “전수관이 생겨 제사 기물이나 자료 등을 잘 보존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마을은 있지만 사람은 자꾸 줄어
송학리에는 윗솔티, 아랫솔티, 군장동, 비봉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솔티는 마을이름이기도 하고 고개 이름이기도 하다. 솔티고개는 송학리에서 공주시 신풍면으로 가는 고개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어 오가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이 솔티고개 바로 아래 왼쪽으로 있는 마을이 윗솔티이고, 그 아래 마을이 아랫솔티다. 윗솔티는 달리 상송, 상송티라 부르고, 아랫솔티는 하송, 하송티라 부르기도 한다.

비봉골은 솔티 남쪽에 있으며 남천리 새울과 이웃하고 있다. 비봉포란형의 명당이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군장골은 비봉골보다 남쪽에 있다. 조선시대 군량미를 쌓아두던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서 군량골 또는 군량동이라고 한다. 군장골 입구에 있는 큰바위를 자물통바위라 하고, 옆쪽으로 언덕에 있는 작은 바위를 쇳대(열쇠)바위라 한다.

네 자연마을 주민들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송학리 한가운데에 있는 동화제 마당으로 모인다. 동화제에 쓰이는 동화대는 나무 100짐이 들어간다. 높이가 30미터 가까이 되고, 둘레도 15미터를 웃돈다.
송학리 동화제의 백미는 동화대를 세우는 모습이다. 모든 주민이 합심하지 않으면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요즘은 워낙 고령화가 심해 포크레인이나 트랙터가 동원되기도 한다.
정월 차가운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으며 주민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면 액운을 모두 태워버리는 동화제가 세세연년 이어지기를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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