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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만 하신 어머니,늘 가슴 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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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만 하신 어머니,늘 가슴 아립니다”
  • 이순금 기자
  • 승인 2009.06.15 10:52
  • 호수 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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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장곡리 효자효부 김성호·이홍분씨
요즘 거리 곳곳 마을 집집마다 화사하고 탐스럽게 피어있는 넝쿨 장미를 보면서 “예쁘네”라는 감탄보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예쁜 꽃을 보시면 참 곱다 하실 텐데, 보지도 못하시고. 어떻게 보여드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이다. 바로 김성호(61)·이홍분(58·대치면 장곡리)씨 부부다. 왜 이들은 빨간 넝쿨 장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까, 다름 아닌 얼마 전부터 양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갖는 안타까움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어머니’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온단다. 오랜 세월 가족들에게 헌신만 해 온 어머니,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화려한 꽃조차 볼 수 없고 고생의 대가처럼 구부러진 허리는 보기에도 너무 안쓰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다.

요즘 거리 곳곳 마을 집집마다 화사하고 탐스럽게 피어있는 넝쿨 장미를 보면서 “예쁘네”라는 감탄보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예쁜 꽃을 보시면 참 곱다 하실 텐데, 보지도 못하시고. 어떻게 보여드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이다. 바로 김성호(61)·이홍분(58·대치면 장곡리)씨 부부다. 왜 이들은 빨간 넝쿨 장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까, 다름 아닌 얼마 전부터 양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갖는 안타까움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어머니’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온단다. 오랜 세월 가족들에게 헌신만 해 온 어머니,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화려한 꽃조차 볼 수 없고 고생의 대가처럼 구부러진 허리는 보기에도 너무 안쓰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다.

나무 팔아 가족 연명
김씨 부부는 현재 장곡리에서 논 약 1만2000여 제곱미터, 밭 6600여 제곱미터, 채종 하우스 2600여 제곱미터 등에 농사를 짓고 있고, 그래서 일은 어렵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크게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그동안의 어려움은 많았단다.
“아버님도 저도 3남1녀 중 장남이에요. 옛날에는 대부분 살림이 어려웠지만 특히 아버님께서는 물려받은 재산이 아무것도 없으셨답니다. 가족은 많았고 당연히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아버님과 함께 나무하러 산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생채기가 났던 일, 나무를 팔아 쌀을 샀고 그것으로 가족들이 연명할 수 있던 일 등. 그러다보니 저와 아버님은 둘째치고라도 어머니는 없는 살림 꾸려 가시느라 배곯기를 밥 먹듯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부친을 따라다니며 나무를 하는가 하면 다른 집 소작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서울로 상경해 9년 여 동안 건축 일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일부 책임지게 된다. 그러다 군 제대 후인 1973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고 조금씩 번 돈을 모아 논 10마지기와 밭 9900여 제곱미터를 구입 부친과 함께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됐다.
“부모님께서 너무 고생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정말 억척스럽게 일했어요. 일이란 일은 다했어요. 어머님께서는 특히 인근 개곡리에서 시집 오셨는데 외가도 많이 가난했답니다. 그런데 더 가난한 집으로 시집 오셔서 너무 고생을 하셨죠. 요즘도 어머님은 밥을 많이 못 드셔요. 옛날에 너무 굶으셔서 그러신 것 같아요. 이제 마음껏 드시라고 해도 ‘그만 하면 충분해’라고 하시면서 상을 물리시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고생의 흔적이겠죠.”

아빠, 할머니 개죽 쑤셔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올해 서른 한 살 된 둘째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많이 아팠었어요.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아빠, 할머니가 저 주신다고 개죽 쑤시고 계세요’하더군요. 어머니께서 옛날에 병이 나시면 드셨던 보리쌀 죽을 둘째 먹인다고 끓이고 계셨던 거예요. 그 것이 아이에게는 개죽을 쑤는 것처럼 보였고요. 지겨우실 텐데도 요즘도 가끔 보리쌀 죽을 드시고 싶어 하십니다.”

김씨의 어머니 강동분씨(79)는 옛날, 남편과 아들이 새벽일을 나갈 때마다 밥시간을 한 번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사람이었단다. 아들 김씨는 시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했는지 모르겠다며, ‘깔끔하고 정확한 분’이라고 전한다. 
“이제 생활도 나아지고 자식들도 자리 잡고 잘 사니까 어머니께서 항상 흐뭇해 하셔요. 지난번에는 동생 아들이 공무원이 됐고, 또 내년이면 우리 셋째가 공무원이 된다고 말씀 드렸더니 공무원이 최고라며 좋아하시더라고요. 앞으로도 웃는 일만 만들어 드리고 싶고, 그러려면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죠. 그것이 바람입니다.”

어머닌 늘 “그만 하면 됐다”
평생 고생만 해 온 강씨 할머니.
없는 살림 북적북적 많은 식구들 뒷바라지에 보리밥조차 한 번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했던 지난 시절, 하지만 이제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음에도 항상 ‘그만하면 됐다’며 상을 물리는 모습에 자식들은 가슴이 늘 아리다. 또 이제는 옛날보다 넉넉해 진 살림 탓에 “호강시켜 드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갈수록 눈도 안보이고 허리도 아프네”라며 그나마 작은 체구 더 작아진 어머니 모습에 자식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저희들도 모르게 허리를 다치셨던 것 같아요. 그 몸으로 일을 하시면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으시고요. 그래서 허리가 많이 굽으셨어요. 또 눈도 몇 차례 수술 하셔서 한쪽만 조금 보이신답니다. 그래도 틈만 나면 밭에 가세요. 말려도 소용없고 놔두라고 하시죠. 이제 좀 편히 생활하셨으면 좋겠는데 잘 안되네요.”소문난 효자 김씨와 결혼해 30년 넘게 생활하다 보니 남편의 효심 그대로를 닮아가는 것 같다는 칭찬을 듣는 며느리 이씨의 말이다.

“소문난 효자·효부입니다”
“날마다 이 집에 와서 살다시피 하는 데 남편이 효자다 보니 며느리 또한 두말 할 필요도 없죠. 어머니 눈이 안보이니까 밥숟가락에 반찬 꼭 얹어드리고 ‘어머니 뭐 필요하세요. 뭐 불편 하세요’하면서 얼마나 잘하나 몰라요. 아들은 또 어머니가 어디 편찮으시다고만 하면 업고 뛰고 꽃필 때면 꼭 몇 차례씩 꽃구경 모시고 가고 정말 보기 좋죠.” 이웃 이차선씨(66)의 말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안쓰럽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또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며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제가 여섯 살 때 휘발유 섞인 석유로 등잔불을 켰다가 폭발한 적이 있었어요. 그 불이 저에게 다 튀어 불이 붙었죠. 그 때 주변 사람들은 다 도망갔는데 어머니께서 앞치마로 제 몸을 감싸주셔서 살았어요. 그런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죠.”아들 김씨의 말이다.

김씨 부부는 현재 어머니 강씨와 청양대학 토지행정과에 다니는 막내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대학 졸업 후 타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강씨 할머니는 며느리가 담갔다며 열무김치를 한 통 싸준다. “맛없지만 먹어 봐요”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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