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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정촌 합병…충분한 시간, 객관적 검토, 10년 계획
우리나라…정략적 추진, 중앙집중 강화, 지방자치 실종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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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정촌 합병…충분한 시간, 객관적 검토, 10년 계획
우리나라…정략적 추진, 중앙집중 강화, 지방자치 실종 우려
  • 박태신 기자
  • 승인 2009.06.15 10:30
  • 호수 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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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이 개편되면 청양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③

행정구역이 개편된다면, 개편 이후 청양사회에 밀어닥칠 변화상을 알아보는 세 번째 호로 일본의 시정촌 합병 사례와 국내의 지자체 통합 사례를 소개하는 한편 한나라-민주당이 합의하고 있는 행정구역 개편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개한다

[글싣는 순서]

① 청양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②군내 주요인사와 공무원들의 입장
③국내외 사례의 비판적 평가

일본 시정촌 합병 활발
지난 2006년 9월 청양군의 안치영씨를 비롯 전국 각지의 공무원 21명은 일본의 지방행정체제 개편 동향 및 시정촌 합병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일본의 시·정·촌은 우리나라의 시·군·구와 같고, 도도부현은 우리의 광역자치단체와 유사하다. 일본은 광역자치단체를 없애지 않고 도도부현을 도주제-보다 광역화된 자치단체-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은 꾸준하게 기초 자치단체의 합병을 추진해왔는데 이로 인해 지난 1999년 3232개이던 시정촌의 수가 2006년 3월까지 1821개로 줄었다.

안치영씨는 히로시마현의 시정촌 합병추진 배경에 대해 △생활권 확대에 따른 행정서비스의 광역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단일 시정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광역행정수요 증가를 꼽았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직원 등의 인재확보, 재정규모의 확대, 행정과 재정의 효율적인 행정기반 강화 등이라고 밝혔다.
히로시마현은 1999년 13시 67정 6촌이던 시정촌을 2006년 14시 9정으로 합병했다. 히로시마현의 시정촌 감소율은 73퍼센트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히로시마현의 시가정은 오츠시와 합병했다. 시의 명칭은 오츠시로, 사무소 역시 오츠시에 두었고, 시가정의 공공재산은 모두 오츠시가 승계했다. 두 지자체는 통합하면서 제도상의 불일치에 대해 일정기간 경과규정을 두었다.
합병과정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점은, 다양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위해 10년 계획을 세웠으며, 대대적 감축이 예고된 우리와 달리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두 지자체의 수도요금은 차이가 있었는데, 합병 후 오츠시 주민들의 부담은 늘고 시가정은 줄었다. 반면 시가정 주민은 대도시에 부과되는 도시계획세를 새로이 부담해야 했다.
시가정의 공무원들은 정의 재정이 워낙 열악했기에 오츠시와의 합병을 반대하지 못했다고 안치영씨는 전했다.
일본의 마토시 사례는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 마토시는 지자체로서의 생존이 불투명해지자 하쿠산시로의 흡수 합병을 자처한 사례이다. 인근 7개시와 합병한 후 마토시는 하쿠산시의 관광산업과 연계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유사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여수시를 들 수 있다. 쇠락세가 뚜렷하던 여수시는 여천군, 여천시와 통합 후 도시의 중심이 확대되고 도시 전체가 고루 성장하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된다.
여수시의 통합과정에서 주민투표가 있었다. 당초 여수시에서는 97퍼센트가 찬성했지만, 여천시와 여천군의 찬성률은 31퍼센트, 34퍼센트에 불과했다. 여수시에서 통합 시청사를 여천시청사로 한하는 등의 양보안을 내놓은 다음에야 통합은 성사되었다. 반면 청주시와 청원군, 괴산군과 증평군의 통합은 흡수통합을 우려한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안치영씨는 “일본의 지방정부 개편과정은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분석했다. 안씨는 “일본의 경우 관련 당사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기관의 객관적 검토를 거치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의 경우 지역주민들과 자치단체의 의견 수렴없이 여야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추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비판했다.

아래로부터의 통합 필요
학계와 진보진영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의 광역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도의 광역화와 기초자치단체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양당의 합의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선진국의 지방자치 사례.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스코틀랜드 등은 대개 중앙정부-광역-기초자치단체의 3층적 행정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구조와 비슷하다.

하지만, 광역자치단체는 600만~1000만 인구를 갖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광역화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의 광역자치단체는 교육 등에 있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기초 지자체의 규모는 나라마다 다르다. 학자들은 한국을 비롯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미국 등의 기초자치단체의 인구와 면적을 비교하고 있다. 비교표에 따르면,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인구(2000년)는 20만6800명인데 이는 영국의 1.6배, 일본의 5.1배, 미국의 30배, 독일의 40배, 프랑스의 200배에 이른다. 프랑스의 기초자치단체인 코뮌의 90%는 2000명 이내이다. 우리나라의 면적도 선진국에 비해 넓은 편이다.

학자들과 진보진영은 특히 도의 폐지와 기초자치단체의 광역화는 지방자치의 무력화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70여개의 광역시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면 중앙정부를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지방의회 의원의 국회의원에 대한 예속은 강화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에 대한 영향력은 축소된다.

도의 폐지와 기초자치단체의 광역화는 결국 ‘주민’을 지방자치에서 밀어내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계와 진보진영은 정부의 기초자치단체의 광역화 추진과 반대로, 도의 광역화-기초자치단체의 축소를 주장한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대해 독자적인 입법권과 재정권, 자치권을 가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일본처럼 4만명 수준을 유지하거나 그보다 적게-2만명 수준으로-나누는 것이 적합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철저히 ‘주민자치’를 중심에 놓는 사고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자치단체간 합병은 중앙정치권이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필요성을 인식한 주민간의 합의와 동의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로부터의 통합이 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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