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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높은 마을, 푸짐한 정 나누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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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높은 마을, 푸짐한 정 나누며 살아요”
  • 김홍영 기자
  • 승인 2008.12.15 14:14
  • 호수 7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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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 숙원사업: 청남면 상장1리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청남면 상장1리를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 상장1리라는 마을 표시석이 있지만, 높은 고갯길은 과연 마을로 가는 길이 맞는지 머뭇거리게 한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에 비해 고개가 낮아졌고, 차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지만 이 고갯길은 상장1리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마을의 한 역사가 되었다.

“예전엔 큰길서 들어오는 고갯길이 워낙 높고 험해서 경운기가 못 다닐 정도였어요. 비가 오면 길이 질어 장화를 신고 다녔지요. 길이 얼마나 안 좋으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왔겠어요.”
윤종길(54) 이장은 지곡리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2킬로미터가 넘는 고갯길을 지게를 지고 올라 다녔다고 말한다. 길 사정이 안 좋으니 농사짓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1991년 고개 낮추기 공사를 했다.

“동네 사람 모두 나와 20여 일 동안 봉사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사들이 합심하여 바위였던 고샅길을 3미터나 낮추는 큰일 이었지요.”
이런 대역사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하나된 마음이 있어 가능했다. 인구는 적지만 큰일을 잘 해낸다는 윤 이장은 상장1리 주민들은 내일 네일 할 것 없이 서로 힘을 합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소 키워 소득 올리는 산골마을
상장리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논과 밭들 사이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뒤로 산들이 장막을 두르듯 빙둘러 서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이 고개에 팔풍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지곡리 앞으로 흐르는 큰 내가 정자 아래 흘러 경치가 좋았다고 해요.”

높은 고개에 서니 마을 곳곳을 조망할 수 있었던 정자는 없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다 하여 ‘상장(上場)’이라고 부른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실감난다. 하지만 마을의 지형으로 인해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여의치 않았다.
“산골에 넓은 땅이 어디 있어요. 다른 마을로 출경작할 정도로 우리 마을엔 논이 적었고 그나마 있는 논도 밭작물을 심을 정도였어요. 마을이 높아서 물이 없었으니까요. 먹는 물도 지곡리 냇물 가서 병에다 받아서 지게로 지고오고, 빨래도 마음대로 못했어요.”

주민들의 물 걱정을 사라지게 한 것은 경지정리 후 도림저수지 물이 공급되면서 부터다. 살림살이가 점점 좋아졌고, 주민들은 현재 콩과 고추를 많이 심는다. 여기에 한우작목반이 생기면서 소득이 좋아졌다.
“시골서 소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소 먹여서 애들 세 명 대학 보내고 어려운 시절 넘겼지요.”

마을의 한 주민은 집 안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소 판 돈으로 목돈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처음 우시장에서 송아지 10마리를 사서 키우기 시작할 때는 아들 딸 공부시킬 수 있는 밑천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주민은 지금 소 값 걱정을 하는 이가 많지만 느긋하게 마음먹고 꾸준히 소를 먹여 보겠다고 덧붙인다. 시세에 따라 마음 저울질 하지 말고 ‘소신을 갖고 농사지으면 좋은 결실 맺는다’는 것이 그동안 농사 지으면서 그가 얻은 것이다. 

6백년 된 칠원윤씨 집성촌
상장1리는 30가구가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지만 6백여 년 전 칠원윤씨 판결사공 윤조생이 입향한 곳으로 충청도 일대의 칠원윤씨의 역사가 시작되는 어머니 품 같은 마을이다. 현재도 마을 주민들 열에 일곱은 칠원윤씨다.
“주민들이 한 집안처럼 정을 나누며 살고 있어요. 집에 일이 있으면 마치 내 일처럼 발 벗고 돕고, 그래서 큰일이 있어도 힘 합쳐 잘합니다.”

윤 이장은 마을의 오랜 역사와 정신이 이어와 어른 공경에 정성을 쏟고 인정이 있는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마침 마을을 찾아간 날은 윤 이장네 김장을 하는 날. 집 뒤편 둔덕에 직접 심은 배추로 김장을 한다는데 한 집 김장으로는 좀 많아 보이는 양이다.
“우리 집만 먹으려면 이렇게 많이 담글 필요가 없지요. 애들한테도 보내고, 동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도 드려야지요.”

커다란 고무통에 절인 배추, 적당한 크기의 동치미 무, 골파, 마늘…. 모든 재료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양을 어떻게 다 담글까 걱정인데 윤 이장은 빙그레 웃는다.
“우리 식구하고 둘이 다 못하지요. 김장한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먼저 알고 오세요. 김장한다니까 서울서 아들 내외도 내려 왔구요. 오늘은 우리 집 일하고, 내일은 또 다른 집 일 해주러 가고, 이렇게 도우면서 재미나게 살아요.”

김장 배추 속이 간이 맞게 잘 버무렸는지 맛을 보라며 노란 배추에 싸서 한 입 넣어 주신다. 매콤한 맛이 달작지근한 배추 속과 어울려 맛깔스럽다. 부엌에서는 빨갛게 버무린 김치 속과 함께 먹을 돼지고기 삶는 냄새가 난다. 김장 김치 담그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다. 사람 잔치, 먹는 잔치….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상장1리 사람들의 인심도 푸짐한 잔칫날같이 넉넉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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