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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도순 너른 들 일궈가는 산 좋고 물 좋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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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도순 너른 들 일궈가는 산 좋고 물 좋은 마을
  • 김홍영 기자
  • 승인 2008.08.18 14:46
  • 호수 7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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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숙원사업: 정산면 신덕리

▲ 윗구억들 정자나무에 모인 주민들이 마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멀리 칠갑산을 바라보며 오동산 아래 자리한 정산면 신덕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지만 들이 넓은 편이다. 보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너른 들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세상의 번잡함을 멀리하려는 듯 산 아래 조용히 자리한 신덕리. 특히 천장골에서 내려오는 맑은 내인 잉화달천이 마을 앞을 흘러 내려가니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 들이 넓지만 예전에는 여기가 곡식 심을 만한 땅이 못됐어유.”

한 주민이 신덕리가 처음부터 너른 들을 자랑하는 마을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떤 나그네가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데 저 위 산에서 바라만보다가 그냥 지나쳐 갔다고 해유. 보이는 것은 온통 하천으로 제대로 된 땅뙈기 하나 없으니 마을에 가봤자 환영 못받겠다 싶어 발길을 돌렸답니다. 먹고 사는 것 뻔하다 이거지유.”
신덕리의 살림살이 사정을 나그네 이야기로 빗대어 말하자 양용규(48) 이장 또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여름철 비만 오면 마치리, 천장리 고랑에서 물이 한꺼번에 내려와 온통 물 바다예요. 기분 나쁘면 물이 이리 들어오고, 좋으면 저리 가고 난리였지요.”
비만 오면 난리통이 되니 주민들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팔을 걷어 부쳤다. 주민들은 마을 안쪽으로 휘어진 물 흐름을 바꾸자고 뜻을 모았고 물길을 현재처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방천작업은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주민 모두의 힘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다.

“마을 입구에 천벽이라는 큰 바위산이 있었어유. 그 바위돌을 깨서 물길 내고, 둑방 막는데  꼬박 45일동안 일했어유.”
물길이 멀리 물러나니 우선 땅이 넓어졌다. 그리고 비가 많이 와도 곡식이 자라고 있는 땅이 물에 잠길까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둑방 막던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민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는 빛이 역력하다. 그 때의 노고가 있어 현재처럼 땅을 지키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주민들의 자부심같은 것이었다.
힘을 합쳐 큰 일을 해낸 주민들. 그 후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을 합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신덕리의 자랑거리의 하나가 아홉번이나 범죄없는 마을에 선정됐다는 것이다. 여러차례 상을 받게 된 것도 주민들의 이런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낙네들 밭일보다 길쌈 많이 했어유
신덕리는 덕동과 아래구억들, 윗구억들 등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마을로 주민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마을의 시작은 덕동이다. 살기가 편해지면서 산에서 들로 점점 내려와 현재는 덕동보다 마을회관이 자리한 아래구억들에 주민이 많이 산다.
윗구억들에는 온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인 2백년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나무가 ‘바깥양반들’ 휴식처라면 ‘안어른들’ 휴식처는 마을회관이다. 정자나무 아래서 마을 이야기를 끝내자 양 이장이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안어른들이 더위에 그냥 쉬고 계시려니 생각했는데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소일거리로 하는 거예유. 할만 해유.”

은행을 까는 할머니들, 어렵지는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할일이 있어 심심치 않아서 좋다는 대답을 한다. 마을의 이장이 아는 이를 통해 동네 어른들 용돈이라도 버시라고 일감을 가져다 줘 지난 봄부터 일이 시작됐다.
양 이장은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 말고는 매일같이 마을회관에 나오시는데 노인양반들 심심하셔서 소일거리 없나 생각 중에  이 일을 찾게 되었다”며 “다행히 어르신들이 좋아하신다”고 말한다.
“원래 우리 마을 여자들은 여름에 제일 바빴어유. 지금 한창 모시 짤 때네.”
스물여섯 살에 대천에서 시집을 왔다는 이정순씨(68). 바닷가 고향과는 딴판이었다.
“삼베짜고, 60년대에는 왠 누에를 그리 많이 쳤는지.”

한 여름 밭에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모시짜고, 명주짜는 것이 신덕리 아낙네들 일거리였다.
그것도 이제는 젊은 시절 기억의 한편이 되었고, 마을회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무가 있고, 일거리가 있으니 좋다는 이씨에게 신덕리 자랑을 부탁했다.
“처음에 시집왔을 때 대천서 여기 산골까지 뭐하러 왔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유. 찻길이 없어 치맛자락 밟으며 장고개 오가며 살았지만 여기가 얼마나 공기 좋고, 인심 좋은데유.”

정산면 체육대회 일등하던 단합심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을 피해갈만도 하지만 손을 놓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 신덕리에서 유일하게 하우스 농사를 하는 김용두씨(59)네다.
오이 양액 재배로 전국에서 유명했던 김용두씨는 현재는 토마토 수경재배를 하고 있다. 토마토 정식을 앞두고 뿌리가 자리잡을 곳을 청소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동안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에게 신덕리 농사 사정에 대해 물어봤다.
“신덕리가 조금만 동네 치고는 들이 넓습니다. 성실히 일해서 농사를 잘 짓고, 정말 부지런해유. 논두렁 풀 깎고, 피살이 하라는 말 안 해도 얼마나 깔끔히 관리를 하는지 신덕리 논은 보기만 해도 논주인 마음이 보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논을 다시 쳐다봤다. 약속이라도 한 듯 논두렁이 명절 앞둔 어린애 머리처럼 단정하게 깎여져 있다.
“여기 신덕리가 인구는 적어도 단합이 잘 되는 마을입니다. 70~80년대 정산면 체육대회 나가면 일등을 했습니다.”
김씨의 말속에도 오늘의 신덕리를 있게 한 근원은 주민들의 단합된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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