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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풍물가락처럼 신명나게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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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풍물가락처럼 신명나게 살고 있어요
  • 청양신문
  • 승인 2008.07.07 00:00
  • 호수 7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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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숙원사업: 정산면 해남리

▲ 해남리의 해남골 입구 장승 옆에 함께 자리한 주민들.
“더 많이 나올 건데 비 온다고 해서 마늘 캐러 갔어유.”
정산면 해남리(이장 강희설·61) 해남골 입구 정자나무에 나온 주민들은 얼추 헤아려 봐도 열너댓명은 돼보였다. 청양의 여러 마을을 돌아봤지만 주민이 이렇게 많이 나온 마을은 없었다.
“우리는 뭐 하나 한다고 하면 뭐든지 이렇게 해유.”
마을 일에 관심이 그만큼 많다는 말일 것이다. ‘최고의 참석률’로 단합된 힘을 보여준 주민들의 이름을 묻다보니 웬만한 이들은 모두 ‘감투’ 하나씩은 쓰고 있다.

“해남리는 자연마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노인회, 대동계 다 따로 만들었어유. 회장님, 계장님이 모두 3명씩이어유.”
해남리는 정산 면소재지에서 서울로 가는 국도 39호선을 따라 차례대로 가래실, 해남골, 모호동 3개 마을이 1.5킬로미터 이상씩 떨어져 있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에는 서로 왕래가 뜸했고 자연마을별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여기 해남골이 아래, 윗동네의 중앙이거든요. 마을 일로 뭐 상의할 일이 있거나 마을 행사가 있으면 이제는 3개 마을이 모두 함께 모여서 합니다.”
지금은 자연마을보다 해남리 전체 차원에서 단합을 잘 하는 마을이 되었다는 주민들.
각 마을에서 나온 주민들은 모호동을 시작으로 예전과 달라진 살림살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을마다 특색있는 소득작물 재배
“내가 처음 시집오니 누에를 치더라구요. 이후 참외 농사도 짓고, 수박농사 좀 하다가 이제 담배 농사져요. 내 평생에 담배로 그만 마무리 해야쥬.”
해남골로 시집을 온 한 아주머니의 말처럼 해남리는 여러 가지 밭농사를 짓는 마을이었다. 논보다 밭이 많아서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지금은 마을 별로 특색있는 소득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모호동은 밤나무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 밤나무를 많이 짓는 정산에 자리한 만큼 마을 근처에 들어서면 도로 양쪽 산이 모두 밤나무다.
“밤꽃이 필 때면 온 산이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변해요. 20여 년 전부터 밤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손도 덜가고, 밤값이 예전보다 못하다 해도 소득적인 면에서 논농사보다 나아요.”
밤농사를 짓는 모호동과는 달리 해남골은 한우와 사슴을 기르는 축산 농가가 많다.


“한 10여 년전부터 사슴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고소득 작물로 괜찮은 편이예요.”
최근 정산에 사슴을 기르는 농가가 늘고 있는데 사슴하면 해남리 사슴으로 말할만큼 사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해남리 사슴 녹용은 전량 직거래되고 있어요. 한번 이용한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해남리 녹용을 찾고, 입소문으로 구매자가 늘어서 판매는 걱정 없어요.”
사슴농장 주변의 농지를 활용하여 뽕나무나 구충나무를 심어 사슴 먹이로 이용한다. 또한 산야초를 뜯어다 먹이고 있는데 약효가 있는 식물로 사슴먹이를 주다보니 소비자들이 믿고 찾는 거 같다는 주민들은 사슴이 해남리 고소득원이 되어주고 있다고 기뻐한다.

전답이 많아 인구도 많고 제일 잘 살던 마을이 가래실이다. 논이 별로 없던 해남리 중 그나마 제일 벼농사를 많이 지었다.
“예전에 쌀이 귀할 때는 가래실 모 심는 날을 기다렸어유. 그날 가서 일하면 쌀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유.”
이제는 세 마을이 골고루 살만해졌다는 주민들은 무엇보다 해남리는 ‘살기가 좋은 마을’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마을의 중심인 해남골에 보건진료소가 있고, 식당, 생필품 가게, 정미소, 고추 방앗간, 카센터가 있어요. 면소재지도 아니고 한개 마을에 이런 시설 다 갖춘 마을 흔하지 않아요.”
주민들은 살면서 필요한 가게가 마을 안에 다 있어 차를 타고 면 소재지까지 나가지 않으니 편해서 좋다. 송학리, 남천리 주민까지 여기 가게를 이용한다.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보니 가게가 운영될 수 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해가 하늘 한 가운데 떴다. 한 술 뜨고 이야기하자고 식당으로 이끈다. 시골 식당이라고 말하기에는 밥손님들이 꽤 많다.
“농번기 때는 근처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들이 점심 먹으러 많이 오세요. 지금 밥을 새로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정자나무에 모인 주민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는 정신이 없다. 주민들과 함께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넣고 끓인 김치찌개와 가지나물을 맛있게 먹었다.

▲ 주민들이 해남리 농악의 전통을 잇고자 매주 마을회관에서 농악을 배우고 있다.

해남리 농악 전통 잇는 스승과 제자
“해남리의 농악 실력 아세유?”
주민들은 함께 자리한 오재룡(81)옹이 농악 선생님이라고 소개한다.
“1970년대 해남리 농악이 최고였쥬. 함께 풍물치던 이들 고인되고 이제 몇 사람 안남았어유.”
매주 금요일 밤 해남골 마을회관에서 마을의 주민들이 오재룡 옹에게 풍물을 배운다.

“그거 한번 맛 들여보면 푹 빠지지.”
스승님이 풍물의 재미를 한마디 꺼내 놓자 제자들이 그동안의 배움담을 풀어놓는다.
“장구가 제일 어렵더라, 도저히 안돼서 북으로 바꿔 버렸어유.”
“이장은 그러니까 뒷 북친다는 말이네. 하하.”
“허 참, 난 북이 제일 안되던데.”
배우기는 어려워도 재미가 있다는 제자들. 스승님이 한마디 하신다.

“젊은 사람들 재주가 있어유. 옛날 같으면 열흘 배울 거, 지금은 닷새면 한다니까.”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어울려 풍물치기가 시작됐다.
주민들의 꽹과리, 장구, 북, 징 소리가 온 마을로 퍼져나간다. 한데 어울려 한바탕 신명난 주민들의 마음을 싣고서.

 김홍영 기자  khy@cy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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