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참게가 농사지은 최고청정 광생리쌀 맛보세요”
상태바
“참게가 농사지은 최고청정 광생리쌀 맛보세요”
  • 청양신문
  • 승인 2008.06.16 00:00
  • 호수 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숙원사업: 정산면 광생리

들 한가운데에 세워진 ‘광생 참게 작목반’ 표지판만 바라보다 그만 마을을 지나치고 말았다. 광생이들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마을로 거슬러 올라갔다. 모내기를 끝낸 논둑에 사람 가슴 높이로 그물을 쳐놓았다.

“모내기를 하고 일주일 안으로 참게를 논에 넣거든요. 지금은 모내기가 모두 끝났고, 참게를 논에 입식할 때입니다. 참게들이 논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이렇게 비닐막과 그물을 세웠어요.”
정산면 광생리 오효석(69) 이장과 참게농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충청수산에서 참게를 가지고 왔다. 제법 큰 참게가 한가득 담겨진 양동이를 들고 오 이장과 참게작목반 오기석(63) 총무가 논으로 들어간다.

“지금 참게를 넣으면 추수하기 일주일에서 이주일 전까지 여기 논에서 살게 됩니다. 이 게들이 가을 수확 때까지 해충을 잡아먹고 잡초를 먹습니다. 또한 게들이 벼 주위의 땅을 헤집고 다녀 벼 뿌리의 활착을 돕지요.”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에서부터 숟가락만한 크기의 참게들이 논으로 고물고물 기어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에 일년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먹어본 사람이 다시 찾는 참게쌀
정진봉(75) 노인회장이 참게를 입식한 논을 바라보며 생명이 살아있는 땅임을 강조한다. 
“참게가 살고 있는 논에는 농약을 할 수가 없어요. 참게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농약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지난 2006년부터 참게농법으로 쌀농사를 시작한 광생리. 지난해엔 무농약인증을 받아 안전성까지 확인했다. 참게쌀은 무엇보다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밥을 해 놓으면 윤기가 나고 찰져요. 씹으면 단맛이 나고, 맛이 좋으니 참게쌀 다시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참게쌀이 그리 맛이 좋은 이유에 대해 묻자 오 이장은 일년에 너댓 번씩 게가 껍질을 벗기 때문에 거름도 되고, 게의 배설물이 땅의 영양을 좋게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광생리는 참게농법을 하는 마을로 전국에 유명해지면서 이를 배우려고 방문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주민들은 요즈음 걱정이 많다.

“참게쌀은 수확량이 다른 벼에 비해 60% 정도밖에 안돼요.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하고, 영양제를 줘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쌀값이 일반미에 비해 높은데 판로가 걱정이지요.”
좋은 쌀을 생산해도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참게농법을 망설이는 농가가 많다. 오 이장은 친환경농사의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며 광생리쌀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 광생리가 벼농사 짓기에 좋은 곳입니다. 무엇보다 토질이 벼농사에 알맞아요.”
오 이장은 넓은 광생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쌀이 돈이 될 때가 있었어요. 40~50년 전 하우스도 없고 돈 되는 밭작물이 없을 때는 우리 마을이 살만 했어요. 눈에 보이는 저 끝까지가 모두 광생리 논이었으니 벼농사 짓는 사람들 괜찮았지요.”

광생리는 청양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야가 넓은 지역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벼농사만을 지었다. 쌀값 좋은 시절 벼농사를 지은 덕에 집집마다 공무원 한둘씩 있을 만큼 자식들 공부 시킬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쌀값이 헐해 살기가 팍팍해졌다.

“광생리는 논 밖에 없어 딴 거 해서 먹고 살만한 것이 없어요. 땅이 벼농사 밖에 못하는 질펀한 땅이니 벼농사 지어야 하는데 쌀값이 예전에 비해 턱도 없이 떨어졌잖아요.”
광생리 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참게농법으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오 이장은 참게테마마을을 만들어 참게농법을 정착시키고, 그렇게 생산한 안전한 쌀을 소비자 앞에 내놓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을회관 중심으로 주민화합 다져
정산면의 관문으로 교통이 좋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광생리는 인구가 한때 600여 명 가까이 됐었다.
“다른 마을에 비해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를 일찍 내고, 인근에서 제일 좋은 마을회관을 짓기도 했지요”
장성거리 현재의 마을회관에서 3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예전의 마을회관은 이 마을 주민들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 중학교에 못 간 아이들을 위해 한켠에 도서관을 만들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1970년대에 야간학교 운영을 했는데 잘 됐어요. 마을회관에서 징 한번 치면 아이들이 모여서 공동우물 다 푸고, 지게로 퇴비 한 짐씩 지고…. 낮에는 일손 돕고, 밤에는 공부하고 그랬지요.”
건물 형체가 아직 남아있는 예전 회관을 바라보는 오 이장과 정 노인회장은 ‘정이 많아서 참 재미있었다’는 말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자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옥수(58) 부녀회장이 ‘지금도 재미있다’며 한마디 한다.

“마을회관에서 요가 선생님을 초청하여 요가를 배웠거든요. 방 3칸이 꽉 찰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정 노인회장이 요가 이야기가 나오자 “부녀회에서 매주 2번씩 요가 시간을 마련했는데 재미있게 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 어르신들, 아주머니들 모두 함께 모여서 요가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재밌네요?’ 라고 말을 건네자 마을회관에서 배운 요가의 특별함을 표현한다.
“왜 아녀? 처음엔 허리도 안 구부려지더만 하면할수록 부드러워지는 게 거참 신기하데. 허허~~.”

마을회관에서 다른 건강교실을 열 예정이라는 부녀회장의 말에 노인회장이 그 때 기자님도 꼭 오라고 덧붙인다.
‘참 재미있게 사는’ 광생리 주민들을 만난 날이었다.

김홍영 기자  khy@cy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