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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역사에 정통한 김용무 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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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역사에 정통한 김용무 경무관
  • 청양신문
  • 승인 2000.08.26 00:00
  • 호수 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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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위한 정성 끊이지 않아
대형사건 도맡은 한국 수사계의 대부
유창한 외국어로 세계대회 경비단장

한국경찰내에서 수사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며 국내 대형사건 해결의 주인공인 김용무경무관(60).
순경에서 시작하여 부단한 노력으로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까지 오르고, 독학으로 외국어는 물론 불교, 동양사상에서부터 역사까지 정통한 김경무관은 후배 경찰들의 사표가 되고 있으며 경찰내의 입지전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또 대통령수행경호팀장, 세계대회 경비단장 등을 역임했고 국회의원출마 등을 종용받은 유력인사였으나 공직을 마감하고는 자신을 찾는 마음공부를 위해 조용히 자기수행에 정진하며 참된 삶을 실천해 가는 군자의 도를 행하고 있다.

대치면 수석리 출신
김경무관은 1940년 대치면 수석리 하강에서 태어났고 대치초등학교를 다니다 청양초(41회)로 전학했으며 청양중(9회)을 졸업하고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주위의 총망을 받으며 서울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비록 시골 출신 학생이었지만 남다른 리더쉽과 정의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서울학생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고 앞으로 큰 일을 할 그릇이라고 주위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군을 제대한 그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신념으로 65년 경찰에 투신, 순경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탁월한 업무추진과 성실로 일선현장에서 선배 경찰들로부터 신망을 받은 그는 75년 청와대 경호실 영입되어 대통령 수행경호관을 맡아 완벽한 경호로 대통령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상부로부터 계속 근무할 것을 부탁받기도 했으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시경으로 자리를 옮겼다.
94년 총경으로 승진한 김경무관은 초임이면서도 중견이 부임하는 김포공항경찰대장을 시작으로 무주경찰서장, 대전 동부경찰서장, 금산경찰서장 등을 역임했고 홍조, 녹조, 근정훈장을 받았으며 대통령표창 3회, 기장포장 등 65회의 상은 받는 화려한 업적을 쌓아 왔다.
지난 6월 경무관으로 퇴임한 그는 현재 (주)금강, (주) 태청종합건설 등 회장으로 있으며 대학에서 수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김경무관은 범죄수사에 천부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
범죄수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김경무관은 정확한 판단력과 분석으로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 경찰내 최고의 수사통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처리한 대형사건들만해도 태능 풀장 살인사건, 지존파 납치사건, 박한상 양친 방화사건,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등 국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은 대부분 그의 손에 의해 해결됐다. 미궁에 빠진 사건도 김경무관에게 넘겨지면 완벽하게 처리되어 범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마포가스폭발사건이 발생하자 합동수사본부 부본부장의 중책을 맡은 가스폭발사건의 권위자가 되기도 했다.
이와같은 빛나는 업적은 수사계의 큰 족적으로 남아 있으며 대학에 출강하여 수사학과 형사학을 강의하고 있고 공직을 떠난 지금도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면 자문을 구해와 후배들을 지도하는 등 한국 수사계의 대부로 불려지고 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학구파
세상의 천리를 알아야 범죄를 수사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며 바쁜 업무중도 손에서 책을 놓지않은 김경무관은 자기개발과 공부에 열심, 독학으로 외국어는 물론 정치, 철학, 역사 등 폭넓은 학문을 섭렵했다.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영어, 일어 등 외국어를 습득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다.
경찰내에 외극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물이 흔치않았던 당시에 전북 무주에서 세계대회인 유니버시아 대회가 열리게 되자 95년 무주경찰서장에 임명되어 유니버시아드개회 경비단장을 함께 맡아 행사를 완벽하게 치루었으며 각종 국제대회시 경비기획단장의 중책을 맡아 외국기자들에게 경비상황을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직접 프리핑하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또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었던 김경무관은 할아버님에게서 배운 유교의 사서삼경은 물론이며 불교에 대해서는 조계종 강원에서 강의 할 정도의 식견과 조예를 갖었고 민족고유사상인 천부경 등에 이르기 까지 학문적 깊이를 더해갔다.
김경무관의 대화는 종교, 역사, 정치 등에 거침이 없으며 대학교수는 물론 큰스님들과도 동양사상에 대해 밤새워 논하기도 했다

고향 위한 정성 끊이지 않아
고향에 대한 김경무관의 애향심은 남다르다. 고향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곳이며 조상 대대로의 선영이 있고 형수님과 사촌인 김용성전의원 등 인척과 마음이 통하는 김현백의원 등 동창들이 있는 영원한 생의 안식처라고 한다.
어린시절 교실이 모지라 노천수업을 하다 비가 쏟아져 책이 엉망이 된 기억도 생생하며 학교를 증축하기 위해 마을로 벼를 거출하던 잊을 수 없는 추억 등은 삭막한 경찰업무중에도 고향의 따뜻한 정이 심성을 가뀌줬다고 한다.
20여년전에 모교발전을 위해 청양중고동창회의 필요성을 선배들에게 제안하여 동창회를 태동시킨 장본인 이기도한 김경무관은 몸이 불편한 동창이나 불우한 고향이웃에게 소리없이 수십년간 도움을 주는가하면 모교에 응접세트를 기증하는 등 넉넉치 못한 생활이지만 고향에 대한 사랑을 잊지않아왔다.
또 무주경찰서장 재직시 고향에서 관광 오신 분들에게 극진히 대우함은 물론 천안경찰서에 근무할 때는 천안에서 있는 도민체전에 출전한 2백70명 고향선수들을 위해 정성을 아끼지 않았고 때로는 본의 아닌 오해를 받을 만큼 고향을 한시도 잊지않았다며 청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이제 35년의 공직을 마감하면서 앞으로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선에 반하는 행동을 회개할 나이가 됐다는 김경무관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생을 다할때까지 교와 각에 정진하며 관조의 세계에 완접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대도자연, 득천필승 의 천리에 순응토록 신명을 받쳐 나가겠다”고 한다.

<내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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