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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능금조합장 윤익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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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능금조합장 윤익로씨
  • 청양신문
  • 승인 2000.08.13 00:00
  • 호수 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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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와 맞서 농업귄익 보호 앞장
예산사과 키워낸 인물은 청양사람

농협중앙회 전국이사 3선, 조합장 15년 역임
중앙정부와 맞서 농업귄익 보호 앞장
예산사과는 전국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예산사과를 오늘이 있게한 인물은 바로 청양사람이라는 것은 많은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것이다.
15년째 예산능금조합장을 역임하며 1천여 예산사과 농민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운곡면 효제리 출신의 윤익로(66) 조합장이다.
그는 ‘농업을 살리는데 평생을 받치겠다’는 신념으로 중앙정부와 맞서는 두툼한 배짱과 미래를 보는 통찰력, 그리고 농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예산사과를 전국 최고로 발전시킨 산증인이자, 조합운동의 선구자이며 전국농민의 대표로 활동하는 자랑스런 청양인이다.
윤조합장은 청양읍 백천리에서 자라 청양초에 입학했고 운곡면 효제리에서 생활, 운곡초 4년을 다니다 아버지를 따라 예산에 정착했다.
예산농업고와 국민대를 졸업하고 엽연초조합에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3년간 회계실무와 공직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농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조합장은 71년 공직을 버리고 8천여평의 사과농업에 전념, 선기술 도입과 농법연구로 최고품의 사과를 생산하는 으뜸농사꾼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80년 당시 예산능금조합은 경영악화와 참여 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고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감사에 선임되어 능금조합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부실경영의 원인조차도 모르고 허덕이던 조합의 경영을 명쾌하게 분석하여 조합원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으며 85년에는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조합장에 당선됐다. 조합장의 중책을 맡은 그는 과감한 개혁과 추진력으로 조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실증해 보이며 조합원들로부터 ‘진짜 일꾼을 만났다’는 칭송을 받았다.
첫번째 사업으로 사과농민들이 농약대금으로 걱정하는 것을 보고 농협사상 최초로 무이자 외상농약판매를 시작했다.
전국의 농협으로부터는 질시와 압력이 끊이지 않았고, 조합이 망할 것이라는 음해도 있었지만 ‘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밀고나가 농민들이 대단한 호응을 해주었으며 예산능금조합이 정상화되는 성과를 얻었다.
농민을 위한 유조합장의 열정과 추진력은 계속 되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고 잠자던 농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농산물 수출입 과정에서 수출업자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사실을 밝힌 윤조합장은 수출업자들의 로비와 외압에 맞서 국회 국정감사장에 고발하는 등 강력 대응하여 농협에서는 최초로 예산능금조합이 수출 쿼터를 확보하는 개가를 올리게 했고 오늘날 연간 40억원에 이르는 수출의 발판을 만들었다.
또 전천후농업과 고품질 농산물생산을 위해서는 지하수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중앙정부와 오랜 투쟁끝에 50억원을 투입하는 과수점적시범사업을 최초로 시행토록 했으며, 능금조합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절대농지로 묶여있던 현 농산물공판장 자리를 행정부와 조합장직을 건 10년의 노력끝에 현행법으로 불가능한 사안을 농업발전을 위해 풀도록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농산물 유통개혁의 중요성을 인식한 윤조합장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유통문제 혁신에 전력하고 세계화농업을 구상했다.
사과의 품질 규격화와 브랜드화를 추진, 92년에는 30억원을 들여 과일선별포장센터를 설립했고 산지유통공판장 설립을 위한 10년 노력의 결실로 마침내 98년에는 20억원을 투입, 농산물공판장을 설립하여 유통개혁의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또한 미국, 일본을 수차례 시찰하며 세계농업의 변화를 예감, 87년부터 ‘21세기 농업의 살길은 유통개선과 고품질화’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여 헛소리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목청을 높여왔다.
세계로의 진출을 위해 91년 미국 버드파크에서 한국 최초로 예산사과 전시판매와 미국 동포를 상대로 우리농산물애용 캠페인을 벌여 화제가 됐고, 농산물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중앙회에 봉지사업소 설립을 강력추진 오늘의 ‘농협아그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91년에는 미국농협마케팅연구소와 공동으로 ‘세계속에 한국농업 2천년의 전략’을 연구 발표, 미래한국농업의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안타깝게 당시 학계의 무관심속에 사장됐었는데 최근에서야 빛을 발하며 각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을 정도의 앞선 식견으로 농업의 희망을 일구어 왔다.
그의 탁월한 지도력과 능력으로 예산능금조합을 전국 최고의 특수조합을 만들고 농민의 지도자로 우뚝 섰으며 조합장을 5선째인 15년간 역임하고 농협중앙회 전국 이사 3선의 경력을 갖고 있고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사과농전국협의회장, 농업경제연구소 자문위원, 농협대학이사 등 농협관련 각종단체의 핵심맴버로 한국농협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다.
앞으로 세계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사과 품질개선을 위한 수종갱신이 절실, 묘목혁명을 위해 7만여평의 부지에 이탈리아의 차세대 사과묘목를 재배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속의 예산능금을 키워가기 위한 장대한 구상을 실현해 가고 있다.
현재 고향 운곡면 선산에 부모님의 산소가 있으며 숙부 윤기섭옹(95)을 비롯 가까운 인척들이 살고 있고 서성규 전축협조합장 등과 동창이라며 “청양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고향이며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양문제를 접하면 남일 같지않고 청양사람을 만났을 땐 모두가 친구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거침없는 자신의 행동을 보고는 청양사람같지 않다고 농담을 하지만 자신은 분명한 청양사람이라고하며 앞으로 청양의 특산물인 고추, 구기자 등을 발전시키는데 적극 도와주고 함께 할 뜻이 있다면서 청양농민들의 분발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내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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