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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청양을 노래한 은항 이우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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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청양을 노래한 은항 이우재 박사
  • 청양신문
  • 승인 2000.06.16 00:00
  • 호수 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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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권의 책펴낸 문학박사,
시조시인,교육자,서예가로 명성
100여권의 책펴낸 문학박사,
시조시인,교육자,서예가로 명성

6.25전쟁에서 반신불수의 부상을 입고도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문학박사이며 교육자, 시조시인, 서예가, 사진가 그리고 107권이라는 저술활동을 펼친 이우재박사(70). 특히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하여 수천의 시귀 구정마다 청양에 대한 그리움이 젖어 있고 아름다운 고향땅을 주제로 가장 많은 시를 짓기도한 자랑스런 칠갑산 시인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청양군 운곡면 미량리 출신으로 부친 이보한씨 모친 김원숙여사의 3남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풍을 안고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운곡초등학교를 다녔다.총명함과 착한 심성으로 주위의 기대를 모은 소년 이우재는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상경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민족의 상잔인 6.25가 발발하자 자신의 꿈보다는 조국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충정으로 육군종합학교를 마치고 소위로 임관 최전방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우다 중상을 입고 깊은 좌절을 맞보기도 했다. 20살의 나이에 반신불수가된 이박사는 참기힘든 시련과의 싸움이 시작됐고 초인간적인 삶을 이끌게 됐다.
몸을 제대로 쓸수 없었던 그는 독서광이 됐고 4년후 목발에 의지한 채 향학의 일념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불구의 몸은 오히려 이박사를 학문에 부단한 정진을 요구했고 참된 삶의 목적이 되게 하여 정진을 거듭, 서라벌대를 졸업한 후 다시 단국대학 국문과에 편입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75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날대학에서 `약사신앙이 한민족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논문으로 피와 땀이 서린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계속된 문학창작과 예술의 열정으로 퍼시픽 웨스턴대학에서 다시 문학박사 학위를 맏는 등 불굴의 정신으로 최고의 학문적 경지를 구축하는 위업을 이루기도 했다.
인간적 고뇌와 자기성찰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일어선 이박사는 이후 한국시조문학계의 거두로 성장했고, 후학을 지도하는 교육자로써 명성을 떨쳤으며, 서예가,여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인간승리의 주역이 됐다.고향인 청양농고에서 52년 첫 교직을 시작하며 교육계에 투신한 이박사는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교사로 제자들의 인기를 끌었고 낙후된 농촌 지역사회에 문화적 새바람을 일으키는 상록수로 신망을 얻었으며 보령 주산 중,고 재직시에는 교가를 작사 명성을 높였다.
60년 부터 서라벌 중고에 부임한 그는 15년동안 근무하며 부교장에 올랐고 75년 서라벌대 설립자인 남창 김세종 박사의 간곡한 부름으로 모교인 서라벌대 강단에서 명강의로 예술혼에 빛나는 서라벌학풍을 진작시켰다. 78년 광운대 국문학교수로 자리를 옮긴 이박사는 광운대신문사 주간, 광운대 중앙도서관장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특히 95년에 주선한 ˝한국문인작가 명사저서 전시회˝는 한국지식 사회와 출판계에 큰반향을 일으킨 역사적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조국의 내일을 이끌어갈 후학들을 위한 지극한 가르침과 투철한 사명감 그리고 자신을 가꾸는 진지한 모습은 참스승의 표본이였으며 40여년간의 변함없는 족적은 교육계의 큰별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한국시조에 대한 이박사의 불같은 창작열정과 그 업적은 마치 거대한 산맥이라고 문학계에서 통칭되고 있다. 66년 `은항의 나그네 길`이라는 시집을 첫 발간하면서 은사이신 박목월, 서정주시인 등의 추천으로 혜성처럼 문잔에 오른 이박사는 처참했던 전상을 빛나는 공적으로 승화시켜 인간승리의 잔잔한 서정시와 장엄한 서사시로 엮어냈다.
어느 누구보다도 겨레와 자연을 사랑한 그는 5천여수의 겨레시를 비롯 마주하는 시절마다 걸음마다 모두를 불멸의 시조로 새롭게 탄생시켜내며 독특한 세계관과 아름다움을 펼쳐 보였고 100권이라는 초인적인 시집발간과 저술활동으로 기존문단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당대의 문필가로 한세대를 풍미했다.
또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 한국수필가협회를 비롯 충청문인협회장, 한국공간싱인협회장등을 역임했으며 노산문학상, 황희문학상, 일붕문학상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박사의 나라사랑 자연사랑과 함께 절절한 고향사랑정신은 하나의 신앙적 대상으로까지 승화시켜내고 있다.
자신의 아호를 고향동네 이름인 은항으로 하는가하면 스스로를 칠갑산시인으로 칭해지길 주문했고 반평생의 교단을 떠나는 고별시에서도 자신을 길러준 고향 앞에 금의환향을 다진다며 `내고향 사람`이라는 시로 끝을 맺을 정도이다. 고향 곳곳에는 그의 감성이 서려있고 운곡초등학교의 교가, 충혼탑의 서문을 비롯 충령사 헌시 등이 전하며 칠갑산 입구와 운곡면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순을 맞은 이박사는 마지막 남은 여생마져도 사회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지난 11월 24일에는 은항문화상을 제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반신불수의 부상을 이기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문필가, 문학자, 교육가로 우뚝 선 이박사의 삶은 자랑스런 청양인의 표상이며 인간승리의 주역이고 참된 삶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내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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