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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면 광암리 이조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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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면 광암리 이조태 할머니
  • 청양신문
  • 승인 2001.01.02 00:00
  • 호수 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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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긴 세월만큼 삶이 기진해 비록 방안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직도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로 쪽지고 앉아서 밥상을 받고 화장실 출입도 혼자 할 정도로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1세기 넘는 곡진한 삶이 곧 역사
105세 군내 최고령, 직계자손만도 50명 넘어

이제 그 긴 세월만큼 삶이 기진해 비록 방안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직도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로 쪽지고 앉아서 밥상을 받고 화장실 출입도 혼자 할 정도로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운곡면 광암리 배양굴(백암동)에 사는 이조태 할머니는 원숭이띠, 병신생 우리나이로 105세이시다.(그러나 주민등록상에는 1898년생으로 되어 있음)
1896년 섣달에 태어나 2000년을 넘기고 2001년, 또다른 한세기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
일본 낭인들이 민비를 시해한 사건(1895년)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봉기가 일어나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독립신문 창간, 서재필 윤치호 선생 등이 독립협회를 결성하는 등 구한말 외세에 나라가 혼란한 병신년에 태어난 이조태 할머니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한채 평생을 살아왔다.
혼란과 혼란이 거듭 반복되어온 우리 근대사속에서 듣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한그루 나무나 풀 같은 자연의 일부처럼 살수도 있었으리라.
이제 그 긴 세월만큼 삶이 기진해 비록 방안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직도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로 쪽지고 앉아서 밥상을 받고 화장실 출입도 혼자 할 정도로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적어도 90년전에 대치면 상갑리서 살던 이조태 할머니는 운곡면 광암리 배양굴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던 연산서씨 집안의 서승범옹(40여년전 작고)에게 시집을 왔다.
할머니보다 10살 위인 서씨 집안의, 딸도 없고 오직 아들만 하나 있는 그 독자에게 시집을 와 아들 2명과 딸 3명을 낳아 일가를 이루고 그 자식들이 또 손을 퍼뜨려 손주가 18명에 이르고 증손이 24명이 넘으며 고손까지 합하면 직계후손이 50명이 넘는다.
세월이 길다 보니 큰딸 내외와 큰아들 내외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함께 늙어가는 여든한살의 작은딸(서울 거주), 함께 사는 작은아들, 막내딸(68. 예산군 신양면 대덕리)이 남았다.
지금 이조태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은 작은아들 서현모씨(77)와 작은며느리 윤무순씨(74)다.
할머니의 큰아들 한모씨가 살아있었을때는 큰아들 집에서 살았지만 11년전 큰아들이 사망하자 같은 마을에 살던 둘째아들이 모시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부모가 오래 사는 것은 자식이 봉양을 잘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 때는 동네사람들에게 술 한잔 대접하기도 했다.
젊어서는 길쌈도 잘하고 2년전까지 밭일을 할 정도로 건강했으나 2년전부터 이세상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거의 했다고 여겨서인지 식사를 하면 주로 누워 지낸다고 한다.
그래도 음식은 잘 잡수시고 특히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취재를 하던 날도 며느리가 귤을 까서 손에 올려놓자 “차(차겁다는 뜻)”하면서도 금새 잡숫기도 했다.
며느리 윤씨는 자신도 며느리의 봉양을 받아야 할 나이지만 100세가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자식들 집에 가서 마음 놓고 묵어 오는 일을 못하고 있다.
윤씨를 두고 집안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안방에 모신 이래로 여태 끼니 거르지 않고 식사시간을 맞춰 봉양을 잘 한다고 칭찬을 한다.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내 입으로 먼저 먹을 것이 넘어갈 수 있느냐”며 사탕 한개라도 있으면 먼저 드리고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도 집에 올때 “사탕 한봉지라도 사다 할머니께 두손으로 드리라”고 가르쳤다.
지금도 며느리 윤씨는 안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혹 화장실이라도 가면 넘어질까 뒤따라가면서 밤을 보내고 아들은 웃방에서 잔다.
윤무순씨는 일제의 정신대를 피해 16세때 운곡면 신대리서 서현모씨에게 시집을 왔고 21살에 큰집에서 제금나면서 이조태 할머니의 친정어머니, 즉 시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기도 했으며 마침내는 백수를 넘게 사는 시어머니도 모시게 됐다.
“맨 먹기만 하고 안죽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 할머니를 모시는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가 더 편찮으실까 그게 더 걱정이라고 한다.
세기와 세기를 넘나들며 살고 있는 이조태할머니의 곡진한 삶이 곧 역사이듯 이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또한 세월을 잇는 강물이 되어 역사의 바다로 흐르고 있음을 생각하면 삶은 참 숙연한 것이다.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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