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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 맥 청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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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 맥 청양향교
  • 청양신문
  • 승인 1990.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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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사당을 모신 전국 3곳 중 하나

올해 양력 9월19일에 석전의식 봉행

 

청양군 청양읍 교월리 34-1번지에 위치해 있는 청양향교(충청남도 문화재 자료149호)는 지방에 있는 문묘와 거기에 부속된 옛날 교육기관으로 대성전, 명륜단, 동제 내삼문등이 있다.

 

향교의 창건에 대해 알아보면 성균관은 우리나라의 학정과 교화의 최고 학부로서 고려 충렬왕 30년(서기 1304년)6월에 안향의 건의로 국학대성전을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창설한 것이 그 시초이고 옛 대학으로 준수한 인재를 모아 윤리도덕을 연구하게 하였으며 26대 충선왕(1308년)성균관으로 개명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후 조선 태조 7년(서기 1398)에 현재의 명륜동에 성균관을 세우고 유학을 강의하는 명륜당과 공자를 모신 문묘, 유학생들이 거처하는 곳을 두었으나 각 지방에는 성균관과 같은 향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향교에는 운영과 관리를 맡은 총책으로 전교가 있고 장의와 감사가 있어 운영 협의와 기관역활을 하며 향교 단위에는 지부에 읍․면, 지회에 통리동의 분회를 두고 있다.

 

향교의 연혁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건립연대는 동국여지승람 청양향교조에 동일이라 한 것으로 보아 고려말이나 조선초로 추정되며 원래에는 교월리 월촌 동리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25년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군 6년(1614년)에 현재의 위치인 교월리 향교 말로 옮겼다. 그후 철종 2년(1851년)에 대성전이 중수되고 고종 11년(1874년)과 고종 41년(1904년)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그후 공기( 孔紀) 2489년(서기 1938년)에 외삼문을 중건하였고 1976년에도 중간수리를 하였다.

 

다른 향교에 비해 특이한 점은 전국의 향교중에 3곳의 하나로 공자의 화상을 모시었다는 것이다. 이공자의 화상은 조선인조 6년(1628년)에 참판 강선여가 진향사로 청나라의 눈을 피해 명나라에 갔는데 명나라 황제가 상을 후히 주는것도 받지않고 공자의 화상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서 운곡면 광암리 수사동에 있는 자기집에 모시었으나 그후 유림들이 따로 사당을 지어 모셨다가 1891년에 이곳 대성전에 옮겨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4성5현과 국내의18현을 봉안하고 있어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분향례를 드리고 매년 음력8월 상정일에 유림들의 석전 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양력 9월19일에 석전의식을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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