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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서정리 부녀노인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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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서정리 부녀노인회를 찾아서
  • 청양신문
  • 승인 1991.01.01 00:00
  • 호수 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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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덜이라고 노인회 못만드남”

군내 최초의 부녀노인회

회원 사망시 제사 지내주기도

 

구수한 얘기 잘하는 사람과 그 얘기 기억했다 손주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픈 사람과 며느리 마음 편하라고 따뜻한 안방 빌려주고 낮잠 청하러 오는 사람, 농사일 힘들 때 불러보던 민요 한마디 어설픈 장구가락에 맞춰보고, 또 아들 혼삿날 추어볼 어꺠춤 미리 추어보는 사람, 그렇게 마을회관 한편에 마련된 부녀노인정으로 자근자근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4H등 마을사람들이 비슷한 나이끼리 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마을공동체를 지켜나가는데 뒤질세라 비록 부엌에서는 물러났지만 마을일에서만은 물러나고 싶지않다는 낮은 목소리들이 모여 만든 부녀노인회.

 

이 부녀노인회는 올 8월에 창단 60세 이상 부녀노인들로 최문순(70)회장을 비롯, 김성례(74)부회장, 윤상덕(65)총무 등 70여명의 회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입비 5천원에 평생 회원이 되고 회원 사망시 1천원씩을 걷어 제수를 마련 제사를 지내준다. 객지에 나가있는 사람들의 안부와 홀로 사는 분들의 안부를 살피고, 누구네 밭에 아직도 남아있는 배추걱정도 함께 나누며 마을부녀회에 좋은 얘기도 더러 해주고 그러다 점심때가 되면 농번기때 못한 묵은 이야기 반찬삼아 호박풀때기, 수제비, 국수등을 푸지게 만들어 먹는다.

 

“이게 시골 늙은이덜 사는 모습이지유, 늦가을 꺼정 들일허고, 장날이면 장사허고, 무싯날은 이렇게들 모여 십원짜리 열 개갖구 하루종일 민화투도 치고, 윳놀이도 허구, 누구네 아들 효심이야기두 허구 그러지유” 노인정 바로 옆에 살면서 노인정일을 제일 많이 맡아서 하고 있는 그래서 여자 면장이라는 명칭이 붙은 황정희씨의  이야기다. 

 

지금 노인정은 회관을 지을때 특별히 부녀노인들을 위해 회관한쪽 10평에 방 1칸, 부엌, 보일러실을 만들었으며 이는 이마을 이장 장방현(36)씨와 청년회원들 덕분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고향에 왔다가 석유를 보일러실 가득 채워주기도 하고, 나무를 한 경운기 실어오기도 하며, 국수 한푸대, 늙은호박 몇덩이를 슬며시 들여놓고 가는 이마을 젊은이들 칭찬에 모든게 어르신들 덕분이라는 겸손으로 답하기도 한다.

 

노인회를 만든지 얼마되지 않아 그동안 특별히 한일은 없지만 이제 농한기고 하니 폐비닐도 수거하고 마을 쓰레기도 줍고, 방학맞은 아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옛날얘기를 들려줘야 겠다는 특별회원 이우순(55)씨의 서정리 부녀노인회 사업계획이다.

 

돌아오는 길에 정산면 농민후계자회에서 경로잔치를 마련했다고 하여 회원들과 함께 복지회관에 들렀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들에 의해 늙은 삭신 쑤셔대는 겨울추위가 녹아나고 있었으며 어르신들의 흐뭇함에 젊은이들은 수매가 안된 벼, 농협 빚, 태평양 바람타고 몰려오는 우루과이라운드 등 오만가지 걱정을 잊고 , 봄이면 다시 들로나가 논갈이를 할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노인회에 등록은 안했지만 군내에 하나뿐인 서정리 부녀노인회 하나하나의 작고 낮은 목소리가 지금의 땅을 지키고 있는 젊은이들을 키웠다면 그 하나하나가 우리로 모였으니 더 강한 어머니의 힘으로 질펀한 삶의 모습을, 흙의 진실을 모두에게 전해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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