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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축시- 가난과 억압을 들어 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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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축시- 가난과 억압을 들어 엎으리라
  • 청양신문
  • 승인 1991.01.01 00:00
  • 호수 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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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시인)

칠갑산 아흔아홉 가파른 골넘어

사자산 우성산 반월산 비봉산

거칠게 옮겨다니며 울던 바람이

소나무 굴참나무 왜소나무 흔들다

척박한 논밭 들판 치달아 풀잎 휘듯

아버지 어머니 고픈 허리를 꺽으며

아직도 짐승처럼 운단다.

 

진달래 철쭉 꺽고

도라지 잔대 더덕캐고

산머루 으름 따던 손 움켜쥐고

철도도 고속도로도 공장도 비켜가는 청양땅을

어머니 돈을 벌겠어요

아버지 성공하고 돌아오겠어요 하며

뒤꼍 감나무에서 앞산 밤나무 가지를 옮겨다니며

목이 쉬도록 짖어대는 까치소리를 멀리하며

 

몸팔러 서울로 대전으로

몸팔러 경상도로 경기도로

몸팔러 가발공장 신발공장 전자공장으로

몸팔러 철공소로 도시골목 리어카 장사로

논팔아 소팔아 쌀팔아

구기자 맥문동 버섯 팔아 상급학교 보내던

금광 탄광 다니다 규폐증으로 쿨럭이는 아버지가

농약 중독된 충혈된 눈으로 장가 못간 형님이

고추밭 가에 쭈그려 앉아

농사는 아무리 져봐야 소용없다며

담배만 하염없이 빨아대고

육실허게 찌는 콩밭 고랑을 타던 어머니가

구기자 자주꽃 살피던 허리굽은 고모가

몸빼를 추스르고 수건을 고쳐쓰며

청양우시장 소떼보다 큰 속울음을

왕진나루 대치 마치 싸리티 여드재 아리고개 방고개

억새 구절초 별개미취 개망초 강아지풀 꽃다지로 서서

금강으로 슬픔을 모아 가던

까치내 달맞이 꽃으로 흔들리며

허리가 구겨진채

우산성 칼바위로 운단다.

 

그러나 아들아 딸들아

가난으로 사육된 고향 들판은

팍팍한 산허리는

떡시루 정화수 놓고 빌던 어머니는

낫자루 굳은 살 뜯어내는 아버지는

산신제 장승제 동화제 거리제는

우리가 촌놈이라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의 힘이고 무기가 될 수 있나니

장곡사 맛배집

두 눈 부릅뜬 목어로

큰 북으로 짖어대며

가난과 억압을 들어엎으리라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일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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