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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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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 승인 1993.04.21 00:00
  • 호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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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면 지천리
가지내에 청잉어 살고 칠석엔 천렵도
산에서 송이버섯 약초등 생산물 채취
맑은물이 굽이쳐 흐르고, 아름다운 산과 그 산위로 맑고 푸른 하늘만 보이는 마을 장평면 지천리는 군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아닐까?
마을을 휘감고 도는 부드러운 가지내와 다른 사람들은 오염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맑은물에서만 산다는 청잉어(쏘가리종류)가 퍼득거리고 칠석날이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천렵도 하고 쌀조개도 잡는다.
백제때는 열기현, 통일신라때는 열성현에 속했고 고려때와 조선초까지는 정산현, 조선 말엽에는 정산군 관면의 지역으로 갈지형으로 흐르는 큰내가 있다하여 가지내 또는 지천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상지천리, 하지천리, 장재동 일부를 합하여 지천리라 해서 적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87년 1월 1일 면명 변경에 따라 장평면 지천리가 되었다.
산과 내와 들을 이웃해 네석 내것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인심좋은 마을 지천리(이장:정영상.42)는 52가구에 2백여명이 가리점, 안뜸, 고무래봉, 장재울 등에 모여 살아가고 있다.
가리나무파는 가게 있었다는 가리점, 마을 안쪽에 자리한 안뜸, 고모래봉 마을, 부자가 살았다는 장재울, 그 장재울에 지금은 뱀장어 양식을 하는 충청수산이 있다. 또 고모래봉 끝에는 부암사라는 절이 있고 그 뒤쪽에 선비들이 글을 읽었다는 서당골과 스승바위가 있다.
지천리에서는 2년에 한번씩 정월 초사흘에 국수봉에 있는 산신당에 산신제를 올린다.
제의 형식은 다른 마을과 비슷하며 축문의 내용은 농사의 풍작과 질병퇴치, 가축의 번성, 그리고 산속마을로 호랑이의 해를 멀리 해달라는 것이며 가가호호의 소지를 모두 올린다. 그래서인지 월남전에 마을 사람들이 많이 참전했는데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지천리 햐면 뭐니뭐니해도 마을을 감고도는 가지내이다. 흔히 청양사람들은 대치면 작천리에서부터 장평면 지천리를 흘러 백마강에 합류하는 큰내를 까치내라 부른다. 원래는 물줄기가 갈지(之)자로 흐른다 하여 갈지내 였으며 예전에는 작천리는 청양 까치내, 지천리는 정산 까치내로 나눠 불렀다 한다. 이 까치내에는 한번에 2백여마리씩 잡히던 청양명물 민물참게는 금강하구둑으로 인하여 사라졌지만 마디나 모래무지는 아직도 득실거린다.
지천리는 워낙 첩첩산중이라 농토가 적다. 그런 까닭으로 마을사람들은 농삿일 외에 송이버섯, 약초, 봉냥, 표고버섯등 산에서 나는 생산물을 채취하는 등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지난해에는 범죄없는 마울(3연패)상금과 출향인 주민들이 협조하여 회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지천리 사라들의 바램은 많다. 장평면에 속해 있으면서도 낙지고개로 인해 면사무소 한번 갈려면 하루에 한번 넘어가는 새벽 첫차를 타거나 3번정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뚫는다 뜷는다 하는 대적선 터널공사를 빨리 했으면 하는 것과 주거환경 사업이다. 이제 겨우 1집만이 지원금을 받아 주택개량을 하는 실정이다.
칠갑산 아흔아홉골을 증명하듯이 이 마을 역시 마재, 큰골, 방아다리골, 내키골, 바람난골등 골골 이름이 다 있다.
살구꽃 핀 봄날 지천리 사람들은 밑이 실한 맥문동을 캐거나 씨레질 혹은 못태운 들판에 불을 지르며 한해 농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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