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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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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은 청양
  • 청양신문
  • 승인 1993.09.11 00:00
  • 호수 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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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김학원 판사
졸업 13년만에 사법고시 합격-"사회생활한 것이 판사생활에 큰 도움"
대학졸업후 군복무와 직장생활을 하는 등 사회활동을 해오다 졸업 13년만에 사법고시에 응시하여 합격, 뒤늦게 판사생활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김학원 판사.
일부 지역민들과 법조계에서는 지금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학만 변호사와 형제판사로 더욱 알려져 있다.
김학원 판사는 청남면 왕진리에서 태어나(46년5월15일생) 청남국민학교(34회)를 졸헙하고 부여중학교와 공주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학생평의회 의장을 맡아 활약했고, 현실정치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전국대학생 모의국회를 열어 국회의장직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졸업후 고시에 몇 번 응시하여 고배를 마신후 군복무를 마치고 뒤늦게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시작, 능력과 성실을 인정받아 고속승진을 한다.
그러나 장래를 보장받은 직장이지만 만족과 성취감을 느낄수 없어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사표를 던진다.
그당시 판사로 계시던 형님께서도 무모한 시도라며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3년간의 시한을 정해놓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학원 판사의 의지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가 그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친구와 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알게되어 주위에다가는 외국으로 나간 것으로 위장하고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3년의 각오가 11개월만에 싱겁게(?) 끝났다. 25회 사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받아낸 것이다.
적지않은 세월으리 외도 끝에 그렇게 쉽게 합격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번 마음먹으면 꼭 이루고야 만다는 집념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김학원 판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일주일에 30여건의 판결과 200여건의 즉결을 처리하는 격무속에서도 출신학교의 모든 동창회장직을 맡아 무리없이 처리하는 능력과 신망은 그의 작은 한 부분 인지도 모른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법조계 내에서도 정치판사 등 새로운 개혁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실 정치판사란 시국사건과 관련된 몇 안되는 판사들을 자칭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것만큼 정치판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면을 개혁하려는 소장판사들의 새바람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판사생활 10년동안 보람있는 일이 있다면
=합의부 배석시절 내 판단이 옳다고 주장해 판결한 사건이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을때와 평생을 의사와 교수로 살아온 분의 판결로 고심했으나 내 판결이 한 인간을 위한 현명한 판결이었다고 생각될 때 과거의 사회생활이 어떤 틀에서 벗어나 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사건판결에 큰 도움이 됩니다.
■판사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사형선고를 3명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고뇌와 갈등을 느낍니다.
지금도 가슴아프고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판결문 작성입니다. 사건 하나 하나의 판결문은 영원한 기록으로 또한 판례로 남는, 나의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계속하는 일이지만 매번 어려운 문제입니다.
■고향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오랜만에 찾아보는 청양은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는 데 고향을 지키는 여러분께는 청양인으로서 내몫을 못해 항상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향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싶습니다.
비록 고향은 떠나 살지만 나의 안식처로 남겨놓은 청남집은 나의 뿌리로 항상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며 김학원 판사는 말을 맺는다.
가족으로는 차명숙 여사와 2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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