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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 승인 1993.09.11 00:00
  • 호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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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면 신원리-외경이 가장 아름다운 마을
비봉면 신원리 신촌마을은 도로에서 보는 여러 마을중에 가장 아름다운 마을일 것이다.
차를 타고 청양-비봉간을 지날때마다 차창에 얼굴을 대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고개를 돌릴 수 있는한 최대한 돌려 쳐다보게 되는 마을 신촌은 중묵리 정류소 앞 마을이다.
마을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 마을 앞 수구막이에 산수화처럼 축축 늘어선 50여그루의 아주 오래된 소나무 때문일 것이다.
예부터 군수가 부임해오면 이 마을에 꼭 다녀갔다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마을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백제때는 고량부리현 신라때는 청정현, 고래때는 려양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에 청양현 조선말엽에 청양군 서하면의 징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죽절리(배나무골) 신촌리 안부동 하묵리 각일부를 합하여 신촌과원동의 이름을 따서 신원리라 하였다.
신원리는 크게 원동(1구 이장:이병복)과 신촌, 지곡절, 배나무골(2구 이장:이병덕)등으로 나뉘어 1구에는 56가구에 240여명, 2구에는 68가구 250여명이 살아가고 있다.
벼농사 구기자 농사를 주로 짓고 고추, 오이, 박, 참외, 수박, 무씨등을 홍농종묘와 계약으로 재총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마을이다.
원동은 원골로 조선시대때 건천원이라는 원이 있어 그당시부터 원골이라 불러왔다 하며 신원리 1구 전체를 칭하는 지명이다.
원동 뒤쪽에 문박산이 있고 문박사라는 절이 있다. 또 문박산 옆에 아퀴봉이 있는데 이곳 정상에 갑오년 동학때 쌓은 성이 있다 하며 그당시 이곳 젊은이들도 공주까지 가서 싸우고 왔다고 전해온다.
1구에는 함평정씨와 수원이씨, 광주이씨가 주로 살고있으며 젊은이들이 다른곳 보다 비교적 많이 동네일하기가 수월하지만 마을안길이좁아 확포장하는게 숙원사업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마을 신촌이 있는 2구는 지곡절, 배나무골 등이 있다.
신촌은 중묵리 정류장에서 수구막이의 아름다운 소나무를 쳐다보며 시멘트 포장 진입로를 따라 5백미터 정도 들어가면 왼쪽마을이 신촌, 오른쪽은 지곡절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지명 그대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언제부터 신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동네에 들어서면 지명에도 팔자가 잇는가 보라는 동네사람 말처럼 집들이며 마을안길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다.
신촌마을은 수원이씨 집성촌으로 신촌 앞 마을인 중묵리의 먹방이 마을이 작은집 격이 된다고 한다. 이는 신촌에서 분가한 사람드이 먹방이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촌사람들은 선대들이 픙치림으로 심어 마을의 질병과 액운을 막아준다는 수구막이에 있는 나무들을 마을 보물처럼 여기는데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지골절은 여우골, 용천골, 모시발작골등등 다섯 개의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마을로 고려말엽 한 승려가 계곡이 짧아 물이 적고 통야이 얄팍하여 큰 나무가 살수 없으므로 큰 인물이 못나오고 지조를 지키는 선비는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한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지곡절이라는 절도 있었다 한다.
다른 동네보다 경제력은 뒤지지만 상부상조하며 사는 마을이다. 요즘 한창 고추씨 수확기라 낮에 따사 저녁에 배가르고 아침에 씨빼는 일을 모두 협동으로 하고 있다.
이는 수확기 뿐만 아니라채종하는 일이 양력 12월~1월에 하우스 정비 2~3월에 파종 및 육모, 4월 호정식, 여름에 교배하여 10월말까지 수확하게 되는데 많은 집이나 적은 집이나 모든 일을 거의 공동으로 해오고 있다.
또 농진회가 조직되어 있어 농사일을 상의도 하고 일년에 한번 부녀회와 공동으로 경로잔치도 한다.
지형이 조랭이 형국이라 큰 부자가 안나온다고도 하고 지국절과 마주하고 있는 아퀴봉(여귀봉, 원동소재)이 입을 벌려 마을을 먹는 형국이라 큰 발전을 못한다고도 하며 오공혈명당이 있다고도 한다.
배나무골은 말 그대로 배나무가 있었다하여 명칭이 붙었으며 윗배나무골과 아랫배나무골로 나뉘어져 윗배나무골은 안씨가, 아랫배나무골은 박씨들이 살아가며 지금도 오래된 배나무가 있다.
신원리에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중에 고종때의 효자이며 홍주의거에 참여한 정만원과 기미년 문박산에서 만세운동을 한 정상길이 대표적이다. <김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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