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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산악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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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산악회 ②
  • 청양신문
  • 승인 1993.09.11 00:00
  • 호수 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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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기행-민족의 영산 백두의 정상에 오르다
쪽빛 천지와 거대한 분화구에 매료
■제4일(8월7일)-백두산 비호산장에서
덜컹거리는 차창소리에 잠을 깨니 어느덧 아침 열차는 여전히 옥수수밭 사이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들의 광대한 국토, 무진장한 자원이 부러웠으며 여기에 엄청난 노동력이 합해져 상승작용을 한다면 중국이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 싶었다.
조그마한 성과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상대가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길역에 내리니 역사건물에 "연길에 오시니 반갑습니다"라고 우리말로 되어 있어 고향에 온듯한 포근함이 든다. 이곳 연변 조선족 자치구는 인구의 7할이상이 조선족으로 거리의 간판이나 오가는 대화속에서 이삽십년전의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듯한 생각이 들게한다. 연길을 떠나 해란강을 굽어 보며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용정시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모처럼 먹어보는 한식, 고추, 오이에 된장찌개 방금 만든 두부에 돼지고가. 보쌈, 중국음식이 향내나고 기름에 절어 느끼해 통 먹질 못하다가 모두들 게눈감추듯 맛있게 먹는다.
용정을 떠나 백두산(중국명 장백산)으로 가는 길은 광대한 고원지대를 통과하는 지루한 길이었다. 5시간 이당 걸리는 이길은 좌우로 침엽수림을 벌목하고 방치해 놓은 황량해보이는 길이 계속되는데 여기에선 환경보전 보다는 우선 나무 베어 파는게 급선무인 듯 싶다. 원시림이 파괴는 모습을 보니 마음 아프다.
벌목한 목재를 실은 트럭들이 무섭게 달리는데 어찌나 허술하게 많이 싣고 과속을 하는지 우리차와 교행할때마다 아슬아슬 손에 땀이 날 정도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싹 개이고 파란하늘 보여 날씨 근심을 덜던차에 박복하게도 하통현 지나면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이도백하 가까워져서는 장대비로 하염없이 쏟아진다. 백두의 절정 천지를 보려고 사흘 밤낮을 달려왔는데 억수로 비가 내리니 어두운 하늘에 어두운 마음이 더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심경이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너무도 미미하다.
비호산장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백두로 가는데 자작나무와 미인송의 원시림을 통과하며 태고의 신비로움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짚차로 갈아타고 급경사의 분화구벽을 어렵사리 오르는데 사방 안개가 자욱해 다들 마음이 어두워 지던차에 정상 거의 다 갔을까, 하늘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파란 한줄기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천지벽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장쾌한 천지.
아아 천지다!
벅찬 마음에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이 핑돈다.
쪽빛 천지와 거대한 분화구 벽에 매료되어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사진 몇장 찍다보니 구름이 다시 밀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 달래며 백두를 내려와 장백폭포로 가는데 시간이 6시가 넘어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거대한 분화구의 외벽을 보면서 한참을 올라가니 장백폭포가 멀리 보이는데 그림으로만 보았던 노상온천이며 온천물에 익힌 옥수수며 달걀 등을 팔고 있다. 가까이 갈수록 엄청난 소음과 물보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백의 위세에 이끌려 어둠이 내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폭포 아래까지 가고 말았다. 장백폭포아래에서 천지 물한모금을 들이키고 나니 내려갈 길이 위태롭다. 넘어지고 자빠지며 간신히 내려오는데 일행이 걱정되어 마중을 나오셨다.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오던 길에 들린 장백산 온천은 물은 좋았으나 시설이 너무 지저분하고 낡아서 그냥 물 몇방울 적시고 나와야 했다. 집생각에 전화를 하려했더니 국제전화는 안된다나.
천지의 모습을 그리며 잠을 청해본다.
■제5일(8월8일)-열차에서
아침햇살이 상쾌하게 비추어주는 아침이다. 연길을 향해 나오는 길은 무척이나 지루해 차안에서 노래 부르며 무료함을 달랬다. 그런데 용정 못 미쳐서 사건이 발생했다.
교량공사로 길 한쪽에 좁은 임시 도로가 하나 있는데 조그마한 경운기 하나가 한쪽으로 기울어 빠져 버리고 말았다. 좁아진 길을 서로 먼저가려다 큰 석탄차가 또 빠지고, 무질서의 현장이다. 그런데 누구하나 나서서 차를 치우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강건너 불구경이다.
한시간 가량 지나서 나타난 경찰도 멀찌감치 팔짱끼고 앉아 쳐다만 보고 있다. '만만디'라는 중국인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일찍 서둘러 가야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또같다는 사회주의의 비생산적인 단면인가.
다급해진 우리 일행은 맞은편의 차로 바꾸어 타고 가야했다.
심양으로 가는 열차표는 이등실이 8개가 들어 있었다. 올 때 일등실을 사용했던 노장과 여성분들이 이등실을 자청하나 젊은 사람이 일등실로 가는 것이 못내 마음이 편치 않다.
■제6일(8월9일)-심양에서
심양은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에 한참 커가는 도시였다.
차범근 감독의 친척된다는 차 가이드가 한식식당으로 안내하는데 발음이 정확하고 아는것도 많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총 가이드가 처음부터 끝가지 동행하고 지역마다 현지 가이드가 현지 안내와 숙소 예약을 하는 여행체계는 잘 짜여져 있다. 한식식당에서 불고기와 더덕구이로 식사를 하는데 옆테이블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버너에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긴장속의 아침식사였다.
어수선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청조 초기에 수도였던 심양 고궁을 둘러보았다. 규모가 있어 보이고 진열품들이 특색있었으나 관리상태가 허술하고 지전분해 제 가치를 다 발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이어서 돌아본 북룽공원은 청왕조의 무덤으로 벌판을 파서 거대한 연못을 만들고 그 흙으로 가산을 만드는 형식이었다. 풍수지리의 개념을 도입해 만든 이 왕릉은 독특한 만주족의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곳이었으나, 정작 그 무덤은 잡초과 관목이 무성한채 여느 평범한 뒷동산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의아해 물어본 즉 만주족은 무덤에 벌초를 하지 않는 관습에 있다한다.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에서 본 시집갈 때 새색시가 타는 가마행렬이 퍽 이색적이라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오후에 만주사변 기념관을 들렀는데 책을 펼쳐놓은 듯한 건물외관이 특이했으나 내부의 관림자는 거의 없었다. 일제의 잔학상과 중일전쟁 당시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관람객이 우리뿐이어서 생활에 지친 이곳 사람들의 무감각을 느끼게 해 주었다.
호텔로 오는 도중 우의상점(외국인 전용상점)에 들렀는데 물건의 질이 별로 좋지 않고 외국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워 가격이 매우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외국환제도를 만들어 100달러당 900원대하는 인민폐대신 560원밖에 안주는 외국환을 쓰도록 해 환차익을 남기고 거기다가 외국인에게는 비싼 서비스요금에 비싼 물건값을 요구하니 대국의 자존심은 어디로 가고 구차스러운 모습을 보게되어 실망스러웠다.
젊은 친구 몇이서 시내구경을 나와 40근자리 수박을 길거리에서 정신없이 먹어 치워댔다.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보고싶어 진다. 이렇게 하루가 또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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