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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모집 대상자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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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모집 대상자 수상작
  • 청양신문
  • 승인 1993.11.01 00:00
  • 호수 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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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황미숙
당선소감
바쁜 일을 대충 끝내놓고 보니 사방에 가을이 와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도 까마득 하기만 하고 햇살아래 서 있었던 느낌도 없이 그렇게 가을을 맞고 보니 그냥 나기도 힘든 계절에 가슴에선 버석이는 모래 바람만 불었다.
작정하고 시작한 것이건만 몇 년 헤매임에 꾀병만 자꾸 늘어 두손 두발 다 들어지고 그냥 푹 퍼져 살고 싶은 게으름이 발걸어 넘어뜨리려 하는 위태감속에서 어디에도 없는 듯한 내가 보고 싶었다.
감사해야지.
맘 편하(?) 게으름 없이 늘 꼼지락 거리게 만들어준 내 좋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정도의 바람이라면 이렇게 까지 가슴 뭉클함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땅, 내가 살아가야할 이땅에 대한 자랑을 작가 유홍준이 풀어논 입심과 글솜씨와 그의 눈썰미와 그이 극성을 통해서 알게 되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살아 숨쉬는 것만이 생명있는 것이라고 단정지어 놓았던 내 감성의 곤궁함에 그는 이 책 서두에서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말로 구르는 돌에서도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한국미술사를 전공으로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그는 "문화재 안내 표지판의 어려운 전문적 사항의 냉랭한 나열이 일반대중에게 얼마큼의 도움이 될지 문화재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느꼈으며 이에 국토박물관의 길눈이 되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속에 끌어 안으며 살아가는 행복을 나누어 갖고 싶었다"고 토로한다.
그의 답사 일번지는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옛날의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리 만무한, 다만 그 옛날 은둔자의 낙향자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었을 따름인 이곳을 되풀이하여 단오기를 여덜번.
무엇이었을까?
그를 이렇게 안달나게 만들었던 것은..., 해남과 강진의 아득한 벌판과 남해의 떠있는 섬들과 대숲을 쓰다듬는 바람소리에서 恨과 한풀이의 연장선상에서 놓여 있는 남도를 그는 가슴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저항과 항쟁의 역사적 아픔과 恨을 끌어안아 쓰다듬듯 계면조가락으로 휘돌아 흐르는 남도의 가락으로 휘돌아 흐르는 남도의 유장한 가락처럼 이름없는 민중들의 꿋꿋하고 애잔한 삶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민중에 대한 사랑은 자칫 미술사 시간이나 역사지리 시간과 같은 학문적 나열이 되기 십상인 문화재를 소개하면서도 읽는이로 하여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와 같은 편안함을 안겨주며 내편인 것 같은 그의 글쓰기에서 그러한 것을 더욱 느낄수 있다. 때문에 평론가의 말대로 우리가 흔히 보아온 기행문이나 문화재 해설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 국토와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씌어진 답사기로 정확한 전문적 지식과 명석한 양식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낱낱 유물의 형태상 특징과 아름다움, 내용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것을 창조한 인간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것이 지닌 현재의 의의까지 밝혀내고 있다.
내겐 미술사적인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안목 또한 없으며 그것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감성적 반응 또한 둔하다.
그러나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나선 곳에서 나는 월출산 무위사의 정면 3칸 맞배지붕 주심포집이 주는 한적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았고,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결실을 맺게된 18년 유배지 강진의 다산 초당에서 외롭고 쓸쓸했을 다산을 만나볼 수 있었다. 대흥사 천불전의 창살무늬가 사방연속무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느 명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어이없이 망가져버린 수덕사를 그래도 찾아가야할 이유는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중 하나인 맞배지붕집 대웅전이 온전하게 남아 있기에 우리는 그 수덕사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다만 그 유믈의 연대순위와 희귀성, 그리고 보호의 필요성만을 따진 것으로 판단되어 질 뿐 실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 숨쉬는 유물이야말로 생명력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심심산골에 파묻혀 비포장도로 흙먼지를 뒤지어 쓰고 달리다가 차에서 내려 다시 십리길, 오리길을 걸어서야 당도하는 폐사지, 황령한 절터에는 집채란 오간데 없고 절집 마당에서 쑥대 속에 곤히 잠들어 있고 덩그러니 석탑하나가 서있어 그 옛날의 연륜을 말해주는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를 보며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문화재에 대한 안목을 갖는 것은 이처럼 관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사랑과 감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구실 좋은 명목을 내세워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자본의 독점과 인간의 손때에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18년 유배객이 머물던 아담하고 정감어린 귀양지는 부자들의 별장터가 되었고, 여승의 큰 선방이 있어 그 이미지도 청순했던 수덕사는 무슨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봄직한 무지막지한 형상이 되고 말았으며 "너도 인생을 가꾸려면 내 모습처럼 되어 보렴"하는 조용한 충언을 들을 수 있었던 소담했던 산사는 중창불사를 명분으로 아름다운 절집을 스님들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경악할 일인가. 때문에 우리 시대의 문화 능력으로는 옛 유적에 손대지 않는 것이 최상의 보존이라고 한다.
문화재의 소유자는 그것의 재산권과 관리 의무가 있을 뿐이며 그것의 인문적 가치를 공유할 권한은 만인에게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 될 때 우리는 문화적으로 민주화의 길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마지막 외침이다.
작가 휴홍준, 그는 에밀레종 소리를 듣고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박물관 남쪽에 있는 반월성에 올라가 키 큰 갈대숲을 헤치며 무작정 거닐었단다. 감사하는 마음과 속살을 후벼내는 참회의 아픔 때문에 에밀레종을 만든 조상님께 감사하고 이것을 이제 와서야 알게 된 그 자신과 이 시대의 아둔한 문화행태를 미워하면서...,
감성적 공감은 어떤식으로든지 나타나기 마련일까?
아니면 답사기를 읽어내려오면서 느끼고 알아진 것, 앎에 대한 기쁨에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만큼 살아오면서도이땅에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의 부끄러움에서 였을까?
경주에서 아름다운 길 김포가도를 따라 다다른 감은사탑 앞에서 한바탕 눈물이 났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있을까?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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