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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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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맥
  • 청양신문
  • 승인 1993.11.21 00:00
  • 호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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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거리의 선정비들
군내최고의 석비, 유일한 철비·마애비
문화재가치 충분, 발굴보존 시급
옛고을이 있었던 곳이면 어느곳이나 역대 관찰사 및 고을수령들의 선정비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청양군에도 여러곳에 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중에서 조선시대 말 정산군 소재지였던 정산면 서정리 비선거리에 있는 석비, 철비, 마애비는 건립 연대가 오래되었고 형태가 다양해 문화적 가치가 높다. 우선 비의 종류 및 년대를 살펴보면 4백여년의 역사를 갖고 이쓴 석비는 현감 엄인술 선정비(1581∼1586)로 현감의 치적에 있어 청렴하고 덕행이 있는 유공을 기린 것으로 만역15년(1587년)정월 입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군내에서 최고의 역사를 가진 석비로 추측되며 지금은 공사관계로 정산면사무소 앞으로 옮겨져 있다. 철비 역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청양군내에서 유일한 철비로 읍내면장 박진표 송덕불망비로 임자(1912년)4월 입이라 새겨져 있다. 철비의 특징은 치적이 훌륭하면 고을 백성들이 놋그릇과 쇠붙이를 모아 녹여서 선정을 기리는 것으로 이는 다른 비와는 달리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치적을 기리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또 석벽을 다듬어 글씨를 새긴 마애비가 있는데 이 마애비 역시 현감의 선정비로 군내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래 3∼4기가 있었는데 현재는 1기만 있고 나머지는 공사관계로 떨어져 나가 보존이 시급한 상태이다. 다른 것은 파손 파멸되어 판독이 어렵고 나머지 한 개는 현감 윤봉주 선정비(1779∼1781)로 판독이 가능하나 글씨를 인공으로 파멸한 흔적이 보인다. 이는 아마 이 선정비를 재임중에세웠으나 치적이 좋지 않아 후에 파멸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마애비 또한 군내유일한 마애비라는 점과 치적이 좋지 않으면 선정비를 파멸하는 근거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렇듯 귀중한 문화재로 인정되는 선정비들이 있는 서정리 비선리, 그러나 그동안 당국으로부터 외면을 당해왔고 지금은 비가 뿔뿔이 흩어지는등 비선거리의 지명을 무색케 하고있어 주민들 및 뜻 있는 향토사학가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선정비에 대해 좀더 알아보면 비석을 세우는데는 세가지방법이 있다. 첫째는 관에서 세우는 것이고 둘째는 개인이 세우는 것이며 셋째는 백성들이 세우는 것이다. 대개 선정비는 백성들이 벼슬아치들의 공적을 칭송하고 모범을 보이고자 세우는 것이다. 선정비를 그재료를 바탕으로 구분해 보면 주동비, 주철비, 석비, 목비등의 네가지가 있다. 주동비 및 주철비는 지방관원이 각별한 공적이 있었음을 칭송키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놋식기 또는 쇠붙이를 온 백성이 함께 모아 녹여 세웠다. 그리고 석비는 큰 치적은 없어도 청렴 유덕함을 기리기 위한 것이며 목비는 완성비를 세우기에 앞서 대용으로 세우거나 또는 한때 고을에 머무른 벼슬아치의 공덕을 위하여 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송덕비의 표기방법은 표양코자 하는 관원의 관직, 성명, 경칭을 쓰고 있어 선정비, 청덕선정비, 애민선정비, 영세불망비등을아래에 이어서 쓰는 것과 같이 다양하여 30여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선정비가 나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도 생겼다. 간혹 악정, 실덕한 벼슬아치가 중앙정부의 평가를 의식하고 또는 허세로 고을의 유지를 매수 회유하여 자신의 송덕비를 세우도록 하고 그 비용을 대주기도 하였다 한다. 이와는 달리 폭정을 막기 위해 미리 선정비를 세우고 선정비의 주인공이 바른 정사를 펴지 못할 때는 그 비를 깨어버리거나 오물세례를 가하는 풍습도 있었다 한다. 금속비, 석비는 벼슬아치가 그 자리를 뜬 뒤 혹은 그 뒤에 세우는 것이고 목비는 그 관원의 재직중에 세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선정비의 내용은 청백과 청덕이 강조된 것로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있어 지도자의 청백이 첫째 관건임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산 정약용이 그의 저서 목민심서를 선정비에 대해 기록한 글을 옮겨본다. 「죽은뒤에 사당을 세워 그를 추모한다면 그가 남긴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 산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본받아 한 풍습으로 되어있다. 덕을 칭송하는 뜻을 돌에 새겨 길이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이 소위 선정비라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부끄러운 일이 없기가 어려운 것이다. 목비에 새겨 은혜를 칭송하는 것 중에는 찬양하는 것도 있지만 아첨하는 것도 있다. 세우는 대로 없애버리고 다시는 못하게 엄금하여 치욕을 남기지 말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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