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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현장을 찾아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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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현장을 찾아서11
  • 청양신문
  • 승인 1994.04.11 00:00
  • 호수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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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트내와 을나암
마을마다 전설이 담긴 장소가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전설을 입으로 전하며 전설의 장소를 그들의 안식처로 생각, 귀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마을에 살고있다하여도 젊은 사람들(50대 이하) 대부분은 전설의 내용도 장소도 모르고 있고, 다만 50대 이상된 사람들에게 물어야 자세히 일러준다. 청양읍 백천리에 가면 대치면 상갑리에서 발원된 맑은 물이 흐르는 무트내라는 내와 을나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전설이 깃들어 있고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특히 예전에는 여름철에 아이들이 낮에. 어른들은 밤에 멱을 감고 천렵을 하던 곳으로 요 근래에도 여름마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읍내사람들이 많이 올 정도로 내가 크고 물이 맑다. 옛날에는 명주꾸러기 몇꾸리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깊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리 깊은 편은 아니다. 이곳 전설은 맑고 푸른 물처럼 한 선비와 을나라는 청양현감 딸이 사랑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무트내에 몇 날 며칠을 배고픔에 시달렸는지 한 젊은 청년이 물고기를 잡는대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옷은 남루해서 보기가 흉하고 차림새가 꼭 쫒기는 사람 같았다. 그 청년이 있는 동안 청양현의 동헌에는 백리길을 달려온 한 역졸의 편지를 이방이 현감에게 갖다 주었고 청양현감이 벼락같은 호령을 내리자 군졸들이 밖으로 바삐 나갔다. 이 청양현감에게는 을나라는 딸이 하나 있는데 말도 잘타고 무술에 능했다. 아버지가 서두르는 것을 보고 을나는 무슨일이 있어났는지 호기심이 생겨 형방에 사람을 보내 알아본 즉 유배지에서 젊은 선비 한 사람이 도망쳐 청양땅에 숨어들었다는 소식을 알아냈다. 을나는 뒷마당으로 나와 말을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그즈음 선비는 잠에서 깨어나 어둠과 찬이슬을 피해 조금만 동굴을 발견하고는 은신처로 삼았다. '죄가 있다면 어수선한 나라 안의 형편과 백성들의 어려움을 대신 말한 것뿐인데 외딴 벽지로 귀양보내고 사약까지 내리다니…' 죽기가 억울해 도망쳐 나온 선비는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둠이 밀려오고 배도 고팠다.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가 들려 조심조심 주위를 살펴 몽둥이를 만들었다. 밖을 나와보니 어둠속에 희미하게 서있는 말그림자가 보여 지가를 잡으러 온 군사라 여기고 몽둥이를 힘껏 말을 후려쳤다. 사람이 물 속으로 떨어졌고 목을 조르려고 보니 여자라 당황하여 동굴로 돌아왔다. 한참 후에 마음이 불안하여 다시 밖으로 나가 물 속에 빠진 여인을 굴속으로 옮겼다. 다행히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죽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가 불안한 마음을 물에 씻어내고 돌아오니 여인이 깨어있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을나는 선비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잡아가려는 당초의 생각을 바꿔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을나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편 청양동헌에서는 죄인 찾는것도 문제지만 현감의 딸이 없어져 밤을 지새웠는데 을나가 돌아오자 호통을 쳤다. 을나는 죄인이 남쪽으로 도망가기에 뒤를 쫓다가 놓쳤다고 거짓으로 말을 하자 현감을 그쪽으로 군사를 보냈다. 집에 돌아온 을나는 내내 그 선비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룻밤을 새우면서도 거칠은 말 한마디 없던 선비가 예사사람 같지는 않았다. 먹을 것을 챙겨 말을 타고 무트내 동굴로 향하였다. 드디어 선비는 을나의 도움으로 숯장사로 변신하여 무사히 지내게 되었고, 둘은 사랑하게 되었다. 청양동헌에서는 죄인을 찾지 못하자 다른 곳으로 도망친 줄 알고 포기하게 되었다. 선비는 숯장사로 변하여 을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언제까지 숨어살 수가 없어 늘 불안했다. 한편 을나가 시집갈 나이가 되어 아버지인 현감이 혼사를 서두르게 되었다. 을나의 마음은 이미 선비에게 가 있어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현감은 날짜까지 잡아 놓았다. 할수 없이 을나는 짐을 챙겨 한밤중에 도망을 가기에 이르렀으나 군졸들에게 잡히게 되어 출입이 금지 당하고 시집가는 날 억지로 가마에 태워졌다. 현감의 딸이기에 시집가는 행렬이 장관이고 연지곤지 찍고 원삼족두리 입은 을나의 모슴은 아름다웠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시집가는 팔십리, 가마행렬이 한티고개에 이르렀을 때 을나는 연지곤지를 지우고 앞서가는 군졸의 말을 빼앗아 타고 산 속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하여 을나는 숯장사로 변한 선비에게로 가고 딸을 시집보내다 잃어버린 청양현감은 화병으로 누워 있다가 딸의 소식을 모른 채 전라도로 옮겨가게 되었다. 을나와 선비가 산 속에서 함께 살며 숯을 구워 팔며 살게된지 1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선비가 숯을 팔러 나갔다가 자신을 죄인으로 몰았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자기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선비는 을나와 상의 후 여장을 하고 한양으로가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지위를 되찾게 되자 을나와 선비는 전라도에 있는 장인 장모를 찾아가 지난날의 잘못을 빌고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후 선비는 충청도 관팔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맨 처음 그들이 만나 사랑을 이룬 청양의 무트내를 찾았다. 그리고 청양현감에게 "내가 이곳에 살 때 다리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었오" 하며 징검다리는 남아있지 않지만 무트내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고 시멘트로 야트막한 제방을 막아 농업용수로 쓰고 있다. 또 선비와 을나가 만났던 바위를 을나암이라 하고 지금도 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많이 파손되었다. 그러나 무트내와 을나암은 전설과 함께 백천리 사람들의 안식처로 자리잡고 있다. <김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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