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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 승인 1994.07.21 00:00
  • 호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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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 고무신-윤승원
여름철 냇가에 가면 운동화를 신어도 불편하고 슬리퍼를 신어도 불편하다. 고무신만큼 편리한 신발이 없다. 그런데 요즘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고무신 구하기가 어렵다. 이이들에게 고무신을 사 주려고 신발가게에 여러번 문의해 보았지만, 요즘 고무신 파는 신발가게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찾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고무제품은 오래 두면 저절로 삭아버리기 때문에 아예 갖다 놓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흰 고무신이 한 켤레 있다. 그러니까, 3년 전 어머님 상중(喪中)에 신었던 신발인데, 이 닳고 닳은 신발은 아직도 나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다 요긴하게 신고 있다. 그 편리함을 모르고, 운동화를 신은 채 물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고무신은 꼭 여름철에만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사계절 신발이었다. 나는 유년시절만 해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검정 고무신이 아니면 발등까지 덮이는 소위 「두꺼비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흰 고무신이 없었던 것은 이니지만, 그렇게 깨끗한 신발은 외출하시는 어른들이나 신고 다니는 신발인 줄 알았?
? 고무신은 편리한 만큼 바뀌거나 잃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모양이 비슷비슷해서 여러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가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발 코에 작은 구멍을 뚫어 신고 다니기도 하였고, 또 어떤 이는 하얀실로 X표를 하여 신고 다니기도 하였다. 고무신은 또한 그 용도가 다양하였다. 물가의 아이들에겐 피라미 담는 그릇이 되었고, 자운영 논에 들어가면 벌을 잡는 기구가 되었다. 일꾼들은 새참을 먹을 때, 혹은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고니나 장기를 둘 때도 이것을 깔개로 삼았다. 어머니께서 이것을 사러 장에 가실 때는 문수를 외어 가는 게 아니었다. 신발길이를 잰 밀짚이나 노끈 따위를 가지고 가서 신발을 사 오셨다. 그러니 얼마나 정확한가. 문수가 틀려 다시 바꾸러 가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점도 많은 신발이 고무신이다. 발바닥에 땀이 배면 잘 미끄러졌고, 겨울철에는 빙판길에 새끼줄을 묶고 고개를 넘어 다니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산에 나무하러 가서 곧잘 찢어오기도 하였다. 찢어진 고무신을 버리지 않고 장날 때워다 신었다. 장에 가면 물통이나 냄비 같은 가정용품을 때워주?
?땜장이가 있었는데, 자전거포에서 타이어 펑크 때우듯 고무튜브 조각을 오려 붙여 불로 지지는 방법으로 고무신을 때워 주었다. 유명 회사제품의 신발 한 켤레가 기 십만원을 호가하는 요즘 세상에서 고무신을 때워다 신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는지 모른다. '꺼먹 고무신'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 살면서 나는 '꺼먹 고무신'이란 소릴 자주 들었다. 말하자면 고향이 청양(靑陽)이라고 해서 붙여준 별명인데, 처음에는 이 말이 촌사람을 빈정대는 말로 귀에 거슬렸다. 그러나 이같은 별칭을 유독 청양사람이라고 해서 붙여 준 까닭은 무엇인가? 청양하면 구곡(九谷)의 영산(靈山)칠갑산이 떠올라, 전형적인 산골동네 촌놈으로 보이는 걸까? 아니면, 유행가 가사처럼 '콩밭이나 매는 아낙네'의 순박한 인상이 연산되기 때문일까? 어쨌든, 꺼먹 고무신은 촌놈을 지칭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러나 달리 표현하면, '어수룩해 보이지만 가까이해도 손해보지 않은 사람'이란 뜻도 가진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쩌다 매스콤에서 내 고향사람이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거나 불미한 사건이라도 일으켰?
募?소식을 접하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애향심이라기 보다 태생을 감출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하나의 작은 관심이 아닌가 한다. 아같은 관심은, 적어도 내 고향 사람만큼은 순수하여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을거란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청정촌인(淸淨村人)의 상징 '꺼먹 고무신'이란 별명이 이젠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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