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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나발루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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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나발루 산행기
  • 청양신문
  • 승인 1995.09.07 00:00
  • 호수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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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미터를 넘어서...
◇... 청양산악회(회장:한광수) 등반대장이며 정산고등학교에 ...◇
◇... 교사로 근무하는 김재웅 선생의 키나발루(4,010m)등 ...◇
◇... 정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
◇... 매월 국내 정기산행을 하고 있는 청양산악회는 백두산에...◇
◇... 이은 2번째 해외 등정으로,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는 동 ...◇
◇... 남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편집자 주> ...◇

8월4일 출발
출발은 언제나 가슴이 설레인다.
백두산 등정이후 2년동안 기획했던 키나발루행의 출발일이 바로 오늘이다. 공항에 모인 우리 일행은 우체국 강계장님, 달수형님, 백두산 등정을 함께 했던 정진성씨, 예순누님, 그리고 황계속, 윤영선씨, 그리고 나 모두 7명이었는데 등정 기획에서부터 추진과정까지 전화로 늘 만나서 그런지 금새 한 팀이라는 느낌이 든다. 함께 키나발루에 오르기로 했던 청양산악회 한광수 회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등반대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시며 출발 전날에도 잘 다녀오라고 격려 전화를 주시었다. 산을 사랑하고 산사람을 위해주는 마음이 정말 남다른 분이시다. 청양에서 올라온 4명은 비행기 시간이 늦지 않으려고 어제 미리 올라와 서울에서 모기가 설치는 가운데 어수선한 아룻밤을 보냈다.

김포공항 제2청사 조흥은행 앞에서 알펜투어 소속의 가이드 유석재씨를 만났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일반 관광객들뿐 배낭맨 산행 차림은 거의 볼 수 없다. 일행 7명에 가이드 1명으로팀이 단촐하다. 병무신고소에서 입국 신고를 마치고 면세점을 통과하며 사탕을 보니 두고온 아이들 생각이 난다.
말레이항공 MH063편은 기내 서비스가 매우 좋았고 말레이인 스튜어디스들은 친절하였다.
지루한 4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코타키나발루공항에 도착한 것이 6시(현지 시간으로 시계를 맞추니 5시), 곧바로 키나발루행 미니버스에 올랐다. 생각했던 것 만큼 덥지는 않은 그런 날씨 속에 시내를 통과해 버스는 산을 향해 가고 있다.

빈민층과 필리핀 밀입국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수상 가옥은 한쪽에서 위생과 미관상의 이유로 철거되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키나발루시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인종구성은 절반정도가원주민인 말레이인종이고 나머지가 중국계 이민(화교)과 인도계, 그리고 필리핀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복잡한 인종을 가지고 있다. 말레이 인종은 정부차원에서 보호받고 있는데 생활수당이 지급되고 공무원, 경찰 등 공직을 독점하고 있으며, 중국계는 공직진출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해 상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경제력을 장악하여 시내 거리의 상점이나 공장등은 중국풍으로 한자로 "...유한공사(有限公私)"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와 유사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필리핀인들은 대부분 밀입국한 사람들로 말레이시아의 3D업종에서 종사하고 있어 이들이 없으면 경제가 마비될 정도라 내쫒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한다. 대부분 집이 없이 떠돌이 생활이나 수상가옥에서 거주하는 이들이 저임금과 신분상의 불안한 생활로 시달리는 것을 보니 후진국 국민의 설움에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말레이시아는 본토의 말레이반도부와 이곳 보르네오섬의 사바주와 사라와크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원목, 원유, 주석등 말레이 자원의 약 80%를 생산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이 본토로 운반되어 주민들이 자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본토에서 오는 물건의 경우 관세를 부과해 물가가 매우 비싸 경제적 불평등, 심한 빈부차등으로 본토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다. 길거리에서 정복경찰은 볼수 없었으나 사복 경찰의 감시가 심하다 했다.

거의 모든 집들이 4각기둥으로 지면보다 2~3미터 높게 지어져 있었는데 "홍수시에 침수가 되는 것을 막아주고 열대의 뜨거운 지열을 식혀주며 4각기둥은 뱀이 기어올라올 수 없어 독사나 독충의 피해를 막아주는"기후와 환경에 잘 적응한 가옥 구조이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열대림을 해치며 힘겹게 산자락을 기어오르다가 과일 노점삼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다양한 열대과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맛을 짐작할 수 없어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약간 샀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곳 바나나는 껍질이 얇고 무척 달았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먹는 큰 바나나는 주로 사료용으로 사용된다 한다. 바나나가 흔해 한국에서 지나가다 있는 감 하나씩 따 먹는 것처럼 길가의 바나나는 주인이 따로 없다 한다.

4시간을 달려 숙소인 천지빈관(天地嬪 , Rose Cabin)에 도착하여 중국풍의 저녁식사를 하였다. 강한 향과 느끼한 맛 때문에 억지로 먹고 있는데 달수형이 가져온 김치가 등장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신토불이! 한국인은 역시 김치다.
식사후에 2층 로비에서 공항에서 산 양주와 노점에서 산 파인애플과 바나나를 곁들어 산이야기를 꽃 피웠다. 다부진 체격에 부드러운 이미지의 석재씨는 히말라야의 가서브롬H봉을 최연소 등정한 경력이 있는 성균관대 4학년 복학생으로 믿음이 갔다. 그이 원정대 이야기며 백두산 이야기, 설악산 이야기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른다.

8월 5일...빗속에 키나발루로
잠결에 달수형이 만취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 부축해 침대에 누이고 오버트러져를 껴입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 여명에 깨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무심코 밖을 보니 바로 눈앞에 사자의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 키나발루가 하얀 구름띠를 허리에 두르고 유혹하고 있다. 볼일을 대강 접어두고 진성과 함께 캐빈앞 전망대에서 키나발루를 한껏 가슴에 품었다.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라반라타 산장과 정상부의 봉우리군들이 보였다가 이내 구름속으로 사라져버린다.

8시10분 로즈캐빈을 떠나 버스로 공원관리소(Power Station)에서 입산신고를 마친후 산행의 출발점인 팀폰 게이트(Timphone Gate 1,890m)까지 버스로 올랐다. 이 산은 등반시 반드시 가이드의 안내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어 우리팀도 가이드 마이클과 함께 산행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길안내와 함께 자연보호 감시, 하산시 쓰레기 청소등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는데 무척 성실하였다. 이들의 노력 때문인지 산은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였고 등산로는 매일 정리하고 배수로를 파는 등 완벽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가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거운 짐을 산장까지 운반하는 모터로 500번 짐을 운반해야 그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니 놀랍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약간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마이클은 32세로 키나발루를 1000번정도 올랐다 하며, 한달 600불(M$1$당한화 320원정도)로 보통 회사원의 300불보다 대우도 좋고 팁도 받아 생활이 여유있다 하는데 겉모습은 조금 궁색해 보였다.

마이클과 몇마디 주고 받으면서 열대림으로 들어가는데 얼마안가 카슨폭포(Carson` Fall)다. 고소증을 염려해 "천천히 천천히 오르는데 사방이 음습한 안개로 덮여 열대우림 속에서 오랑우탕이나 비단구렁이가 뚝 떨어질 것만 같다. 몇 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빽빽한 열대림과 그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늘어져 떨어지는 수많은 넝쿨식물들, 나무를 감싼 이끼류에서 기생하는 수없이 많은 난초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고도를 더할수록 안개가 짙어지더니 세 번째 쉼터인 Pondok Lowi(2,286m)를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한시간 쯤을 더 올라 라양라양 대피소(Layand Layand 2,651)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데 고산지대의 서늘한 기후에 비를 맞아 체온까지 떨어져 몸이 자동으로 떨린다. 젖은 오버트러져를 벗어 버리고 우비를 꺼내 입으니 조금 온기가 느껴진다. 끊임없이 내리는 열대의 소낙비(squall)속에서 목책계단으로 된 길을 오르자니 한발 한발이 괴로운지 모두를 아무 말이 없다. Pondok Villosa를 지나는데 얼핏 식충식물이 보이는데 비 때문에 경황이 없어 자세히 관찰하지는 못하였다.

고소증인지 3,000m를 지나면서 약간 졸음이 오고 다리가 아프다. 어디선가 엄청남 물소리가 들리는데 사방이 빗속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대피소를 지나 아무 생각없이 얼마를 걸었을까! 구름이 얇게 걷히면서 샤우스 피크(South Peak)가 언뜻 보이다가 이내 사라진다.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힘을 내어 오르니 라반라타(Laban Rata 1,353m)산장이 보인다. 아이고 반가워라!

산장 건물을 돌아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정상부 암벽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대여섯 갈래로 흐르더니 다시 두 갈래로 합쳐서 내리꽂는데 상단 200미터 하단이 300미터가 훨씬 넘어 보인다. 폭수의 물살과 굉음이 산장을 삼켜버릴 듯 하다. 이것이 키나발루의 멋이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종일 비맞으며 오른 고생이 싹 잊혀지는 듯하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이 산장에서 중국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종업원들도 매우 친절하고 식사도 정갈했다. 특히 진하게 우려낸 중국식 차(Chinese Tea)가 일품이었으며 고소증에 도움이 된다하여 들어가는 대로 많이 마셨다. 예순누님이 여행중에 화장실에서 한번도 성공을 못한 얘기며 고소증세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맥주 1캔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고산에서는 잠을 잘 이룰수 없다더니 몇몇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잠에 있어서는 천부적 자질이 있는지 나는 10시반에 한버 깨고 2시에 깨울때까지 내쳐 잤다. 먼가 꿈을 꾼 듯도 한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8월6일...정상이 눈앞에
2시에 일어나 뜨거운 물을 한잔 마시고 어둠속에 정상을 향한 첫발을 대디뎠다.
조심조심 오르는데 수목지대의 나무계단이 끝나갈 무렵 랜턴이 흐려지더니 급기야 불빛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헤드랜턴을 일행에게 빌려주어 예비전지도 없는데 난감한 노릇이다. 진성에게 쓰고 남은 전지를 얻어 얼마를 같으나 불빛이 곧 사라진다. 할수 없이 오감에 의존해 한발한발 오른다.

어쩌다 누워 쉴때면 바로 머리위에 별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별들을 보며 가쁜 숨을 고르자면 유성이 꼬리를 물고 하나 둘 떨어진다. 황계숙씨가 유성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오늘 동반이 성공하기를! 날이 계속 맑아 주기를!
아래를 내려보니 멀리 코타키나발루시의 불빛이 반짝거리며 라반라타 산장의 불빛도 점점 멀어져 간다. 수목지대가 끝나고 화강암 지대로 들어서니 경사가 급해지며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을 마시고 호흡조절을 하며 계속 오르는데 희미한 어둠사이로 사우스 피크(South Peak)와 정말 당나귀의 귀처럼 생긴 덩키스 이어(Dunkey`s Ear)가 보이며 정상아래 마지막 대피소인 사얏사얏대피소(SayatSayat Hut 3,810m)가 보인다. 창고 건물속에서 산 사람들틈에 끼어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아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워버렸다). 누군가의 방귀 소리에 실소하며 휴식을 마치고 힘을 내어 정상으로 향한다.

사우스 피크 옆을 지날 때쯤 영선씨가 고소증 때문에 더 이상 못가겠다며 주저앉아 버리고 예순누님도 한발 한발이 괴로운 듯 비틀거린다. 고통속에서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하는 산사람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촛불을 든 순례자의 행렬이 생각난다.
5시30분쯤 되었을까. 뿌옇게 날이 밝으며 바위의 윤곽이 드러나더니 멀리 정상이 보인다.
벅찬 가슴을 누르며 로프길을 버리고 세미클라이밍으로 정상에 도전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바위 홀드를 잡고 기어오르다 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 로우스 픽(Low`s Peak 4,101m)에 올랐다. 감동인지 고소증인지 가슴이 벅차며 눈물이 나려 한다. 매서운 찬바람 속에 한참을 떨고 있으니 멀리 남지나해에서 동이 터온다.
떠오르는 해를 하얀 구름이 받쳐주며 만들어내는 구름의 향연은 산사람들의 넋을 빼는 전경이다. 하얀 구름이 1.5km협곡 속으로 빨려들어갈 때는 내 몸까지 협곡으로 따라내려가는 듯 황홀하다. 서서히 어둠이 겉히며 로우스 픽 주변의 거벽들이 모습을 보이더니 거대한 공룡같은 빅토리아 픽(Victoria Peak), 도깨비 뿔 같은 알렉산더 픽(Alexander Peak), 어를리 씨스터봉(Ugly sisters)등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며 때마침 밀려오는 구름 위로 떠오른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우리가 오른 라반라타 산장쪽의 키나발루산이 풍부한 식물대와 육중한 모습이라면 반대쪽 남지나해쪽의 키나발루는 거대한 화강암 대지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협곡과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을 가진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고 있을대 가이드 석재씨가 그만 내려가자고 하여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다. 어둠속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여러 봉우리와 운해를 여유있게 감상하며 사얏사얏 대피소까지 내려와 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클라이머들이 텐트에서 나오며 안전벨트와 자일, 암벽화등을 챙기며 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우스 피크와 덩키스이어, 사얏사얏 대피소 근처에서 40~45m정도의 바윗길이 서너개 나 있다 하는데 등반을 못해보고 그냥 내려가는게 너무 속상했다. 청양에서 함께 바위를 했던 달수, 광근형님도 못내 아쉬워하였다. 하산중에 동아대에서 왔다는 대학생들이 클라이밍하러 올라오고 있었다.

지친 다리를 끌고 산장에 도착해 8시20분에 아메리탄 스타일(구운빵에 햄, 계란을 곁들인 양식, 호텔, 산장은 아침이 아메리칸스타일임)로 아침을 마치고 열대의 눈부신 햇살 속에 반짝거리는 산장을 뒤로 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내려오면서 어제 빗속에서 강행군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식물을 수직적 분포를 눈여겨 보았다.

고산지대의 관목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키가 커질 무렵 키나발루산의 명물인 식충식물(食蟲植物)네펜터스 빌로사(Nepenters Vilosa)의 군락지를 볼 수 있었다. 이 녀석은 꽃보다 잎이 더 유명한데 선홍색의 컵 모양의 입 주변에 숨겨진 꿀에 미끌어져 곤충이 컵 안으로 들어가면 탈출로가 가시로 차단되어 결국 곤충은 점막에서 나오는 분비물에 젖어 꼼짝없이 잡아먹히게 된다. 보통 손바닥 한 두 개 정도의 크기인데 4리터 들이의 컵에 생쥐를 소화해냈다는 기록도 있다. 생물계의 보편적 원리를 뒤집고 황량한 고산지대에 적응해 살아가는 방법이 놀랍다. 쉼터의 이름도 이 식물의 명을 따 Pondok Villsa(Pondok은 쉼터란 뜻의 말레이어. 영:Sheleter)였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나무의 키가 점점 커지고 40여종이 넘는다는 상수리나무, 밤나무등의 온대름 식생이 보이더니 곧이어 십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열대림은 넝쿨식물이 감싸고 올라가거나 이끼류가 줄기를 덮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으며 그 이끼들에서 수많은 난초와 반병초류들이 기생하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30여개의 난초가 보일 정도로 난초 천지인데 종류로만 16,000여종이 넘고 미기록종도 허다하다 한다. 음습한 열대우림 속에 열대림에서 흡사 공룡이 살던 쥐라기의 분위기가 살아나 문득 거대한 발소리와 함께 공룡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찌된 일인지 아래로 내려오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고소증이 반대로 나타나나? 아픈 다리를 이끌고 얼마를 더 내려왔을까 반가운 카슨폭포의 물소리가 들린다. 폭포를 지나 팀폰게이트 앞에서 키가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사리류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무사히 하산을 마치고 산장에서 Steam Boat라는 이름의 중국식을 먹었는데 신선로에 어묵, 고기, 새우, 조개등을 넣어가며 끓여서 건져 먹는 요리였다. 마이클에게 서비스차지로 말레이화폐로 10$를 주고 파워스테이션에서 등정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하산 버스에 올랐다.
줄곧 소낙비가 오는데 엉성한 버스 창문 틈으로 비가 새들어온다. 400미터의 거대한 폭포가 키나발루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잠들었는데 버스는 코타키나발루시근처에 와 있었고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퍼부어 시내가 온통 물에 잠길 것만 같다.

건기(7~9월)인데도 비가 이렇게 오니 우기에는 엄청남 비가 내려 시내가 온통 물바다를 이룬다한다. 과연 열대지방의 원천은 스콜이다. 퍼붓는 빗속에서도 우산을 쓰거나 급히 뛰는 사람이 별로 없다. 비와 친해진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사실 이곳에서 원주민들이 코리안인이냐고 묻고서 그렇다고 하면 "빨리 빨리"라고 인사하듯이 말핼때에 무척 부끄러웠다.

숙소인 팔레스 호텔(Palace Hotel)에 도착해서 샤워 후 집에 전화를 하려하니 짧은 영어가 문제다.
가이드가 알려준 0+80000+82로 연결해 전화를 하려 하니 서울에 직통 연결이 안되고 호텔카운터로 연결되어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기 어렵다. 다시 한번 연결한 끝에 어렙가 머리를 짜내어 해석해 9(City call)+80000+82로 거니 부산전화국이 나와 연결해주는데 감이 좋아 이웃집에서 거는 것 같다. 혼자 온 것이 미안할 뿐이다.

한식당에서 저녁을 하는데 시끌시끌하게 한국분위기다. 식사후에 시내구경삼아 나섰다가 나이트클럽에 들렀는데 술문화가 우리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여기서는 안주없이 술을 마시는데 보통 맥주 500cc 한잔 가지고 한두시간 정도 마시고 있었고 술값은 매우 비싸 한잔에 말레이 달라로 7$를 받고 있다. 한국신으로 연신 마셔대면 술값이 눈덩이처럼 불어 바가지 쓸 것은 뻔한 이치다.

8월7일...정글숲을 헤지며
호텔에서 아메리칸 스카일로 아침을 먹는데 너무 먹었는지 속이 거북할 정도이다.
호텔을 떠나 오늘 래프팅(Rafting 급류타기)할 장소인 파다스강까지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9시에 호텔을 떠나 중간 기차역으로 가는데 주변에 열대지방의 독특한 가옥구조와 파파야, 망고, 팜 등 열대과일나무들이 이색적이었다. 영국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 자동차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좌특통행을 해 가끔 졸다가 눈을 뜨면 반대편에서 차들이 추월해 달려드는 것 같아 깜짝 놀라곤 하였다. 2시간 정도 버스로 가다가 이름이 생각안나는 어느 조그마한 읍에서 덜컹 거리는 열차로 강을 거슬러 주변의 열대림과 누런 황토흙이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면서 한참을 올라서야 출발지점인 우리네 시골처럼 평화스러운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소용돌이 치는 급류가 바위에 부딪쳐 튀어오르는 여울을 보면서 과연 저기를 무사히 지날 수 잇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도착후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를 쓰고 열대과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보트를 맨채 강으로 향했다. 래프팅가이드로부터 노젓는 요령, 물에 빠졌을때의 행동요령을 듣고 보트에 올랐다. 올 때 열차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급류를 보면서 몸서리치던 일행들도 막상 물위에 뜨니 모두 개구쟁이가 되어 물장난을 치며 더센 급류를 찾아가려고 야단이다. 심한 급류를 지날때는 모두 환성과 시음소리를 내며 스릴만점 모험을 즐겼다. 중간에 강 기슭에 내려 수영을 즐기고 떠내려온 통나무로 장난을 치며 노는데, 물에 안들어가려는 영선씨를 억지로 밀어 넣으니 무서워서 입술이 파래지고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누런 황토물속에서 금방이라도 악어떼가 입을 벌리며 나올것만 같다.

강안에서 보는 열대림은 색다른 멋이 있었다. 2시간이 왜 이리 빠른지 가이드의 끝지점(ending point)이라는 소리에 모두들 아쉬워서 내릴려고 하지 않는다. 강계장님이 물로 뛰어들자 가이드가 놀라 very dangerous man(매우 위험한 사람)이라며 기겁을 한다.
스테이크와 닭고기 바비큐로 점심을 하고 기차에 올랐는데 홍콩에서 왔다는 렌, 첸 두 아가씨와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차역까지 지루한 줄 모르게 왔다. 첸은 무역회사의 여비서로 렌은 학교에서 가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영어가 짧아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여행 일정이며 느낀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으며 김치가 매우 매운 음식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둘아가서 회화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하였다.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스콜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을 헤치고 한참을 달리는데 차안에서 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계숙씨는 프로판가스 냄사라고하고 영선씨는 화장실 냄새라 하는데 묘한 구린내가 계속 난다. 에어컨 구멍을 틀어 막아 보았지만 계속........., 모두들 킁킁대며 찾아보니 범인은 아까 기차역 근처의 시장에서 산 호박처럼 생긴 열대과일이었다. 래프팅 가이드에게 물으니 망고의 일종인데 껍질속에 독하고 끈적끈적한 물질이 있어 고무장갑을 끼고 껍질을 까야한다고 한다. 냄새가 하도 지독해 버릴까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는 한식당 주방장에게 부탁하니 인상을 찌푸리며 가지고 들어간다. 된장찌개와 불고기로 식사를 한 후 문제의 과일이 디져트로 나오는데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생겨 모두들 과일을 향해 포크를 날려 한입씩 베어 물었다. 순간 그 표정들! 톡쏘는 신맛과 함께 느껴지는 달콤한 맛, 아울러 느껴지는 문제의 구린내, 입은 천국이요, 코는 지옥인 참으로 묘한 맛이다. 모두들 포크를 거두기에 달수형님과 내가 모두 먹어 치웠더니 트림할때마다 냄새가 나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말레이에서의 마지막 밤은 구슬구슬 내리는 빗속에 지나간다. 며칠 사이에 여기서 정이 들었는지 못내 아쉬워 빗속을 하염없이 걸었다.

8월8일...귀국
집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보고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식후 필리핀 마켓을 둘러보고 티셔츠 몇장과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메르데카 백화점은 별 눈에 띄는 물건은 없고 말레이의 대표적 자원인 주석으로 만든 기념품들이 특색 있었는데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키나발루 시내를 한번 더 내려다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이드 석재씨에게 서비스차지로 10만원을 주고 아쉬운 이별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이 지연된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멀리 키나발루 시내며, 해변가의 수상가옥이 점으로 작아지며 4박5일의 일정이 머리를 스친다. 라반라타산장에서 본 거대한 폭포, 어둠속에서 별을 보며 오르던 키나발루산, 정상에서의 벅찬 감동과 숨막히도록 아름답던 운해, 파다스강에서의 짜릿한 래프팅.........., 아름다운 기억을 남긴채 비행기는 계속 날고 나는 잃어버린 본래의 나로 돌아간다. 시계를 한시간 뒤로 돌려 놓아야지 생각하면서 스스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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