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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컴퓨터와 육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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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컴퓨터와 육필선언
  • 청양신문
  • 승인 1995.10.21 00:00
  • 호수 1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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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수필가.장평면 중추리가 고향. 충남도경근무>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요즘 나는 새삼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얘기를 하자면, 먼저 개인적인 얘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컴퓨터를 마련한 것은 순전히 견비통(肩臂痛)때문이었다. 나의 어깨 통증은 침이나 약으로 고쳐질 단순한 병이 아니다. 「쓰지 않아야 낫는병」이다.
내근을 오래하면서 얻어진 일종의 고질병인데, 그 옛날 고향의 면사무소 호적계에서 온종일 글씨만 쓰던 그 아저씨-참으로 달필이었는데, 입에는 늘 담배를 물었고, 그 연기 때문에 한쪽 눈을 으레 찌그리고 글씨를 썼다. -를 연상하면 아마도 내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단, 지금은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
사실 그동안 나는 어깨가 결딴이 나는 줄 모르고, 술이 들어가야먄이 써지는 「글쓰기 작업」을 수 십년간 해 왔다.
그 분량도 분량이지만 하나의 문서가 완성되기까지의 수정은 좀 많은가.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항다반사였다.
그러니, 컴퓨터가 좀 더 늦게 보급되었더라면 내 어깨는 영원히 구제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더러 원고청탁을 받으면 어깨를 두들겨가면서 원고지 칸을 메꾸던 고생을 이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 편리한 컴퓨터도 편지를 쓸때는 사용이 꺼려진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작성한 편지는 사무적인 유인물 쯤으로 인식하고, 성의가 없다고 나무란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편지만큼은 꼭 친필이어야 정감이 우러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할 때가 많다. 더구나 요즘은 증정본 저서도 많이 받아 보는데, 책 속에 인쇄체 글귀나 고무인 등을 찍어서 보내주면 답장을 쓸 마음이 줄어든다. 웬지 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꼭 고루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함으로써 편리한 세상이 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내면에 흐르는 정감까지 기계가 대신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정성들인 친필 한줄 적혀 있으면 주는 이의 마음이 웬지 소중하게 느껴지고 두고두고 애정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인 경우도 있다. 몇 해 전에 방송 수필을 통해 알게 된 장애자 시인 H씨와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전신마비 장애자인 그녀는 입에 대통을 물고 타자를 쳐 시도 쓰고, 구족화가(口足畵家)의 일원으로 그림도 그린다. 나는 그녀가 입으로 타이핑해서 보내준 편지를 편지첩에 아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녀의 편지글은 한 자 한 자가 곧 「영혼의 울림」이다. 그렇게 어렵게 써진 편지를 나는 자주 받아 보기가 미안하여 편지 띄우기가 주저되었는데, 그녀는 지금도 연말이면 자신이 직접 입으로 그른 그림카드를 보내주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호강인가. 비록 견비통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두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원고를 쓰고, 때로는 붓으로 고운 화선지에 편지도 쓰는 필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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